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1박2일을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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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노숙인과 함께 하는 1박2일은 굳이 서울역 안에서 1박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다. 우리는 서울역 노숙인과 함께 강제퇴거 방침에 항의하며 서로를 알아가며 '노숙'을 이해해 가며 한여름밤을 보내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서울역은 끝내 자신의 방침을 철회할 의사가 없는 듯했다. 그러니 어떡하나. 그 자리를 지킬 수밖에.

서울역은 청소 시간을 늘린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청소량이 갑자기 늘어나는 게 아닌데 청소 시간을 늘려야 할 이유는 없다.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에둘러가려는 게 더 밉다. 서울역 신역사는 매일 새벽 한 시 반부터 두시 반까지 청소를 한다는 이유로 문을 닫았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는 분들은 새벽 한 시 반이 되면 엉거주춤 모두들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두 시 반이 되면 다시 주섬주섬 서울역으로 들어간다. 네 시 반이 되면 다시 얼기설기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열차 이용객들이 다니기 시작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시간, 알아서 피하는 시간이다. 누가,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 흘끔흘끔 쳐다보는 걸 알면서 바닥에서 자고 싶겠는가. 그게 그 새벽의 세 시간, 결정적인 시간이다. 그걸 서울역이 빼앗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자리를 지켰다. 그건 우리의 시간이다. 그리고 확인했다. 열차 이용객들이 모두 사라진 시간, 서울역을 열어도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걸.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펼쳐질 공간까지 요구할 것이다. 이제, 서울역을 24시간 개방하라는 요구를, 서울역의 어설픈 방침 때문에, 차라리 더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이미 쌀쌀해진 새벽 공기, 더욱 기온이 내려가면, 그 시간과 공간이 바로 노숙인들의 생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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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들어가서 잘 집이, 하다못해 방 한 칸이라도,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가 서울역에서 꼭 자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박2일은 서울역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확인시켜줬다. 매일같이 문이 닫히던 새벽 1시 반이 지나면서 열려 있는 문으로 1박2일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이 쭈뼛쭈뼛 들어왔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있거나 조용히 잠을 청했다. 달리 잘 곳이 있어 서울역 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다만 힘이 없어 서울역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사람들. 우리가 서울역을 함께 열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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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고객이 우선"이라고 말한 서울역 부역장.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꽤 경직되어 있었다. 노숙금지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해야 하는 신분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선량한 고객'들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걸까. 뭐가 됐든 상관 없다. 그는 좀 경직되어도 좋다. 하지만 긴장해야 할 지점이 다르다. 누가 우선이냐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에 경직되기 전에, '선량한 고객'이라는 표현과 동시에 침묵으로 말해진 '불량한 노숙인', 그 둘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서울역이, 우리 모두가 긴장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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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기사가 좀 났다. 지면에도 실렸는지 모르겠으나 조선일보도 친히 기사를 내주셨다. 요지는, 강제퇴거 조치가 오히려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기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숙을 계속 하도록 방치하는 게 그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는 주장엔 1%도 동의할 수 없다"는 서울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 '진보 성향' 단체들이 노숙을 방치하라는 주장을 하는 것처럼 몰아간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서울역이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처럼 보도하기도 한다.

바로 그 '진보성향'의 단체들이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정책을 요구하고, 최근 노숙인 지원법을 제정하기도 하고,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움직이도록 발로 뛰어다니고 때로는 격하게 항의하기도 했던 단체들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강제퇴거가 노숙인들에게 기회가 된 것이 아니라 서울시가 진작 했어야 할 일들을 이제서야 한 것이, 그 노숙인들이 지금에서야 노숙을 벗어날 수 있었던 원인이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쪽방과 고시원에서 잠을 자야 하는 홈리스이지만, 거리 노숙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삶은 많이 달라진다. 그러니 더 일찍 더 많이 그래야 했던 것이다. 강제퇴거와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또한 서울역은 관계부처와 협의를 하며 실질적으로 노숙인들의 자활 지원에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서울시나 보건복지부가 협조를 요청할 때에는 노숙인 문제는 자신들의 사안이 아니라며 버텨온 게 바로 서울역이다. 서울역이 작은 공간 하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만으로도 서울역에서는 훨씬 많은 서비스의 제공과 연계가 가능하다. 서울역이 취해야 할 특단의 조치는 노숙금지가 아니라 지원이다. 이용객 민원 때문이라면서 이용객이 없는 시간에 굳이 노숙이 안된다고 모순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지 말고, 서울역으로 찾아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서울역을 떠날 수 있도록, 공공역사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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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이후 노숙인이 급증하면서 벤치의 팔걸이들이 흔해졌다. 잔인하다, 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그 벤치에서라도 누워 자야 하는 상황이 되니, 팔걸이가 더욱 높이 솟아오른 것만 같고,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벤치에 나무팔걸이들은 많이 뽑히기도 했단다. 뽑을 수도 없는 철제 팔걸이, 쳐다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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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후기를 써보려고 하니 그때 못잔 잠이 밀려오는 건 왜일까. 아, 이제 1박2일 동안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졸리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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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4:37 2011/08/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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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침안개 2011/08/24 21:3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e 노트에 옮깁니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