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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9호> 성폭력, 처벌과 감시 강화의 불편한 진실

성폭력, 처벌과 감시 강화의 불편한 진실

 

 

 

늘어나는 성폭력 발생건수


몇 년 전부터 끔찍한 아동성폭력 사건만 등장하면 한국사회는 성폭력 범죄에 관한 논의로 달궈진다. 매번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마치 성폭력이 아동과 장애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범죄인양 다루어지며,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화학적 거세, 전자발찌, 신상정보 공개 확대 등으로, 정부는 이러한 관심을 잠재우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및 전체 성폭력 발생 건수는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 7월 성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았고, 국회 개원 이후 수많은 성폭력 처벌 강화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그러나 아동, 장애인 대상 성폭력사건에 대한 전 국민적 공분이 지속적인 관심이 되기 위해서라도, 성폭력이 아동과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가 있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피해자 유발론?


아동성폭력 사건에 대한 공분에 비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폭력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2011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려대 의대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 문란했다’는 내용의 설문지를 뿌렸다. 재벌기업인 현대자동차는 성폭력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성희롱·부당해고 피해여성노동자의 이혼경력을 들먹이며, 평상시 문란하다는 내용의 문서를 국회에 돌린 바도 있다.
얼마 전 발생했던 통영 사건에서 언론사들은 피해 아동이 가해 남성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한 것을 문제시하며, 마치 피해자의 부주의를 지적하는 보도를 내보내기까지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여전히 한국사회는 성폭력 피해를 피해자 탓이나 부주의로 인식하거나, 가해자가 순간적인 성욕을 참지 못해 일어난 실수라는 관용적 태도가 팽배하다. 그런데 미성년자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서는 국민의 95%가 처벌이 미흡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전자발찌, 신상정보 공개가 근본해결책?


성폭력 고소율이 한 자리수를 기록하는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끊임없이 피해를 스스로 입증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가 보장받기는커녕 제대로 보호받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급조하여 발표하고 있는 전자발찌 대상 확대, 신상정보 공개 확대, 화학적 거세 등 ‘처벌과 감시’ 중심의 대안은 실효성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성폭력 근절을 위한 우선적 대책이 될 수 없다. 이미 성폭력이 발생한 상황 이후에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보다는, 성폭력 예방 중심의 접근과 피해자에 대한 지원체계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
 

 

성폭력의 원인,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도 성폭력 가해자 일부에게 전자발찌를 끼우고 신상정보를 공개하여 그들만 피한다면, 모든 성폭력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고 싶어 하는 정치권력은 국민의 공분과 불안을 이용하여 성폭력이 여성을 억압하고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계속해서 감추려 하고 있다. 그 속엔 뭔가 불편한 진실이 숨겨있을 것이다.
한국형 슬럿워크 잡년행진에서 외쳐졌던 구호를 기억해 보자. “어떤 옷을 입던 성폭력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꼴리는 건 본능이지만, 덮치는 건 권력이다”는 성폭력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제기하고 있다. 성폭력의 근원은 성욕이 아닌 권력관계와 폭력성에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감춰진 채,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사회에서, 불쾌한 시선과 신체적 접촉이 일상적으로 용인되는 사회에서, 성폭력은 근절될 수 없다.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 보자. 성폭력이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임을 인식하고,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이 아니라 ‘성폭력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자. 여성을 둘러싼 구조적 폭력과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여성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임을 인식하고 함께 투쟁하자.

 

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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