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변호사회 주최로 <강제퇴거 금지 법제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다.

종합토론 시간이 없어서 토론 들으며 얘기해보고 싶었던 몇 가지를 메모로 남기려고...

 

#1. 

이번 국회, 아니 다음 국회에서도 불가능하지 않겠냐는 의견. 즉, "개발 사업과 관련하여 패러다임의 전환(재산권 중심에서 주거권 중심으로)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는 것. 

 

강제퇴거금지법의 의미를 이렇게 정확히 읽어주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독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현재의 개발 사업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경우도 다반사. 특히 국가에 의한 토지 강제 수용에서는 개인의 재산권이 매우 쉽게 침해된다. 이런저런 절차를 거친 후 공탁금만 걸어놓으면 그 절차나 내용에 문제가 있더라도, 일단은 퇴거시키거나 철거할 권한이 생긴다. 또한 개발 사업을 재산권 행사로만 이해하는 것도 매우 곤란한 일. 엄밀하게 말하면 개발 사업은 재산권의 행사 그 자체가 아니라, 재산권을 토대로 '국가작용'의 권한을 부여받는 사업이다. 즉, 개인이 소유한 집 한 채를 재건축하거나 철거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소유주들의 집합인 '조합'이 행정적 편의뿐만 아니라, 해당 개발 사업 구역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그걸 바탕으로 사람들을 퇴거시키는 등의 권한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입자를 포함한 거주민들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은, '국가작용'의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그러나 또한 위와 같은 독해는 정확한 지적인데, 구체적인 절차를 떠나, 누군가를 내쫓을 권한이 부여될 수 있는 근원은 상징적 의미에서의 재산권(개인의 소유든, 국가의 목적이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쫓길 때 항변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재산권 없음(소유하지 못했든, 국가를 통해서만 보호될 수 있는 소유권을 국가가 보호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단순히 재산권에서 주거권으로, 가 아니라 재산권 자체에 질문을 던지자는 것이다. 법이 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법이 만들어지면서 소유권이 발생한 것이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과 그 이상의 것들 사이에서 법은 어떤 경계를 만들고 있는가. 그 경계는 굳이 재산권이나 소유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주거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주거권이라고 부르는 어떤 권리의 영역은 재산으로 보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강제퇴거금지법은 무슨무슨 권리를 떠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회는 또는 국가는 무엇을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만약 '국가작용'을 부정할 수 없다면, 그것이 어디에서 작동해야 하는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2. 

강제퇴거금지법의 필요성이나 가능성을 떠나, 현재의 개발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폭력적인 강제퇴거는 막아야 한다는 것에는 광범위한 동의가 있다. 사실 강제퇴거금지법을 말할 때 인용하는 자료들에는 서울시가 낸 자료나 대통령자문 사회통합위원회가 내는 자료들도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알 만큼 안다는 것. 

 

그래서 강제퇴거금지법은 부적절하다거나 불가능하다거나 혹은 어렵다고 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방안은 각종 관련법의 개정이다. 여기에는 행정대집행법, 민사집행법, 경비업법,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 등등이 포함된다. 사실 개발 사업과 관련된 법만도 수십 개다. 솔직히 강제퇴거금지법을 준비하게 된 데에는 이 수많은 법률들을 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이미 개정 논의가 오래동안 있어왔으나 개정되지 못해왔다는 점도 있고. 행정대집행법은 1954년에 제정된 후 한번도 개정되지 않았고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은 심지어 용산참사 이후에 개악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이 법률들을 개정하자고 주장하기도 쉽지 않고, 이 모든 개정 과제들을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각 법의 개정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 다만 각 법의 역할이나 실제 작동 방식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기는 하다.)

 

그런데 이것만은 아니다.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는 개발 사업의 문제를 (하다못해) 개선하거나 강제퇴거 과정에서의 폭력을 해소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개정되어야 할 법률들은 종류나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거대한 개발 사업의 폭력적 구조는 여러 종류의 톱니바퀴가 맞물려서 꾸준히 굴러가는 셈이다. 각 법의 개정으로 톱니를 조금 무디게 만들거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꾸준히 굴러가는 구조 자체를 바꿀 수가 없다. 아예 새로운 틀을 짜야 하는 것이다. 그 틀은 개발 사업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현장의 폭력은 각종 법들의 틈새에서 번성하고 있다. 

 

경비업법은 경비업체를 규율한다. 그런데 개발 현장에서의 폭력은 주로 철거업체 직원들에 의해서 발생한다. 무허가 경비업체로 간주하고 처벌하겠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업무는 경비가 아니다. 경비업무를 하지도 않는 업체를 무허가 경비업체로 간주하는 게 가능할까. 엄밀하게 말하면 개발 현장에서 경비업무는 필요없다. 행정대집행이나 민사집행을 손보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행정대집행이나 민사집행에서 집행관이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이나 허용되는 권한과 금지사항, 의무 등을 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 듯하다. 하지만 누군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쫓겨나더라도(불가능하겠지만) 그가 쫓겨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쫓겨나는 것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 또는 재정착을 보장받지 못한 상황은 그대로인 것이다. 지금의 행정대집행이나 민사집행은 강제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권한을 확인받는 과정이면서도, 실제로 그 내용의 적절성을 따지지 않는다. 그러니 집들이 다 철거된 후에 이 사업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개발 관련 법령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과 같은 법령들과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도 개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법들은 개발 사업의 절차와 보상 내용만을 다루고 있다. 이 법들이 포괄하지 못하는 강제퇴거 상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더러, 강제력을 사용해 퇴거시키는 상황을 다루는 법들과 연계되지 않는 것이다. (기본적인 임대차보호의 취약함 때문에 발생하는, 하지만 사실상 개발 사업의 추진 때문에 발생하는 강제퇴거 상황에서도 무력하다.)

 

조건이 이렇다. 강제퇴거금지법 역시 충분히 위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장을 중심으로 짠 틀에 다시 인권 보장을 위한 톱니들을 맞춰서 끼우다 보면 새로운 구조가 가능할 것이다. 그게 강제퇴거금지법이 바라는 바가 아닐지. (개인적으로는, 거주민의 입장에서 이해 가능한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른 걸 떠나서, 내가 사는 동네를 개발한다는데 도통 알 수 없는 지금의 법제도 시스템은 그 자체로도 문제다.)

 

#3. 

법, 우리가 기댈 만큼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겠지만, 적어도 해서는 안될 것과 해야 할 것을 분명히 밝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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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4 23:17 2011/10/0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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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밀리오 2011/10/05 10:5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관심 있어서 예전에 찾아봤는데.. '집행관규칙(대법원규칙 제2325호) 제26조'에 집행관이 직무집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기술자 또는 노무자를 보조자로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서, 법원 측이 그걸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경비업체에 대한 강제집행 대행을 한다고 들었사와요.

    하지만 채무자 등의 저항을 배제하기 위하여 집행관 이외의 인력을 투입하는 경우는 민사집행법 제5조가 적용되는 거라 행정규칙인 집행관규칙을 들이밀면 안 된다고 들었사와요.

    하지만... 민사집행법 제5조는 그럴 경우 경찰이나 군대를 투입할 수 있다고 들었사와요... 그래서... 경찰이나 군대 투입이 더 안 좋은거 같으므로... 그게 함정이라고 으엉 ㅠ_ㅠ

    • 미류 2011/10/05 13:13 고유주소 고치기

      자세한 정보 감사합니다! ^^
      사실 그 민사집행법이 워낙 광범위한 민사집행을 모두 포괄하여 다루는 법이라, 강제퇴거(사람이 살거나 영업하는 건물을 인도하는 민사집행이라고 볼 수 있겠죠?)의 특수한 상황만 다루기가 어려운 점이 있어요. ㅜ,ㅜ
      현재의 상황은 집행관이 직무집행을 위해 필요한 보조자를 사용하는데, 그 직무가 사람을 끌어내는 것이라...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의견들이 제각각이랍니다.
      강제퇴거금지법은 일단, 강제퇴거라는 상황에 한정해, 퇴거를 실행하는 사람은 누구나(경비업체 직원이든 철거업체 직원이든 법원 집행관이든!)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에 대해 감독하는 공무원을 두는 것, 을 제안하고 있어요. 이게 시작이겠죠...ㅜ,ㅜ

    • 에밀리오 2011/10/05 15:09 고유주소 고치기

      네에! 그래서 저도 관심가지고 보고 있답니다 +_+

      뭐 다들 그렇겠지만 그놈의 강제퇴거에 이를 갈고 있으니 ㅠ_ㅠ

      뭐 좀 잘 되고 이러면 좋은데... 입법청원 중인거 어느 의원이 덥썩 물어서 법안 발의 안 하나 ㅡ_ㅡ 모르겠습니다 ㅠ_ㅠ

  2. 아침안개 2011/10/07 11:0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 글을 e노트에 소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