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리는 어느 한편이 억압받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교육하고 의식화시키는 방식으로는 결코 인간해방을 이룰 수 없다고 믿었다. 해방에 필요한 것은 선전이나 의식화가 아니라 바로 대화이다. 인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예정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회운동가들은 이런 대화를 무시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근본적인 목적이 ‘민중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민중의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 민중과 더불어 싸우는 것임을 잊고 있다. 민중을 끌어들인다는 말은 혁명 지도부의 어휘가 아니라 억압자의 어휘다. [반대로] 혁명가의 역할은 민중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민중을 해방시키고 자신들도 함께 해방되는 데 있”(《페다고지》, 121쪽)다. 그래서 교육하는 사람과 교육받는 사람은, 엘리트와 대중은, 혁명가와 민중은 서로 다른 존재일 수 없고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본문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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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2 16:39 2015/09/0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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