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Coffee&Cigarettes, Jim Jarmusch, 2003)>

 

 

짐 자무쉬는 나이가 들수록 재담꾼이 되어가는 듯. 영화 내내 농익은 유머가 넘친다.

 



 

생각해보면 커피와 담배 만큼 자무쉬의 영화에 어울리는 소재가 있을까?

 

이 영화의 '르네(Renee)' 에피소드에서 단적으로 보여지듯이 커피의 검은 빛깔과 담배의 하얀 연기의 뒤섞임이 주는 묘한 매력은, 그의 흑백 화면에 대한 애착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커피와 담배는 미국의 하층계급과 예술가 계층이 '공유'하는 몇 안되는 문화코드이지 않은가?(한국에서도 최근 그런 낌새가 보이긴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흡연은 사회적 낙오자들, 즉 루저(loser)를 상징하는 문화코드이다. 커피의 경우는? 영화 대사에서도 나오듯이 "샴페인이 부자들의 것이라면 커피는 가난한 이들의 것"이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브로큰애로우>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미국 사회의 루저들의 삶과 그들 간의 소통 문제를 미학적으로 그려 온 자무쉬의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커피와 담배는 어쩌면 그의 영화 세계 전체를 보여주는 은유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자무쉬 본인이 열렬한 담배 예찬론자란 소문이 있다.) 

 

아무튼 그냥 '커피'가 아닌 '에스프레소 꼰빠냐'나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서 담배 대신 피트니스 클럽의 러닝 머신을 선택하는 중간계급의 '구별짓기(distinction)'가 공공연하고(자무쉬는 이 영화의 '사촌(Cousin)'이란 에피소드를 통해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커피 한 모금과 담배 한 대가 자신들의 웰빙(well-being)을 그렇게나 심대하게 무너뜨릴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나르시즘적 주체들이 판치는 시대에.. 여전히 우리 사이에는 커피와 담배를 통해 할 얘기들이 많이 남아있음을 담담하고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자무쉬의 화술에 박수를 보낸다.

 

 

덧 하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일주일 동안 '끊었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이 영화의 최고 명대사라고 생각되는 톰 웨이츠(Tom Waits)의 궤변을 떠올리면서.. 

 

"담배를 끊어서 좋은 게 뭔지 알아? 이제 담배를 끊었으니 한 대 쯤은 피워도 괜찮다는 거지.."

 

 

덧 둘.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어뚱하게도, 예전에 읽은 커피 산업이 어떻게 남미 경제를 종속화시켰는지에 관한 이성형 씨의 글(<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까치글방, 2003)이 떠올랐다. 커피라는 단순한 일상의 기호품을 둘러싼 역사와 삶의 두께는 얼마나 층층이 져 있으며, 그에 대해 할 얘기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덧 셋.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는 로베르토 베니니, 스티브 부세미, 빌 머레이 같은 화려한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음악을 잘 모르는 나도 이름만은 많이 들어본 이기 팝(Iggy Pop)과 톰 웨이츠가 '캘리포니아 어딘가(Somewhere in California)'라는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둘이 생각보다 얼마 안 늙었다고 의아해했는데, 알고보니 이 에피소드는 13년 전인 1993년에 촬영된 것이었다. 자무쉬는 1986년부터 한 두 편씩 커피와 담배에 관련된 단편 영화들을 촬영해 왔고, 이번 기회에 몇 편을 더 추가해 총 11편의 단편을 모아 이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참 오래되고 뿌리깊은 커피와 담배 사랑이다.

 

 이기 팝(Iggy Pop)과 톰 웨이츠(Tom Waits)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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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5 23:50 2006/08/15 2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