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살아온 날을 세기 어려울 만큼 나이를 먹어왔는데
요즘에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내안에 내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타자의 시선은 넘쳐나는데
그 어지러운 시선과 소리들에는 민감해왔는데 정작 내 시선과 내 소리 내 느낌은
비중을 두지 않고 머물러주지 않았고 존중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리불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혹은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라도 다행이다. 나없는 나를 인식할 수 있어서,
의존적이던 나, 기울어져있던 나를 세우는 일, 분리해보기 작업, 혼자 있어봄. 스스로 존재할 수 있음
이 작업이 지금 내가 마음을 쏟아야 할 일이다.
불안=통제=힘을 씀=남을 조정하고 싶은 욕심=못마땅함
이런 이와 함께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면 분리를 해주는 일, 그 일이 나로부터 먼저 되어져야 할 것인데
분리가 되기 위해 우선은 자아감이 있어야 한다.
자아감이 없을 때 휘말리게 되고 안좋은 역동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된다.
힘을 휘둘러서 타인의 존재자체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편집성과 나르시시즘적 역동을 갖는 이와
관계한다는 건 숨막히고, 그런이가 휘두르는 죽음본능에서 비롯된 폭력성은 무서운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파생되는 두려움과 무서움의 근원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는게 함정이다.
이걸 찾아야 한다. 그래야 힘이 무자비하게 휘둘러지는 상황가운데서
너도 살고 나도 살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다른 무슨 소유보다 더 중하게 소유할 것은 자아감인 것 같다.
내가 나를 아는 것, 그 어느것에도 의존적이지 않는 자아를 봐주고 기다려주고 받아들여주는 것,
거기서부터 비롯될 것이라는 힌트를 얻은셈이다.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