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결인 채로
봄에 꽤 많이 듣긴 했지만... 저녁에 휴지 사러 슈퍼 다녀오면서부터 박지윤이 간만에 듣고 싶었다. 약간 고생을 했지만, 파일을 구해 내서 포스팅까징. 노래랑은 영 엉뚱한 텍스트이긴 한데... 데리다의 환대를 들으면서 "글쓰기는 환대다" 식으로 해서 데리다의 글쓰기론에 대해 전에 잘 생각 안 해본 게 쬐끔 알듯도 싶어서...... 근데 내가 읽어 본/소장한 데리다 텍스트는 얇은 문고판 한 권. 그것도 학교 다닐 때 전에 무슨 말인 줄도 모르고, 지하철에서 글자만 읽어 갔던 책. 어쨌든 10년 만에 펼쳐서 후룩후룩 넘기다 눈에 걸린 몇 줄.
여성의 유혹은 멀리서 효과를 내므로, 거리는 여성이 지닌 힘의 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 노래, 이 매력에 대해서 거리를 두어야 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믿는 것처럼 이 거리에도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데, 이는 그 매력으로부터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매력을 느껴보기 위함이다. 거리가 필요하다.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며, 우리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솔직한 충고와 유사하다. 유혹하기 위해, 그리고 유혹당하지 않기 위해.('베일들', 41~42쪽)
여성적 거리는 거세와의 관계를 유예하면서 진리를 따로 떼어 놓는다. 여기서 관계를 유예한다는 것은 하나의 돛이나 관계를 팽팽하게 당기거나 펼칠 수 있듯이 하는 것이며, 동시에 미결정상태에—미결인 채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리고 중단상태(εποχη, epoche)에 두는 것이다.('진리들', 51쪽)
_<에쁘롱, 니체의 문체들>, 자크 데리다, 김다은·황순희 옮김, 동문선
박지윤, 7집 <꽃, 다시 첫 번째>, 05 '그대는 나무 같아'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 햇살을 머금고 노래해 내게
봄이 오고 여름 가고 가을 겨울 / 내게 말을 걸어준 그대
그대는 나무 같아 / 그대는 나무 같아
사랑도 나뭇잎처럼 / 언젠간 떨어져 버리네
스르르르륵 스륵 스륵 / 스르륵 스륵 스르르륵 스르륵
봄이 오고 여름 가고 가을 겨울 / 내게 말을 걸어준
봄이 오고 여름 가고 가을 겨울 / 내게 말을 걸어준 그대
동생분이 JYP 신입사원이라면... 가계 말고 김강님 문화 생활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 ^
이 포스팅 적으면서... 인용된 글에 나오는 "여성"이 실제 여성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의 맥락으로 쓰이고 있다는 주석을 달까 말까 했는데... 역시 달 필요가 있었던 걸까요? 데리다가 여성주의자이건 말건 저한테 별 상관은 없기도 하고, 사실은 저의 아주 개인적인 맥락에서 음악과 글을 콜라주한 포스트여서... 각주까지 달면 너무 진지한 포스팅이 되는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안 달긴 했습니다만.
다만... 인용한 글의 맥락 안에서의 "지배" 개념을 가지고 댓글을 단 것이고, 두번째는 제가 "[무엇의] 지배에 관해 말할수록 그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주의에 가까운 철학적 훈련에 노출된 사람이라서... 드러내기보다는 은폐의 전략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인용한 글도 사실 딱 그 맥락이지 않습니까? ^ ^ [좀 어설프게 회피하는 댓글이네요. 포포님에겐 아주 불만족스러울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