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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열사 정신계승

 

 

덟분의 열사분들이 무죄판결 받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4.9제....

 

여정남선배를 죽였던 그 놈은 아직도 경북대사범대에 부조상으로 살아남아 활개치고 있는데..

뭐 아직도 대구,경북 아니 이 땅에 박정희로 먹고 사는 인간이 한 둘이랴?

 

수첩공주는 아무런 사죄하나 하지 않고 있고..

청계천 수평분수 설계자는 투스타시절의 시대정신 개발독재를 비전인양 얘기하고 있고..

 

살인자는 여전히 살아있는데..죄값은 전혀 받지 못했는데..

무죄판결은 누가 내려주는거지..?

 

 

 

학 때 4.9제를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

 

다른지역의 학교는 4.18 뜀박질이니 4.19니 준비하고 있고..

4.3이나 5.18도 특별위원회, 특별법등이 만들어지는 지면서..

진상을 알려내고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들이 보이고 있는데..

 

우리들은 추모비를 사수하기 위해서 밤을 세면서 지키고 있었다.

뭔가 우리들만이 이 추모비를 지키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고..

시민들은 빨갱이라고 하고.

4.9열사는 여전히 홀로 있다는 느낌이었다.

 

무죄가 선고된 지금도 그런 느낌은 여전하다.

 

 

 

방정국에서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여러 진보적 인사들이 모여서 조선의 모스코바라고 불렸던 대구...

 

46년 10월항쟁의 시발지가 되었던 대구.

60년 이승만정권이 종말에 치닫고 있을 때에도 가장먼저 분연히 일어나 2.28의거를 일으켰던 야당의 도시 대구..

 

이 도시는 언제 이렇게 꼴통도시가 되어버렸지?!?

 

 

 

정희가 의도한대로 된 것인가?

 

대구,경북지역의 진보적 인사만 선별하여 사형시키고

대구의 진보적 색채를 없애버리겠다는 의도?!

 

부마항쟁에서 10.26, 서울의 봄에서 5.18까지..

75년의 이 사건으로 대구는 진보의 역사에 함께할 동력을 많이 상실해 버린 듯 하다.

 

영남(꼴통)보수라는 지형에서 부산이나 대구나 별 다를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부마항쟁"에 대해서 기억하고 계승하고 있다.

그차이는 작으면서도 대단히 크다.

 

 

"전두환 시절이 좋았지..깡패들 삼청교육대로 보내서 범죄없고..경제는 발전하고..

전라도 놈들이 광주에서 빨갱이 난동이 부린걸 전두환이 막지 않았으면 큰일날뻔 했지.."

"박정희가 없었으면 우리나라 아직도 돼지 꿀꿀이 죽 먹고 있었을꺼야"

 

이렇게 생각하는 수많은 대구사람들에게..

4.9열사들의 무죄선고는 크게 의미가 없는 듯 하다.

 

빨갱이들이 좌파정권(???)들어서니까 다 유공자 된다는 비아냥..

 

 

정희를 욕하는 자에게 "죽은 자는 욕하는게 예절이 아니라고?" 

 

살인한자의 죽음은 용서가 되고 살해당한자의 죽음은 빨갱이라 매도하거나 아예 잊어버리는게.. 

제대로 된 상황이냐?

 

 

박정희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있을 때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영생하려 하고 있다.

욕을 많이 쳐먹으면..오래산다더니..김재규 총알먹고도 죽어서도 죽는게 아니야.가 되버리네.

 

 

사님들의 무죄판결과 복권 물론 중요하다.

 

그 열사님들의 무죄판결과 복권 이런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구,경북에서 32년전에 멈춰진 역사발전의 진보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열사님들의 바램도 다름아니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구에 없는 대구인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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