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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를 위한 변명

 아침부터 어머니가 신발장에서 출근하며 신을 신발을 고르다가 내 운동화 한 켤레를 흘끔 내려다 본다. 좀 빨아 신어라, 이게 뭐냐. 출근길 배웅을 하려던 나는 속으로 욱하면서 올라오는게 있다. 성질이 그래서일까, 가족이라 더 그런걸까. 머리 뒤에서 스트레스가 올라오는 것 같다. 전에는 빨아서 깨끗하니 신고다니더니. 문을 열고 나가며 엘리베이터를 타며 기어이 한마디 또 한다. 오늘도 열심히!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어머니는 손을 흔든다. 나도 맞춰 손을 흔드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열심히 대자보 붙일게라고 내지른다.

 

 나는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정치단체에서 활동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정치운동을 한다. 우리가 하는 정치운동 중에는 정치적, 사회적 주장을 큰 종이(전지)에 써서 대학 안에 있는 게시판에 붙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게 대자보 붙이기다. 대자보를 붙인다는 건 글씨를 쓰는건 필수지만 한가지가 더 있다. 발품이다. 자취집, 하숙방, 고시원 구하는 것도 발품이 필수지만 대자보 붙이기도 발품이 필수다. 특히 여름에는 발품파는게 말이 아니다. 햇볕은 떨어지니 땀은 주저없이 쏟아지고 목은 말라온다. 더구나 요즘은 게시판을 학교와 학생회들이 없애면서 대자보를 붙일 공간도 없다. 게시판이 더럽다고 없애가며 우리의 발품을 늘려준다. 왜 더럽냐면 어떤 학교는 게시판을 없애는게 클린(깨끗한)캠퍼스라는 학교 정책 차원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게시판은 더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쯤되어도 발품 파는게 고생스럽지 않다. 나를 정말 좌절하게 하는 것은 대자보를 붙인 다음이다.

 

 어느날은 다른 사람들과 대자보를 붙이고 파업중인 노동조합에 율동교육을 갔다. 율동은 대중가요와는 다른 민중가요라는 것에 맞춰 여러 사람들이 하는 일종의 춤이다. 율동은 문예선전 줄여서 문선이라고도 한다. 이런 율동은 보통 정치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많이 하는데 때로는 노동자들에게 교육하기도 한다. 그날 율동교육은 처음임에도 너무나 재밌게 배우는 노동자들 때문에 나도 신나게 율동을 했다. 하지만 햇볕에 그대로 몸을 던져 율동을 하니 발부터 온몸으로 땀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약 1시간 동안 교육을 끝내고 땀에 절어있던 발을 떼어 저녁에 다른 학교에서 있던 강의에 갔다.

 거의 하루종일 움직이고 나서 앉아있으려니 발이 저 혼자 꼼지락 거리는 것 같았다. 근질거림에 참을 수 없어 신발을 벗고 발을 신발 위에 올려놓고 강의를 들었다. 다행히 내가 앉은 의자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지만 발밑에서 올라오는 청국장냄새를 맡자니 그것도 그것대로 난감하고 괴로웠다. 결국 그렇게 아무에게도 말할수 없었던 괴로움을 홀로 씹으면서 2시간 강의를 들었다. 이러니 운동화가 꼬질꼬질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다.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운동화에 솔질을 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몇일이 지나 원래대로 돌아가는 운동화에게 미안하다. 아침에 한마디씩 내지르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변명해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해진다.

 

 이렇게 사는게 가족으로부터는 지지를 받지 못하긴 한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열심히. 언제부턴가 어머니의 저 인사가 뭘 하든 열심히 살아봐라는 뜻일거라고 받아들이며 아침처럼 그저 고개를 끄덕일뿐이다. 운동화를 위한 변명 아닌 변명도 당분간 가족에게 전하지 못하겠지만 그들이 내 삶을 인정하는 날까지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비록 현실은 발에서 술술나오는 청국장 냄새라고 하더라도 괜찮다. 주말엔 다시 운동화에 솔질을 해야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운동화를 위한 변명은 솔질밖에 없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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