'집없음'의 세 가지 효과

집이 없어 서러운 일들. 집주인이 돈을 올려달라기에 따지고 싶었지만 말 한 마디 못하고 속만 태웠던 일. 보일러 고쳐달라니까 자기가 고칠 게 아니라고 고집을 피우는데 결국 내 돈으로 고치는 수밖에 없었던 일. 사사건건 꼬투리 잡는 게 화나서 방을 빼달라고 얘기해놓고 부동산을 돌아다니다가 후회하며 울었던 일. 이런 일들. 자기 소유의 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겪었음직한, 겪을 수 있는 일들. 이런 일들을 '집없음'의 문제로 말하는 것의 세 가지 효과. 

 

집의 문제를 소유의 문제로 환원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뭉개고 모든 사람은 적절한 주거를 소유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한다. 그래서 집과 관련해서 생기는 모든 문제나 아쉬움은 더 좋은 집을 사는 것을 통해서만 풀 수 있는 문제로 자리매김된다. 집을 사기 위해 최소한의 예의, 이를테면 청약저축 가입, 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앞가림을 못하는 사람들이 된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의 이자를 갚는 것이 다달이 같은 액수의 월세를 내는 것보다 현명한 일이 된다. 아파트를 언제 사게 될지 모르지만 분양가제도는 주목해야 할 주택정책이 된다. 주택의 소유나 거래에 대한 세금 부과나 규제에 대해 괜히 반발하게 되거나, 소리높여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진다. 집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거나 포기하거나, 출산을 선택하거나 포기하거나,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거나 포기하거나, 하는 일들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집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뀌어야 할 많은 것들이 같은 자리에 계속 남는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집이 아닌가? '집없음'은 살고 있는 사람을 끊임없이 집이라는 장소로부터 몰아낸다. '살고 있음'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어차피 떠날 곳이니까, 언젠가는. 이사 갈 때 버려야 할 것들이니 미리 버리는 게 좋다. 나의 역사는 집이 아닌 곳에 쌓을수록 좋다. 집 밖에, 집처럼 지낼 수 있는 곳들을 많이 알아두는 것이 잘사는 요령이다. 동네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좋다. ㄱㄴㄷ 슈퍼 아주머니를 못 보게 되는 것보다 일단 내가 싸게 사는 게 좋으니까. 지역구 의원이 누가 되는지 크게 상관이 없다. 지역이 파악될 쯤이면 이사를 나갈 테니까. 괜히 정을 붙이면 임대료가 올랐을 때 이사갈 곳을 알아보기만 힘들어진다. 집주인과는 좋은 게 좋은 정도로 지내야 한다. 이 말은 참을수록 좋다는 말이다. 주택의 소유주가 장소의 주인이다. 내가 사는 집이지만 그것은 나의 장소가 아니므로 집주인에게 고개 숙이는 것이 당연하다. 자존심을 내세우는 건 고난을 자초하는 일일 뿐이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이 결정해주는 것이다. 

 

정작 '집없음'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홈리스. 거리노숙인뿐만 아니라 살만한 집에 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는,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거나, 사회적 관심을 기울일 때조차 시혜를 베풀어야 할 문제가 되어 버린다. 한 사회가 주거권을 존중하고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할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적절한 주거'의 기준이다. 사람이라면 적어도 어떤 수준의 집에 살 수 있어야 하는지 책임감 있게 답할 수 있는 기준. 면적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햇빛은 몇 시간 정도 들어오면 좋은지, 전기나 수도나 난방은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할지, 부엌은 화장실은 욕실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갖추어야 할지, 집을 짓는 재료나 집의 성능은 어떤 수준이어야 할지, 개인에게 주거비를 어느 정도까지 부담하라고 할지. 그리고 이에 못 미치는 주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주거권 실현을 위한 정책이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단계다. 홈리스에 주목하는 정책이 보편적인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래서 '집없음'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어떤 지향을 담아 '집없음'을 문제삼는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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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10:06 2012/05/0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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