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제퇴거금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오전에 끝내야 할 일이 있어 정신없이 처리하다가 급하게 택시를 잡아 국회로 갔고 본청 계단을 막 올라가다가 전경이 뒤로 돌아가래서 본청 건물을 반 바퀴 돌아 신분증을 보여주고 출입증을 받을 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30분도 안 되는 기자회견이었다. 기자들 앞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제정안은 제출될 것이고 국회는 접수받아 의안으로 올릴 것이었다. 잠시 사진 찍으라고 서 있는 것이었다. 
강제퇴거금지법 발의를 알리는 현수막 뒤에 서고 나서야 다시 하나하나 기억이 떠올랐다. 2009년 1월 20일 새벽부터 21일 새벽까지의 긴 하루와, 그날로부터 다시 2010년 1월 장례를 치를 때까지의 긴 한해와, 강제퇴거금지법을 만들어보자고 끝없이 회의와 워크숍을 이어갔던 2010년과, 2주기 추모토론회에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운동을 본격적으로 제안한 이후 제정안을 만들고 약 4,500명의 서명을 받았던 2011년을 지나, 그래, 이제 다시 1월이구나. 3년이 지난 1월이었다. 이제 고작 발의. 
그러나 3년이 아니라, 반백년이 지나 이제 겨우 만들어진, 너무 늦은 법안이다. 1960년대부터 철거민들이 외쳐온 “대책 없는 강제철거 중단하라”는 구호가 이제 겨우 법의 옷을 걸쳤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사람의 권리, 사람답게 살 권리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법, 특히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도 인권임을 선언하고, 그 무엇도 인간으로부터 인권을 박탈해서는 안 됨을 확인하는 법. 그래서, 제정도 아니고 법안 하나 발의한 그 순간이 그토록 먹먹했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것도 억울한데 죽도록 맞으면서 쫓겨나야 하는 현실을 바꾸자는 법이다. 저마다의 삶의 터전을 누구도 쉽사리 빼앗을 수 없도록 하는 법이다. 물건을 훔쳐 가면 도둑이라며 잡아 가는데, 열심히 살던 사람들이 살던 만큼 살지 못하게 되는 건 법으로 보장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자는 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유로 쫓겨나는 사람이 적어도 살던 만큼 살도록 재정착은 보장하라는 법이다.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약탈해간 그 모든 삶들을 이윤이라는 빛나는 악마에게 넘기는 건설자본을 혼쭐내자는 법이다. 그 자리에 ‘인권’을 들어앉히는 법이다. 그리고, 
치유하는 법이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가 죽었는데도 ‘테러리스트’라고 ‘생떼거리’ 쓴다고 손가락질 당해야 했던, 죽은 자를 달래는 법이다. 그 죽음에 붙들려 아직 긴긴 하루를 넘기지 못한 유족들을 치유하는 법이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불안을 감추며 망루로 오를 수밖에 없었음을,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은 이 시대에 인권이 무엇인지 일깨워준 분들이라고 고개 숙여 추모하는 법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기는 법이다. 지금도 살던 자리를 빼앗겨, 혹은 빼앗길 위기에 놓여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는 철거민들을 위한 법이다. “나도 여기 사는 사람”이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너는 거기 주인이 아니야”라는 대답만 들어야 했던, 사실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를 수십 년 동안 외롭게 해왔던 모든 철거민들을 치유하는 법이다. 수십 년 동안 반복되는 말, “이런 줄은 몰랐어요.”, 그러나 사실은 여전했던 개발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법이다. 가진 것 없다고, 돈에 우롱 당하고 모욕당해야 했던 세월과 이별하자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치유하기 위한 법이다. 2009년 1월, 용산, 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우리, 매년 돌아올 추모제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는 우리, 내 안에 숨은 어떤 욕망이 혹시라도 참사와 연루되어 있을까 전전긍긍했던 우리, 그러나 사람답게 살고 싶은 바람을 모조리 돈의 권능으로 만들어버린 사회를 통쾌하게 뒤집지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발길을 돌렸던 우리, 이런 우리 모두를 위한 법이다. 한국사회에 던져진 숙제를 지혜와 용기를 모아 풀어보자고 다짐하는 법이다. 그러나, 
법 하나가 만들어진다고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겠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 법 하나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운동에 함께 하기 시작할 때, 거꾸로 선 세상은 뒤집히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다. 
 
** 사실 강제퇴거금지법은 상식을 되찾자는 법이지, 무슨 혁명을 선동하는 법도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조차도 자신 없었음을 고백한다. 국회에서 발의되는 걸 보면서도 제정되기까지를 차마 기대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제 용기 없음의 책임을 견고한 자본주의 사회와 재산권 물신에 떠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야금야금 돈이 세상을 먹고 사람의 존엄과 용기까지 갉아먹으려고 할 때 섣불리 그것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18대 국회는 한 달 남았고, 이제 우리는 싸움을 시작했다. 
어제 강제퇴거금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오전에 끝내야 할 일이 있어 정신없이 처리하다가 급하게 택시를 잡아 국회로 갔고 본청 계단을 막 올라가다가 전경이 뒤로 돌아가래서 본청 건물을 반 바퀴 돌아 신분증을 보여주고 출입증을 받을 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30분도 안 되는 기자회견이었다. 기자들 앞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제정안은 제출될 것이고 국회는 접수받아 의안으로 올릴 것이었다. 잠시 사진 찍으라고 서 있는 것이었다. 
강제퇴거금지법 발의를 알리는 현수막 뒤에 서고 나서야 다시 하나하나 기억이 떠올랐다. 2009년 1월 20일 새벽부터 21일 새벽까지의 긴 하루와, 그날로부터 다시 2010년 1월 장례를 치를 때까지의 긴 한해와, 강제퇴거금지법을 만들어보자고 끝없이 회의와 워크숍을 이어갔던 2010년과, 2주기 추모토론회에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운동을 본격적으로 제안한 이후 제정안을 만들고 약 4,500명의 서명을 받았던 2011년을 지나, 그래, 이제 다시 1월이구나. 3년이 지난 1월이었다. 이제 고작 발의. 
그러나 3년이 아니라, 반백년이 지나 이제 겨우 만들어진, 너무 늦은 법안이다. 1960년대부터 철거민들이 외쳐온 “대책 없는 강제철거 중단하라”는 구호가 이제 겨우 법의 옷을 걸쳤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사람의 권리, 사람답게 살 권리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법, 특히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도 인권임을 선언하고, 그 무엇도 인간으로부터 인권을 박탈해서는 안 됨을 확인하는 법. 그래서, 제정도 아니고 법안 하나 발의한 그 순간이 그토록 먹먹했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것도 억울한데 죽도록 맞으면서 쫓겨나야 하는 현실을 바꾸자는 법이다. 저마다의 삶의 터전을 누구도 쉽사리 빼앗을 수 없도록 하는 법이다. 물건을 훔쳐 가면 도둑이라며 잡아 가는데, 열심히 살던 사람들이 살던 만큼 살지 못하게 되는 건 법으로 보장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자는 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유로 쫓겨나는 사람이 적어도 살던 만큼 살도록 재정착은 보장하라는 법이다.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약탈해간 그 모든 삶들을 이윤이라는 빛나는 악마에게 넘기는 건설자본을 혼쭐내자는 법이다. 그 자리에 ‘인권’을 들어앉히는 법이다. 그리고, 
치유하는 법이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가 죽었는데도 ‘테러리스트’라고 ‘생떼거리’ 쓴다고 손가락질 당해야 했던, 죽은 자를 달래는 법이다. 그 죽음에 붙들려 아직 긴긴 하루를 넘기지 못한 유족들을 치유하는 법이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불안을 감추며 망루로 오를 수밖에 없었음을,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은 이 시대에 인권이 무엇인지 일깨워준 분들이라고 고개 숙여 추모하는 법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기는 법이다. 지금도 살던 자리를 빼앗겨, 혹은 빼앗길 위기에 놓여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는 철거민들을 위한 법이다. “나도 여기 사는 사람”이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너는 거기 주인이 아니야”라는 대답만 들어야 했던, 사실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를 수십 년 동안 외롭게 해왔던 모든 철거민들을 치유하는 법이다. 수십 년 동안 반복되는 말, “이런 줄은 몰랐어요.”, 그러나 사실은 여전했던 개발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법이다. 가진 것 없다고, 돈에 우롱 당하고 모욕당해야 했던 세월과 이별하자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치유하기 위한 법이다. 2009년 1월, 용산, 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우리, 매년 돌아올 추모제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는 우리, 내 안에 숨은 어떤 욕망이 혹시라도 참사와 연루되어 있을까 전전긍긍했던 우리, 그러나 사람답게 살고 싶은 바람을 모조리 돈의 권능으로 만들어버린 사회를 통쾌하게 뒤집지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발길을 돌렸던 우리, 이런 우리 모두를 위한 법이다. 한국사회에 던져진 숙제를 지혜와 용기를 모아 풀어보자고 다짐하는 법이다. 그러나, 
법 하나가 만들어진다고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겠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 법 하나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운동에 함께 하기 시작할 때, 거꾸로 선 세상은 뒤집히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다. 
 
** 사실 강제퇴거금지법은 상식을 되찾자는 법이지, 무슨 혁명을 선동하는 법도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조차도 자신 없었음을 고백한다. 국회에서 발의되는 걸 보면서도 제정되기까지를 차마 기대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제 용기 없음의 책임을 견고한 자본주의 사회와 재산권 물신에 떠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야금야금 돈이 세상을 먹고 사람의 존엄과 용기까지 갉아먹으려고 할 때 섣불리 그것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18대 국회는 한 달 남았고, 이제 우리는 싸움을 시작했다. 
어제 강제퇴거금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오전에 끝내야 할 일이 있어 정신없이 처리하다가 급하게 택시를 잡아 국회로 갔고 본청 계단을 막 올라가다가 전경이 뒤로 돌아가래서 본청 건물을 반 바퀴 돌아 신분증을 보여주고 출입증을 받을 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30분도 안 되는 기자회견이었다. 기자들 앞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제정안은 제출될 것이고 국회는 접수받아 의안으로 올릴 것이었다. 잠시 사진 찍으라고 서 있는 것이었다. 
 
강제퇴거금지법 발의를 알리는 현수막 뒤에 서고 나서야 다시 하나하나 기억이 떠올랐다. 2009년 1월 20일 새벽부터 21일 새벽까지의 긴 하루와, 그날로부터 다시 2010년 1월 장례를 치를 때까지의 긴 한해와, 강제퇴거금지법을 만들어보자고 끝없이 회의와 워크숍을 이어갔던 2010년과, 2주기 추모토론회에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운동을 본격적으로 제안한 이후 제정안을 만들고 약 4,500명의 서명을 받았던 2011년을 지나, 그래, 이제 다시 1월이구나. 3년이 지난 1월이었다. 이제 고작 발의. 
 
그러나 3년이 아니라, 반백년이 지나 이제 겨우 만들어진, 너무 늦은 법안이다. 1960년대부터 철거민들이 외쳐온 “대책 없는 강제철거 중단하라”는 구호가 이제 겨우 법의 옷을 걸쳤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사람의 권리, 사람답게 살 권리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법, 특히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도 인권임을 선언하고, 그 무엇도 인간으로부터 인권을 박탈해서는 안 됨을 확인하는 법. 그래서, 제정도 아니고 법안 하나 발의한 그 순간이 그토록 먹먹했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것도 억울한데 죽도록 맞으면서 쫓겨나야 하는 현실을 바꾸자는 법이다. 저마다의 삶의 터전을 누구도 쉽사리 빼앗을 수 없도록 하는 법이다. 물건을 훔쳐 가면 도둑이라며 잡아 가는데, 열심히 살던 사람들이 살던 만큼 살지 못하게 되는 건 법으로 보장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자는 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유로 쫓겨나는 사람이 적어도 살던 만큼 살도록 재정착은 보장하라는 법이다.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약탈해간 그 모든 삶들을 이윤이라는 빛나는 악마에게 넘기는 건설자본을 혼쭐내자는 법이다. 그 자리에 ‘인권’을 들어앉히는 법이다. 그리고, 
 
치유하는 법이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가 죽었는데도 ‘테러리스트’라고 ‘생떼거리’ 쓴다고 손가락질 당해야 했던, 죽은 자를 달래는 법이다. 그 죽음에 붙들려 아직 긴긴 하루를 넘기지 못한 유족들을 치유하는 법이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불안을 감추며 망루로 오를 수밖에 없었음을,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은 이 시대에 인권이 무엇인지 일깨워준 분들이라고 고개 숙여 추모하는 법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기는 법이다. 지금도 살던 자리를 빼앗겨, 혹은 빼앗길 위기에 놓여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는 철거민들을 위한 법이다. “나도 여기 사는 사람”이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너는 거기 주인이 아니야”라는 대답만 들어야 했던, 사실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를 수십 년 동안 외롭게 해왔던 모든 철거민들을 치유하는 법이다. 수십 년 동안 반복되는 말, “이런 줄은 몰랐어요.”, 그러나 사실은 여전했던 개발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법이다. 가진 것 없다고, 돈에 우롱 당하고 모욕당해야 했던 세월과 이별하자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치유하기 위한 법이다. 2009년 1월, 용산, 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우리, 매년 돌아올 추모제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는 우리, 내 안에 숨은 어떤 욕망이 혹시라도 참사와 연루되어 있을까 전전긍긍했던 우리, 그러나 사람답게 살고 싶은 바람을 모조리 돈의 권능으로 만들어버린 사회를 통쾌하게 뒤집지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발길을 돌렸던 우리, 이런 우리 모두를 위한 법이다. 한국사회에 던져진 숙제를 지혜와 용기를 모아 풀어보자고 다짐하는 법이다. 그러나, 
 
법 하나가 만들어진다고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겠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 법 하나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운동에 함께 하기 시작할 때, 거꾸로 선 세상은 뒤집히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다. 
 
 
** 사실 강제퇴거금지법은 상식을 되찾자는 법이지, 무슨 혁명을 선동하는 법도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조차도 자신 없었음을 고백한다. 국회에서 발의되는 걸 보면서도 제정되기까지를 차마 기대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제 용기 없음의 책임을 견고한 자본주의 사회와 재산권 물신에 마냥 떠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야금야금 돈이 세상을 먹고 사람의 존엄과 용기까지 갉아먹으려고 할 때 섣불리 그것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18대 국회는 한 달 남았고, 이제 우리는 싸움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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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9 13:09 2012/01/1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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