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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3

 

작은 고민


부모가 운동권 스멜이 솔솔 나는 활동을 하는 자녀를 설득할 때 보편적으로 쓰는 방법들 중 하나가 운동권‘이었던’ 친척을 섭외하여 “야 내가 해봤는데 결국 이러이러 하더라 존내 뒤끝만 길고 씁쓸하니까 하지 마 ㅋ” 를 주지시키는 거랬다. 그렇게 들었었는데, 그걸 실제로 겪고 난 지금, 고민이 생겼다.

외할아버지 생신이었는데, 오후 늦게 큰이모부가 식탁 앞에 앉혀 놓고 대화 좀 하자 하신다. 앗 이거 분위기가 별론데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진청모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정치인들은 순수한 너희들을 이용하기 위해 어쩌구어쩌구, 객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항상 균형을 잃지 말아야 저쩌구저쩌구. 학기마다 강의평가 만점 가까이 받아오는 대학 교수라 그런지 아주 청산유수다. 말도 대략 아웃사이더만큼 빨라서 일반인 2분 분량을 1분에 끝낸다. 이모부 쪼금 다시 보게 되었다. 크으, 저렇게 성적 항의하러 오는 학생들 싸그리 납득시켜 돌려보내는구나. 그렇게 한 30분 듣고 있으니까 뭔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 시발 무서워 뭐야 이게 하다가 또 한 30분 지나니까(한창 네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거슨 딴 거 없고 니 전공 열심히 하는 거다... 라는 개진리를 설명 중) 기분이 나른해지면서 그냥 네 네 ㄱ,그러믄요 가열찬 동의를 열망하게 된다. 적절한 지겨움과 적절한 논리와 적절한 떡밥이 섞인 화술, 이것이 말로만 듣던 최면술이구나.

그러다가 어쩌다 교원평가제 얘기가 나왔다. 이모부가 꺼낸 주제였는데, 무난하게 썰 풀어가다가 중간에 난데없이 등장한 ‘전교조가 바로 국가전복을 조장하는 단체 아니겠냐’ 드립에 게임 끝. 그렇게 장편영화 러닝타임에도 꿀리지 않을 2시간 20분에 걸친 대화는 나으 진의 파악과 이모부의 삽질로 끝났따.


그래서 고민: 그래도 그렇게 수고하셨는데 듣고 반응있는 척이라도 할까 귀찮은데 그냥 생깔까. 예의를 차리는 것도 힘들다.

 

 

 

 

 

작년 말에 썼었나...... 결국 몇 달 동안 나름의 예의는 차렸지만 그걸로 끝 빠염 이제 또 나 하고싶은대로 하고 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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