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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글을 보면, 글을 쓴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호감을 갖는 경우가 있다.
좋은 글은, 말 그대로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그리고 너무 자연스럽게 그 글을 쓴 사람조차 나를 기분좋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그렇게 되면 기분이 더욱 좋다. 나는 글을 통해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했으며 어쩌면 동지나 친구나 기타 등등의 의미있는 관계를 만들어갈지도 모르니까. 이런 사건은, 인생에서 몇 안되는 신나는 일 중에 하나다.
그런데 글과 그 사람이 다를 때가 있다.
그러니까, 글이 느무나 훌륭하셔서 글쓴 사람도 꽤나 훌륭할 거라고 착각을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의 경험상, 훌륭한 필자들과 대면하게 되었을 때, 몇몇은 글이 사람의 형상으로 되살아난 듯한 경우가 있었다. 그렇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중 몇몇은 상상을 뛰어 넘는 못되 쳐먹은 놈들(대부분 남자들 그것도 맑시스트로 자처하는 놈들이었다.물론 남자 아닌 인간들도 있지만.)이 글솜씨만 좋은 경우다.
- 글 줄이나 써대서 관심 끈 다음에 자신만의 할렘을 만드는 그런 족속들은 그 옛날 모뎀통신시절에나 많은 줄 알았더니 지금도 여전히 많다. 사실 이런 상황들이야 말로 머리에 먹물들었다는 것과 지혜나 판단력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이런 괴리가 좀 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글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렴 글쓴이와 글 사이에 실오라기 같은 공통점이 없을라고? 저런 흔적을 남긴 뇌의 어느 구석에는 분명 훌륭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하면서 어떻게든 글과 사람을 이어보려고 노력 하는 와중에도 내 눈이 썩고 귀가 썩고 인생이 썩어간다. 그런 인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이쯤 되서야 나는, 내 속물적 바램인 능력숭배를 점검하게 되는 게다. 어떤 이를 좋아할 때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좋아하는 거하고 ,그 사람하고 구분을 못하는 그런 병 말이다. 이것의 증상은, 특정한 능력을 숭앙하는 내 자신이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거다. 사실 이걸 굳이 구분 안 할 수 있으면 가장 좋은데 그런 분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안 그러면 정말 낭패다. 왜냐하면 그 글은 그냥 쓰레기인데 내가 거기에 목매달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 헛소리인데 거기에 목숨걸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했던 이야기들, 단지 글을 풀어나가는 솜씨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글쓴이의 인생, 철학, 삶의 태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 있는데 혼자 괜히 오바하는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글쓰기를 그냥 능력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 조금 슬프다. 글쓰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항상 경계를 늦추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그래서 왠만하면 글이, 그 글을 쓴 사람하고 닮아있으면 좋겠다. 그럼 정말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테니까. 그럼 조금은 희망적으로 신나는 일을 할 용기가 생길테니까.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려고 할 때, 뒤에서 머리라도 잡아당길 그 무언인가가 없어,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는 어느 지식인의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의 글이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너무 솔직하게 글을 써서 당황했던 것이고, 그 글이 무언가를 폭로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창피했던 것이다.
얼굴도 붉어졌고. 부끄러운 나를 멀리서 봤더니 또 창피해서 웃음이 났다. 내가 창피했던 이유는 하나다. 내가 그토록 버리고자 했던 나의 모습이 만천하에-결국 나 자신에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에, "난 네가 필요해"라는 그런 망할 달콤함에 매달려 사는 걸 접자 했다. 부모가, 자식이, 연인이, 친구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는 산다..라는 삶의 태도가 나에게 얼마나 잔인한가를 알았고, 그들에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 직접 들었으며, 보상이 없어도 좋은 관계란, 내가 도망갈 곳을 찾는 일종의 망상이고, 그런 마약같은 의존을 끊었야 했다.
이것이 마약인 이유는 그 과정에 있는 것 같다.
필요한 사람을 자처하는 과정은 내게, 대략 이러했다.
그들은 무언가 갈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혹은 그러할 것이다라고 내가, 그들을 판단한다. 실제로 그럴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성명서나 문서로 작성되어 내게 배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증거가 남지 않는다. )
그들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나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알아서 보살핀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말을 할 수 없다고 착각하는 것도 있으리라.고도 여겨진다. 여튼 말을 할 수 없다는 상황 자체가, 애정을 투사하는 굉장한 동인이 된다.)
나는 나의 말을 줄여 나가고 그들의 바램을 앵무새처럼 따라 말한다.
(애정의 대상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대리자를 자처하며 모든 일들을 처리할 때 쯤이면 나와 그 대상의 경계 구분이 불투명해지면서 점점 나의 이야기를 대상의 요구에 섞어서 이야기하고 대상의 바램이 나의 바램과 하나라고 착각한다. 이건 엄밀히 희생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큰 쾌감이 숨이있기 때문에.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나의 요구를 말할 수 있으며, 애정의 대상은 나에게 감사할 것으로 여겨지며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 대한 평판을 높이 살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판단인거다.)
그들은 나를 원치 않았다고 말한다. 적어도 그런 방식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들의 바램을 입밖으로 말한 적이 없으며, 내가 그들의 바램이라고 떠벌렸던 것은 결국 나의 바램이며, 망상이라고 결론지어져 버린 것이다. 수많은 연인관계들은 여기서 끝장을 본다. 보상받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식의 제스추어들은 언젠가 꼭 이런 식의 종말을 맞이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되풀이 됐다. 과정이 이러하니, 필연적으로 공허함이나 환멸, 스스로 상처라고 말하는 것들이 뒤따른다. 탓하는 것도 지겹고, 스스로에게도 지겹다. 원인도 모르고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결국 사는 게 항상 배고파 지는 거다.
난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남의 필요를 뒤집어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지겹다면, 당장 그 짓을 때려 치워야한다. - 정말 지겨웠다.
나의 생의 근거는 상당 부분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그나저나한 '나'여야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구성하는 나의 삶에도 보상은 있어야 하며
적절한 거리도, 밀접하지 않은 다양한 관계들도 필요하다.
그래서 예전에 한 번, 그 곳에서 다시 시작된 적이 있었다. 나의 친구, 나의 연인, 나의 동료...이렇게.
그리고 여기서 다시 한 번 시작해야 할까보다.
지금은, 나는 나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그런 게 나한테 필요한 때라는 걸, 어느 솔직한 지식인이 알게 해줘, 창피하면서도 참 다행스럽다. 나는 죽을 때 머리를 당기는 이가 없을 지라도 이 삶을 살아낸 내 자신이 대견해서 죽거나 혹은 잘났다고 살아갈 거다.
암, 그럴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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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그러게요! 저도 가끔씩 느끼는 건데 ^^ 저도 제가 쓰는 글처럼 될 수 있었음 좋겠다고 생각해요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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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글쓰기를 그냥 능력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 조금 슬프다"에 왕공감...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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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왠지 와닿네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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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저도 그런 생각 많이 했었는데..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글쓰기가 조금 부담스럽다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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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거 저도 부담스러워요. 사실은 그냥 나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게 부담스러운 것도 있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