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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버스”를 “희망의 공장”으로!
6월 11일 밤 11시 30분, 전국에서 출발한 버스들이 부산대교 앞에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이들이 부산에 온 것은 조선소 노동자들이 자본의 이윤 논리에 목이 날아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희망의 버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경찰이 아닌 용역깡패들이었다. 6월 10일 회사 측에서는 11~12일 “희망의 버스”를 봉쇄한다는 목적으로 용역깡패 800여명을 투입해 회사의 출입문을 장악하는 작전을 펼쳤다.
제일 먼저 특수선문을 빼앗겼고, 조합원들은 출입문 안쪽으로 들어와서 소화기, 고압에어호스를 설치해 용역과 대치했으나 역부족이어서 출입문을 완전히 용역들에게 빼앗겼다. “쇠파이프로 무장해 한판 붙어보자”고 했으나, 지도부에서 이를 말려 제대로 싸움도 해 보지 못하고 용역들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희망의 버스”는 다시 희망을 만들어 주었다. 용역들에게 현장을 장악당한 상태이고 경찰병력 25개 중대까지 합세하여 정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치밀한 작전을 준비하였다. 200여개 정도의 쇠사다리를 준비하고 “희망의 버스” 동지들이 85크레인 밑 담벼락으로 이동할 때 조합원들은 신속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담벼락에 다리를 설치하고 연대동지들을 보듬어 안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경찰들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용역을 수백 명을 배치하고 경찰병력을 수천 명을 배치했으나 노동자들의 일사 분란한 작전에 그들의 봉쇄망은 뚫리고 말았다. 현장으로 들어온 연대 동지들은 정문으로 이동해 용역깡패를 몰아내었다.
“희망버스”를 보내며 조합원들은 두려움에 잠겼다. 연대 동지들이 떠나고 나면 회사가 즉각 용역깡패와 공권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지도부들은 더욱 이련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지도부 일부에서는 “희망의 버스” 아닌 “절망의 버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러하지 않았다. “희망의 버스”가 전국으로 알려져 나가고 먼저 현장을 나가던 김여진과 날라리 동지들이 경찰에 임의 동행을 당하면서 순식간에 언론 매체를 통해 한진중공업 공권력 침탈을 반대하는 전국적 여론이 형성되었다. “희망의 버스”는 노동부 장관을 한진중공업으로 불러왔고, 조남호 회장을 국회청문회까지 출석케 했다.
“희망의 버스”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의 새로운 물꼬를 틔우고 있지만 전면파업 6개월을 넘기고 있는 현장은 마냥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정권과 자본은 또 다시 압박을 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6월 17일 오전 10시경에는 “출입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문 고시를 부산지방법원 집행관들이 현장에 와서 부착했다. 조합원들은 7월 9일(토) 제2차 “희망의 버스”에 더욱 기대를 하고 있다. “희망의 버스”가 희망의 배로, 희망의 공장을 만들어 내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다.
현재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은 좁게는 한진중공업 자본과 싸우는 것이고, 넓게는 이 땅에서 자본이 남발하고 있는 정리해고를 전면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운동세력과 진보세력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본다. “희망의 버스”는 대부분 일반시민들로 구성되어 자발적으로 참여 하고 있다. 2차 “희망의 버스”가 오는 날은 동료들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김진숙 동지가 85크레인에 오른지 185일째가 되는 날이다. 그래서 “희망의 버스” 185대가 김진숙 동지를 안전하게 우리들 품으로 안아 올수 있는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동지들의 연대를 호소한다.
박성호(한진중공업 해고자)
6월 11일 밤 11시 30분, 전국에서 출발한 버스들이 부산대교 앞에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이들이 부산에 온 것은 조선소 노동자들이 자본의 이윤 논리에 목이 날아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희망의 버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경찰이 아닌 용역깡패들이었다. 6월 10일 회사 측에서는 11~12일 “희망의 버스”를 봉쇄한다는 목적으로 용역깡패 800여명을 투입해 회사의 출입문을 장악하는 작전을 펼쳤다.
제일 먼저 특수선문을 빼앗겼고, 조합원들은 출입문 안쪽으로 들어와서 소화기, 고압에어호스를 설치해 용역과 대치했으나 역부족이어서 출입문을 완전히 용역들에게 빼앗겼다. “쇠파이프로 무장해 한판 붙어보자”고 했으나, 지도부에서 이를 말려 제대로 싸움도 해 보지 못하고 용역들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희망의 버스”는 다시 희망을 만들어 주었다. 용역들에게 현장을 장악당한 상태이고 경찰병력 25개 중대까지 합세하여 정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치밀한 작전을 준비하였다. 200여개 정도의 쇠사다리를 준비하고 “희망의 버스” 동지들이 85크레인 밑 담벼락으로 이동할 때 조합원들은 신속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담벼락에 다리를 설치하고 연대동지들을 보듬어 안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경찰들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용역을 수백 명을 배치하고 경찰병력을 수천 명을 배치했으나 노동자들의 일사 분란한 작전에 그들의 봉쇄망은 뚫리고 말았다. 현장으로 들어온 연대 동지들은 정문으로 이동해 용역깡패를 몰아내었다.
“희망버스”를 보내며 조합원들은 두려움에 잠겼다. 연대 동지들이 떠나고 나면 회사가 즉각 용역깡패와 공권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지도부들은 더욱 이련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지도부 일부에서는 “희망의 버스” 아닌 “절망의 버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러하지 않았다. “희망의 버스”가 전국으로 알려져 나가고 먼저 현장을 나가던 김여진과 날라리 동지들이 경찰에 임의 동행을 당하면서 순식간에 언론 매체를 통해 한진중공업 공권력 침탈을 반대하는 전국적 여론이 형성되었다. “희망의 버스”는 노동부 장관을 한진중공업으로 불러왔고, 조남호 회장을 국회청문회까지 출석케 했다.
“희망의 버스”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의 새로운 물꼬를 틔우고 있지만 전면파업 6개월을 넘기고 있는 현장은 마냥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정권과 자본은 또 다시 압박을 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6월 17일 오전 10시경에는 “출입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문 고시를 부산지방법원 집행관들이 현장에 와서 부착했다. 조합원들은 7월 9일(토) 제2차 “희망의 버스”에 더욱 기대를 하고 있다. “희망의 버스”가 희망의 배로, 희망의 공장을 만들어 내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다.
현재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은 좁게는 한진중공업 자본과 싸우는 것이고, 넓게는 이 땅에서 자본이 남발하고 있는 정리해고를 전면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운동세력과 진보세력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본다. “희망의 버스”는 대부분 일반시민들로 구성되어 자발적으로 참여 하고 있다. 2차 “희망의 버스”가 오는 날은 동료들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김진숙 동지가 85크레인에 오른지 185일째가 되는 날이다. 그래서 “희망의 버스” 185대가 김진숙 동지를 안전하게 우리들 품으로 안아 올수 있는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동지들의 연대를 호소한다.
박승호(한진중공업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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