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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3호>노동자 올빼미들의 1년, 꼭 승리하고 싶다

 

“잊지말자, 5·18”
5·18, 30여 년 전 군부독재를 위한 피의 학살이 저질러졌던 그 날의 광주는 이제 ‘기려지는 곳’일 뿐, 싸워야하고 밝혀야 할, 그래서 응당히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운동과 투쟁’은 사라지고 있다. 한 번의 망설임이, 단 한 번의 체념이 갖는 역사적 대가는 ‘반복’이다. 5·18, 유성지회 노동자들에겐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역사다.

20년의 역사
1990년 공권력투입 이후 민주노조를 굳건히 세우며 근 20여년을 투쟁해 왔던 유성지회. 20년 민주노조 역사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노조라고 하면, ‘거기 임금 꽤나 높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유성지회 20년 역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기름 때 묻은 장갑 한 짝 조차 바꿔주지 않던 현장, 수백 명이 사용하는 화장실에 두루마리 화장지 달랑 하나뿐이었던 현장을 절절한 선동과 헌신, 투쟁을 통해 바꿔냈다. 그런 현장투쟁의 역사는 20년간 지속됐다. 자신이 직접 이야기한 원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왔다.
거의 모든 현장이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을 받아들일 때 구조조정을 철회시키면서 임금인상을 이뤄냈다. 96·7 총파업에선 장기간 파업을 이끌며 투쟁했으며,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어느 곳 보다 빠르게 법제화 전에 40시간 합의를 이끌어냈다. ‘야간노동철폐’의 요구는 이런 유성지회 투쟁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그렇기에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중소사업장에서 무슨 주간연속 2교대냐’라는 말은 틀렸다.

치열한 현장
유성자본과 완성차자본의 의도는 명확했다. 현장복귀 이후 전조합원 싹쓸이 징계는 현장 노동자들의 존엄을 짓밟고, 길들이는 과정이었으며, 주요 활동가들의 축출을 목표로 했다. 연이어 유성자본은 어용노조 가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노동자들의 약점, 친인척관계, 업무배치 차별, 인간적 차별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이 총동원됐다. ‘어용노조 조합원들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하면 공정배치 해준다’라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지금도 하루에도 수십 번 인간성을 실험 당한다. 그럼에도 작년 한해 뜨거운 여름을 버티며 끝까지 ‘야간노동 철폐, 민주노조 사수’를 외쳤던 노동자들은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잊고 싶은 5·18
역설적이지만 유성지회 노동자들은 5·18을 잊고 싶어 한다. 투쟁영상을 통해 지난 흔적들이 되새겨질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돌리고야 만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승리하고 싶은 거다. 이기고 싶은 거다. 오랜 현장투쟁의 역사에서처럼, 환하게 웃고 싶은 거다. 유성지회 노동자들은 자본과의 근접전을 통해 승리할 수 있는 자심감이 있다. 그건 이미 유전자처럼 뼈 속에 박혀 있다. 유성지회는 당분간 그렇게 자본과의 근거리에서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문제는 장기투쟁사업장이라 칭하며, 한 번의 생색으로 끝나는 연대나 집회가 아니어야 한다는데 있다. 말로만 외쳐지는 총파업이 아니라, 부품사 사업장들이, 완성차 지부들이, 지역이 실제적인 대중투쟁을 만들어야 내야 한다. 한 번의 망설임과 한 번의 체념이 또 역사의 반복을 만들 수 있다.

장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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