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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6/17
    6월 18일 오후7시, 강원도 고한 '흑빛청소년문화센터'에서 상영회가 열립니다(2)
    카메라아이
  2. 2007/06/14
    [문화] 생태적 대안을 꿈꾸는 몸부림 [오마이뉴스]
    카메라아이
  3. 2007/06/12
    6월 12일 연구공간 수유+너머 에서 상영회를 합니다.
    카메라아이
  4. 2007/06/10
    스틸 이미지
    카메라아이
  5. 2007/06/06
    기획의도
    카메라아이
  6. 2007/06/06
    시놉시스
    카메라아이

6월 18일 오후7시, 강원도 고한 '흑빛청소년문화센터'에서 상영회가 열립니다

6월 18일 오후7시, 강원도 고한 '흑빛청소년문화센터'에서 상영회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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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태적 대안을 꿈꾸는 몸부림 [오마이뉴스]

생태적 대안을 꿈꾸는 몸부림
제3회 <부안영화제> 때늦은 후기

 

권오성(kosmosos) 기자
2006-11-19 11:23
ⓒ 2006 OhmyNews

 

...(중략)

개발의 논리에 해체되는 삶의 공동체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4시부터는 '환경과 삶' 부문의 작품이 상영됐다. 다큐멘터리 <어부로 살고 싶다 - 살기 위하여>(이강길)는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인해, 그동안 갯벌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어부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언론에 비친 과격한 이미지 탓에 선입견을 가지고 미리부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이들이 꼭 봐야 할 영화였다. 감독은 어부들의 삶과 투쟁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어떻게 그들의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는가를 잔잔하게 담아냈다. 대책위 지도부의 '혼선', 환경단체와 명망가들의 '변명' 등이 화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게 드러난다.

 

객석에 불이 들어오자 거개가 영화 속에 등장했던 분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앉아 있었다. 상영중에 간간히 훌쩍 하던 소리도 이들의 울음이었던 것이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젖은 눈만 깜박거리는 이들의 감회는 무엇이었을까! 합의한 보상안조차 불투명한 이들의 생존 투쟁이 정부와 언론에 무시당할 만큼 가치 없는 일인가!

...(후략)

 

출처 : 권오성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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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연구공간 수유+너머 에서 상영회를 합니다.

6월 12일 연구공간 수유+너머 에서 상영회를 합니다.

 

화요토론회 6월12일 7:00 이강길 감독<살기 위하여-어부로 살고 싶다> 상영 및 새만금 관련 이야기

 

찾아오는길

 

 


이름 : E-mail
제목 : 6월 12일 화토] `어부로 살고 싶다-살기 위하여` 상영..


6월 12일 화요일 연구공간 수유+너머 화요토론회 시간에는(저녁 7시)
2000년 무렵부터 꾸준히 새만금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 오신
이강길 감독님의 <어부로 살고 싶다 - 살기 위하여>를 함께 보고,
감독님을 비롯해 새만금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새만금' 운동을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떻게 계속하면 좋을지
아이디어 회의를 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12일에 볼 작품은 <어부로 살고 싶다>의 세 편의 연작 중 가장 최근 작품으로,
계화도를 중심으로 한 2006년의 새만금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러닝타임 75분)

아시다시피, 2006년은 새만금 투쟁에서 가장 결정적인 해였습니다.
3월에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났고, 4월 21일에는 끝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개들, 게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하셨던 고은식님의 동반자이셨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싸움을 계속해 오신 새만금의 전사 류기화님이
정부의 예고 없는 수문 개방과 위험한 작업 조건 탓에 일찍 세상을 떠나셨던 해입니다.

영화는 대법원 판결을 전후한 어민들의 시위,
그리고 '새만금 투쟁'에 많게 적게 관련되어 있었던(또는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끝물막이 공사 이후 떼죽음을 당한 동죽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해,
가장 결정적인 시기의 투쟁이 왜 무너지게 되었는지 '가감없이' 분석하고,
그 전해인 2005년의 투쟁들,
즉 맨손어업자로서 누구보다 갯벌에 밀착된 삶을 살았고 살림을 실질적으로 꾸려 왔던 '어머님'들이
농림부 항의 방문, 청와대앞 일인 시위, 끝물막이 공사 현장 시위를 해 나가시는 모습을
촌철살인의 인터뷰들과 함께 담아 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일만 있으면 달려가는, 정이 무섭다는 말을 잘 아는 '활동가'들의 모습도 나옵니다.
그리고, 류기화님의 장례를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10년 여 지속되어 온 큰 싸움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지역이며 수억, 수십억의 생명들이 학살당한 곳,
2만 이상의 전북도 어민들이 '전북도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었던 곳,
그리고 갯벌을 죽이기 위해 주변의 무수한 산들을 깎아 내야만 했던 곳,
그곳이 '새만금'입니다.

새만금을 보면 한국사회의 많은 부정적인 면모들이 보입니다.
개발주의, 성장주의, 관료주의, 주류정치의 '대중'선동, 부동산 기반 경제, 공익 개념의 허구성,
사유화와 추방, 인간중심주의, ...

그리고 최근의 매일경제신문 보도는
이런 문제들이 앞으로 수십년 간 새만금에서 반복적으로,
더욱 큰 규모로 출현할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 줍니다.
예산은 크게 오버되었고, 복토에 필요한 토사는 8%밖에 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성격의 재앙이 덮쳐올 지는, 이미 시화호의 상황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할 곳은 새만금만은 아닙니다.
농촌공사에서 발간한 <서남해안 간척자원도>를 보셨나요?
위에 첨부된 그림입니다.
그 크다는 새만금도 '새발의 피'입니다.
더욱 더 큰 외해방조제를 건설해 영산강까지 잇는,
새만금보다 4배 큰 땅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버젓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파란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 참조.)
이렇게 색칠공부에 불과한 상상력이
무수한 삶들(어민과 갯지렁이, 그리고 다른 모든)이 자신을 기대고 있는 곳에서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고 있습니다.
제 눈에는 새만금조차 용지조성이 완료될 가능성이 불투명해 보이지만,
정말 또 다른 외해방조제 건설이 추진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것은 우리가 새만금을 '포기하고 돌아설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최소한 농촌공사가 탄탄한 관료기구로 남아 있는 한,
건설족들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국익'내지는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국책사업에 세금이 유입되는 한,
무엇보다 소외된 삶을 살아가며 '지역개발'에 마지막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비슷한 사태들은 계속 벌어질 지도 모릅니다.

요즘 '운동-이후'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새만금 투쟁을 회고적인 관점에서 성찰해 보는 또 다른 유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다른 투쟁의 길을 물을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라고 말하면 너무 비장한가요?
이렇게 말하면 부끄럽기도 할 뿐더러, 이 말이 실례라는 점을 우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삶이 지속되는 한 삶이 그대로 투쟁이고, 최소한 계화도에는 많은 주민들이 남아 있습니다.
긴 호흡으로 가야 할 것이고, 다른 방향으로 운동의 흐름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을 지속하는 힘, 일상의 힘, 끈질김의 힘,
그것들을 보여 주기 위한, 그리고 삶을 살아가기 위한 '투쟁의 물리적 근거'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아주 작아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무엇.
국익을 근거로 추방된 그 곳에서,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삶의 생산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러한 지지대가 될 수 있는, 아주 작아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그 무엇.
"투쟁은 길을 묻지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
이 말이 요즘 가장 자주 떠오르는 말입니다.
저와 새만금의 인연은, 새만금 싸움이 '다 끝난 후에야'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삶과 싸움을 지속하고 계시는 계화도의 어민분들을 보며 여전히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많은 분들 오셔서,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했으면 좋겠어요.
6월 12일 화요일 저녁 7시입니다. ^^
Posted at 2007-06-04 Mon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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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이미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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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 살기 위하여 - 어부로 살고 싶다 > 기획의도

 

“우리가 갈 곳이 없다. 우리는 한마디로 짓밟힌 것이다.”


새만금은 없었다. 단지 그 자리에 바다와 갯벌, 그리고 수많은 생명들과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바다와 갯벌에 대해서는 평생 바다와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어민들이, 진정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굳이 달력을 보지 않아도, 시계를 보지 않아도, 이미 그들 몸이 자연의 시계에 맞춰져 있었고, 전문 최첨단 장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어느 곳에 가면 어떤 물고기와 조개들이 있는지 훤히 알고 있다. 단지 그럴듯한 학위와 화려한 언변이 없었을 뿐이다.

 

새만금방조제 끝물막이 공사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새만금연안주민대책위’내에서도, 흔들림 없이 ‘바다와 갯벌을 살려야 한다’는 쪽에 있던 이들이 바로 큰 배로 바다에 고기 잡던 어부들과 갯벌에서 맨손어업으로 조개캐던 어민들이었다. 고기잡이 보다 면세유에 눈이 벌건 선외기(작은 배) 선주들과 어촌계장이니 이장이니 하는 감투 쓴 사람들은 ‘환경단체도 떠나라’,‘신부도 떠나라’며 그 동안 혼심의 힘을 다해 싸웠던 이들을 밀어내고, 그동안 지역에서, 중심에서 새만금공사를 중단시키고 마을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애쓴 동료 주민마저 외면한다. 처음 맹세를 저버리고 대충 반대하는 척 하다가 바로 정부와 협상에 들어가 보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방조제끝물막이공사가 끝나자 정부는 주민대책위가 요구한 그 어떤 보상도 주민들에게 안겨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모든 책임이 단순히 보상을 요구한 주민들에게만 있는 것일까? 새만금갯벌의 마지막 숨통이 조여지는 그 순간, 새만금이 사회적인 이슈가 될 때마다 ‘새만금을 중단하라’ 외쳤던 명망가들과 환경단체들은 대체 무엇을 하였던가? 단순히 주민들이 ‘떠나라’하니 주민들 의사를 존중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저 안타까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대법원 판결 이후, 그들에게 ‘끝까지 새만금갯벌을 살려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던가? 단지 사회적 비난을 비켜 갈 궁리만을 하지는 않았는가? 현장에 와서 소리 한번 외치고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 몇 마디 한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전부였었는가? 처음 약속을 저버린 것은 비단 주민대책위만은 아닌 것이다.


나는 바로 나 자신과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같은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다. 이들의 평화로웠던 공동체가 서서히 파괴되어지는 것,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이며, 누구일까? 아무도 갯벌에 관심조차 없을 때, 그곳에서 묵묵히 살았던 어민들의 공동체가 누구를 위한 개발에 파괴당하는 것일까! 이것은 비단 새만금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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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 살기 위하여 - 어부로 살고 싶다 >

다큐멘터리 | 75분 |  이강길 연출,제작 | DV | 컬러 | 스테레오 | 2006

 

 

 

시놉시스


"사람들 고문하고, 괴롭히고 그러면 신문이나 방송에도 나오지... 갯벌에 저 많은 생명을 물이 없어 죽어가는 걸 보면 견딜 수가 없어..."

 

새만금간척사업 기간 동안 갯벌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카메라는 그들의 삶과 인식에 어떤 변화들을 가져왔는지를 천천히 쫓아간다.


정부와의 힘겹고 지난한 싸움 중에 계화도 사람들 내부에도 서서히 대응방식과 해결에 대한 경계들이 감지되고 또한 반목으로 이어질 조짐들이 나타난다. 살기위한 인식은 같았지만, 갯벌에서 조개를 캐며 살아가던 어머님들과 배를 가진 선주들의 목적은 대책위를 이루는 사람들과 조금씩 갈라진다. 캐던 조개 계속 잡도록 갯벌을 유지할 수 있게 해수유통과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계화도 어민들과 금전적 보상과 간척지 지분을 요구하는 또 다른 계화도 주민들…


하지만 정부는 어느 쪽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을 이용하여 서로를 분열시킨다. 지금까지 함께 공존했던 계화도 사람들과 갯벌의 생명들, 모든 함께 했던 공동체가 서서히 파괴되어가는 것을 주민들 스스로 절감하게 된다. 막바지 물막이 공사를 해상시위로 막아보려는 계화도 사람들의 살기위한 몸부림은 대책위 지도부의 혼선으로 이어지면서 공사의 마무리를 찬성 측과 현장건설사의 환호 속에 묻힌다. 생명력을 잃어가는 갯벌을 바라보는 계화도 어민들의 감정도 복잡해진다. 서서히 죽어가는 갯벌과 바다, 그 피해는 단순히 환경재앙을 너머 자신들의 삶을, 생명을, 위협한다. 마지막 기회였던 물막이 저지 해상시위를 섣부른 협상에 내여 준 결과였다.


카메라는 주민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함께했던, 힘을 보태주었다고 생각했던 명망가와 환경단체들에게도 다가간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 사회적 비난을 비껴 갈 각 단체의 변명만을 이야기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하고 모든 몫을 주민에게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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