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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은

하은이는 눈이 커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뭔가 청순미같은 게 흐른다.

차에 타면 남편 말고는 모두 뒤에 타곤 했는데 하은이가 크면서 조수석이 하은이 자리가 됐다.

남편은 가끔 하은이가 촉촉한 눈망울로 차창 밖을 그윽하게 응시하는 모습에 매혹되곤 한단다.

어느 날  하은에게 "하은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하고 물었더니 

하은, "응? 아무 생각 안하는데!"

순간 깨는 분위기가 차 속에 가득....

 

얼마 전, 강화에 함박눈이 펑펑 내려서 모두들 신나하면서 집에 돌아오는데

하은이가 물었다.

"엄마, 함박눈은 '한방에 많이 내려서' 함박눈이야?"
걔는 함박눈이 아니라 '한방눈'으로 알고 있는 듯.

 

어느 날은 밥을 먹는데 하은이가 "엄마, 동생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서

'애가 뭔 소리를....'하고 있는데 한별이가 말했다.

"안돼. 엄마 아빠 사랑해야한단 말이야. 그럼 힘들어"

하은, "왜? 엄마 아빠 지금도 사랑하잖아~"

한별, "아니, 그게 아니라~~"

하은, "엄마 아빠 지금도 사랑해~ 그지 엄마?"

한별이가 큰 맘먹고 말했다. "짝짓기 말이야...."

와이책 '사춘기와 성'을 열심히 읽더니 한별이는 나름 성지식도 갖추어가고 있다.

하은이는....여전히 동화와 상상의 세계에서 열심히 살아간다.

 

잠이 없는 하은이는 항상 일찍 일어나는데

보통 6시~7시 사이에 일어나 머리맡에서

"엄마, 빨리 일어나 일어나. 개 산책 시켜야지"하면서 나를 깨우곤 했는데

새해가 되어서 11살이 되어서인지 아침에 혼자서 잘도 나간다.

이렇게 조금씩 혼자만의 세계가 넓어져가는건가, 하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코앞의 화장실도 무서워해서 꼭 은별이를 데리고  간다.

덕분에 은별이가 바쁘다.

하은, 한별은 겁이 많아서

"은별아, 오빠 쉬하는 데 봐줘"

"은별아, 언니 쉬하는 데 봐줘" 하는 요청을 하루에도 몇번씩 받는다.

은별이는 열심히 봐주면서 "엄마 포도송이 한 개 꼭 칠해줘야해~"한다.

산타쇼의 여운이 남아있어서

착한 일 포도송이를 열심히 칠해서 포도송이 한 개가 완성되면

원하는 선물 한 개씩을 받을 수 있다.  

 

한별이는 책을 많이 읽고 하은이는 잘 논다.

은별이는 한별이 어깨너머로 한별이 책을 같이 보기도 하고

언니가 노는 옆에서 끼워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물론 셋이 같이 노는 경우도 많지만.

 

어제 한별이가 '만화로 보는 사자성어'를 보고 있는데

하은이가 한번 척! 보더니

"가인박명? 헐~~ 가인하고 박명수가 책에도 나오네~"라고 말해서

잠시 근심이 되었다.

뭐 그래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주말에 은별이가 열이 나더니

이젠 한별이에게 옮겨왔다.

오랜만에 병원, 약국을 다녀와서 애들이 신이 났다.

병원 사탕, 약국 비타민 먹는 걸 모두들 좋아한다.

2월 21일에 강화로 이사를 간다.

서울 집에서 버릴 물건과 가져갈 물건을 잘 분류해야 하는데 요즘 좀 바쁘다.

 

다음 주에 대학원 오리엔테이션이 있다.

11일부터 13일까지 참교육실천대회가 있어서

시네마달 부스를 지키느라 성공회대에 갔는데

어제 지도교수(주임교수? 정확한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가 오셔서

다음 주 오리엔테이션에 꼭 오라고 하셨다.

내내 일이 없다가 다음주만 일이 생겼는데 꼭 그 시간과 겹친다.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오래 쉬어서 오랜만에 책 읽으려면 한 학기는 고생을 할 텐데..."라고 걱정해주셨다.

이제 남편하고 동문이 되는 거네.

참교육실천대회를 위해 온 학교를 다 빌려주는 성공회대학교가 왠지 멋지다는 느낌.

 

새천년관 1층 식당 입구에서 목도리 파는 청소년지원센터 옆, 레프트21 출판사 앞에

시네마 달 부스가 있다.

뭐든 하자, 라는 심정으로 부스를 지키겠다고 부스를 부탁했는데

해보니 처음엔 정확한 실천지침(?) 지시사항같은 게 없어서 뻘쭘했다가

다른 사람들 하는 거 보면서 하나씩 배워갔다.

레프트21에서는 "000가 나와있는 겨울호가 나왔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청소년센터에서는 "목도리가 만원,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하니까

나도 뭔가 해야 할 것같아서 "영화들 보고 가세요. 전단지는 공짜예요~" 하니

사람들이 와서 "이 영화들 파는 거예요?"하고 물어서

디비디는 판매예약이라는 것, 공동체상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뭔가 알림글이 필요한 것같아서 전지에 글을  썼다.

'시네마달 공동체상영 신청, 디비디 판매예약 받습니다"

"공동체 상영이란 00000 입니다"

"4대강 사업저지 다큐멘터리 제작후원 받습니다" 라고 쓰고 책상에 붙이다가 철수를 했다.

저녁시간에 짐 맡기고 짐 걷는 거 도와주러온 ㄺ이 멋지게 써주었다.

그리고 관심을 보이는 교사들의 메일 주소와 관심영역을 종이에 받았다. 

하루의 성과는 열칸짜리 종이를 몇 개를 채웠는가이다.

어제는 20~30명 정도?

ㄺ이 "와~ 대단해요!"라고 말해서 같이 보고 웃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문대표에게

"뭐라도 해야할 것같아서 하는 거지만 뭐라도 하고 있다고 자기를 위로하기 위한 행동인 것같아"

라고 말하니까 문대표가 그렇지 않아, 힘내, 라고 말해주었다.

뭐든 이렇게 나씩 하나씩 배워가는 거지.

부스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는데 눈이 너무나 예쁘게 와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중간에 멀티탭을 사서 돌아오는데 누가 전화를 했다.

길에서 지갑을 주웠다고 한다.

하마터면 카드, 대출증, 운전면허학원 카드, 돈 2만원, 한예종 식권 7장, 하은 스티커사진

등등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을 뻔 했다.

지갑 찾아주신 선생님, 고마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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