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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24
    재단.
    껌뻑
  2. 2006/02/23
    내빛나는청춘.
    껌뻑
  3. 2006/02/06
    걷기.
    껌뻑

재단.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전자족쇄니, 화학적 거세니

그런 논의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다.

 

피해를 입은 여성이 가해자를 지목하고 문제제기를 했을 때,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 특히 가해자의 남자 동료들은

가해자가 "내가 성폭력 가해자인게 맞다"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에 대한 온갖 비난과 비방을 일삼곤 했다.

 

피해자의 사생활을 구설수에 올리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으로 제2,3의 피해를 입히고

피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을 스토킹하고

어쩔 땐 협박과 무력을 통해 피해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해자가 자신과 별 관련이 없거나,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인정한 후에 그들의 태도는 그 전과는 사뭇 다르다.

 

'자기도 속았다"부터 시작해서

"그런 놈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

"저런 놈들은 말이 아니라, 주먹으로 패야 한다"는 등의 말을 앞다투어 쏟아내다

종국에 가서는 "그래도 모든 남자들이 저런 놈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라도 하는 듯,

아니, 그 동안 자신이 피해자와 피해자의 지지자들에게 저질렀던 모든 폭력들을

무화시키려는 듯,

가해자들을 린치 했다.

 

피해자는 동의한 적도 없는, 가해자 집단린치의 자리에 피해자를 세워 면죄부를 얻고,

가해자 한 명을 대상으로 집단적인 폭력을 행사한 그 사람들의 눈에 어렸던

무서운 광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렇지만 정말 기가 찼던 건

몇 십분의 린치 이후,

그들은 그 짐승같은 놈이라고 지칭했던 가해자를 피해자와 같은 자리에 앉혀놓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제 모두 용서해라"라며 중재자 역할을 하는게 아닌가...

 

성폭력의 문화를 구성하고, 그것을 적극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확인해왔으며

제2,3의 가해를 저질렀던 그들은

항상 결백하다.

 

그들이 처벌하고, 그들이 용서한다.

여전히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용인하는 문화에 동조했고

그것을 복돋으며, 여성비하적인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면서 말이다.

 

가해자에 대한 적절하고 공식적인 해결을

욕설로, 협박으로, 비난과 가쉽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가로막았던 그들은

성폭력의 또다른 가해자들이었다.

 

 

성폭력과자신을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해

그들은, 하나의 제물로써 가해자들을 린치했다.

 

이런 일련의 광기의 결과는 이렇다.

 

피해자는 더 이상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또 가해를 저질렀다.

가해자들은 이후의 더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그는 "그들"의 좋은 친구다.

여전히, 그들은 술자리에서 여자를 안주삼고

무용담처럼 가해자의 성폭력 사실을 재구성한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의 한 명으로써,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그러나 참 우스운 것은

그들은 자기들이 인정할만한 성폭력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린치'방법으로 해결하려할 뿐,

성폭력을 둘러싼 여성의 노동권과 가부장적 문화,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에 대한 것은

함구한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네들은 입닥치고 있어"

 

그래서 좀 무섭고 황당하고 두렵다.

여성의 노동권..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에 대해

항상 반대하고 나섰던 보수적 인사들이

잇따라 성폭력범죄에 대한 강력처벌을 핏발세우며 이야기하는 것이.

 

이건 또하나의 린치가 아닌가..

가해자들에 대한 집단적 린치로..재단의 희생물로

그들은 다시 순결해지는 거다.

 

"우리도 여성문제 관심있다고..우리 그렇게 나쁜 놈들 아니라고..우리는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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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빛나는청춘.

 

학생 신분을 달기 전까지는 꽤나 몸을 산만하게 움직이는 꼬마였던 걸로 기억한다.

 

모험을 찾아 떠난다는 홀로 설정에 심취하여 마을 곳곳에 '비밀장소'를 만들고 그 곳에 맞는 비밀을 만들고, 그 비밀을 혼자 캐내고..그런 순례를 하느라 항상 부산했었는데.

 

버려진 공터, 짓다만 건물 공사장, 인기척이 없는 집.

 

내가 한창 쑥쑥 몸을 키웠던 80년대의 도시외곽에선

2-3층 규모의 상가건물이 건축중이거나,

60-70년대의 기와얹은 집들이 철거대기중이었다.

 

황량하고 버려진 곳들 이 모든 곳들에서

모험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담넘기와 구르기, 기기, 엿보기, 도망가기.

 

항상 바쁘고, 머리 속이 부산하고, 몸이 따라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몸놀리기엔 단순하고 핑계가 없었으며, 생각은 복잡하고 사족이 많았다.

이익보다는 호기심에서 촉발된 잔머리가 항상 즐거움을 쫓았는데..

 

내 가장 빛나는 청춘은 아무런 성과와 성취가 없었지만

내 자신으로도 충분했던 바로 그 시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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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날씨가 좀 따뜻해지나 했더니

금세 추워져서

주말엔 양변기가 얼었다.

다행히 지금은 날이 좀 풀려서 물을 내릴 수 있게 되었지만,

 

오늘부터는

음악이나 들으면서 슬슬 걸어야겠다..다짐했는데

문에 낀 성에를 보니 당최 나가기가 겁난다.

 

음식물 쓰레기는 썩지 않아좋지만

내 엉덩이엔 곰팡이 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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