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1박 2일

이번 주는 폭주다.

처리해야할 많은 일이 있을 땐 일단 생활글을 먼저 쓰는 게 규칙.

지난 주에 있었던 일.

 

1.

수요일엔 구성실습 강의 첫 수업이 있었다.

강화 집에서 네비를 찍어보니 1시간 50분이 나왔다.

요즘 주행거리가 장난이 아닌데

수, 목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일산의 엄마를 집에 모셔오는 게 시작이다.

화요일, 수업 끝난 한별과 함께 일산의 엄마를 모셔오고

수요일, 은별을 데려다주고 수업준비를 한 후 한예종으로 출발.

아마도 그동안 내가 다녔던 길 중에서 가장 멀고 어려웠던 길인 것같다.

전조등 켜는 게 아직도 어려운데 길고 깊은 터널이 두 개나 있었고

운전연수 선생님 말씀처럼 강북의 도로는 좁고 이가 맞지 않아 어려웠다.

 

거리감각은 여전히 둔해서 네비지도의 '몇 미터'와 실제 도로의 '몇 미터'를 대응시키지 못해서

두 번이나 교차로를 지나쳐버린 탓에 외대 앞 좁은 골목을 진땀을 흘리며 지나가야했다.

새가방에 이름표를 달고 엄마의 손을 잡은 채 걸어가는 아이를 보면서

오늘 일이 없었다면 나도 저렇게 한별이의 손을 잡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한쪽 가슴이 뭉클.

헤매느라30분 정도 더 걸렸지만 애초에 3시간 전에 집을 나선 탓에 수업에는 늦지 않았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 나오던 대사처럼 예술학교 수업은 두가지 측면에서 당혹스럽다.

나는 번번히 "수업내용에 못 미치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가르친다는 행위는 결국 예비경쟁자들을 키우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예비심사 때 본 여성영화제 피치& 캐치 응모작 중에는 내 수업을 함께 했던 학생이 있었고

기획서를 나보다 훨씬 더 잘 썼더라.

수업시간에 공유했던 내 기획서보다 한 단계 나아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수업은 끊임없이 새로워져야한다는, 쉼없이 전진해야한다는 다짐의 장일지도 모른다.

항상 그렇지만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설레면서도 두렵다.

나는 이번 학기를 어떻게 보낼까?

매학기마다 벅찼지만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나면 뭔가 하나를 이룬 것같아 좋았다. 

이번에도 부디 그리되길.

 

2.

수업이 끝난 후 도서관에서 목요일 수업을 준비했다.

실천여성학 대학원 수업은 목요일 2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는데

매 수업마다 읽을 거리가 한 가득이고 쓸 거리 또한 한가득이다.

게다가 나는 수업도우미(베스트 프렌드라 부른다)를 맡았기때문에 자료를 찾아야했다.

처음으로 한예종 도서관에 들어가봤다.

책도 많고 공부하기에도, 쉬기에도 참 좋은 이 도서관을 왜 나는 그동안 몰랐을까.

책을 다 찾고 숙제를 하다가 식사시간을 놓쳐서 핫도그랑 베지밀을 먹었다.

24시간 개방이라 밤을 샐 수도 있었지만 인터넷이 안돼서 숙제를 올릴 수가 없었다.

새벽 1시쯤에 도서관을 나와 푸른영상에 가는데....좀 무서웠다.

한예종은 옛 안기부 건물이었다는 생각이 갑자기 나고

뭔가 어두운 기운같은 게 느껴져서(뭐 상상이지만)

덜덜 떨며 차를 찾고 학교를 나왔다.

 

새벽 1시의 서울에서 모르는 길을 운전해서 가는 일은 정말이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차들은 쉴새없이 빵빵거렸고(강화처럼 외길도 아닌데 왜들 그러는지...)

방향지시등도 없이 끼어들었다.(혹시 그 인간들 자해공갈단 아니었을까?) 

게다가 기름도 간당간당했다.

성공회대앞에 1803원하는 주유소가 있어서 다음날 기름 넣으려고 참았지만

결국 경고등이 들어왔고 2030원하는 주유소에 들어가서 2만원어치를 넣었다.

요즘의 난 정말로 길에다 돈을 뿌리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지친 몸으로 사무실에 도착하니 감독님이 집에갈 준비를 하고 계셨다.

좀더 있으면 안돼요? 하니까 "나 낼 아침 10시 수업이야~"하시며 쌩~ 나가버리고

텅빈 사무실에서 숙제를 올리고 자료들을 챙기다 4시쯤 공부방에 자러갔다.

작년에 서울집을 구하기 전 한달간 신세를 졌던 공부방에

지친 몸으로 들어서는데 또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편집하느라 바빴던 동안 하은이를 돌봐주셨던 하니샘이

이젠 정말 내 옆에 없다.

나도, 하은이도, 이제 스스로의 힘만으로 앞으로의 시간들을 견뎌야만 한다는 것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잠깐 눈을 부치고 여의도로.

저번에 '견강부회'라는 단어를 쓰며 영화 선정기준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던 피디의 말에 따라'

장애인이 만들었거나,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들만 소개하기로 한 후 두번째 시간이었다.

대본을 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피디 얼굴을 보는 게 좀 불편할 것같았는데

의외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나는 정말 이제 어른이 되었나봐.

 

학교에 가서 덜 빌린 책들을 마저 빌리고 밥을 먹고 수업을 들었다.

모든 수업이 끝난 후, 다시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성공회대에서 '집으로'라고 찍으면 보통 1시간 10분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가도가도 시간이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2시간 30분까지 늘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영등포였다.

네비게이션이 고장난 것같아서 길가에서 다시 '집으로'를 찍어보니 이번엔 1시간 30분이 나왔다.

피곤해서인지 그 후로도 몇번인가 길을 잘못 들었고

늦은 밤의 올림픽대로는 외롭고도 쓸쓸했다.

 

남편 차를 타고 다닐 땐, 도시가 끝나고 강화에 들어서면

무섭고 스산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운전을 하게 되면 이 밤길은 얼마나 무서울까 싶었었다.

그런데 그 무서웠던 강화의 인적없는 오솔길에 들어서자 마음이...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정말 집에 온 것이다.

 

집앞에 도착해 땅에 내려서는데 보나와 순돌이가 나와있었다.

묵직한 보나와 힘없는 순돌이가 맑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1박 2일동안 나는 힘들었나보다.

동정없는 도시의 밤길과,

여전히 마음의 끝자락이 남겨져있는 공부방과 봉천동 골목길들.

이유를 알 수 없는 적의가 느껴지는 어떤 사람.

그리고 치사율 70~80%의 병에 걸린 순돌이.

 

조바심과 불안과 걱정을 때때로 느끼면서도

처리해야할 일들 때문에 마음을 접어두어야했던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고 돌아온 집에서

살아난 순돌이를 보니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어쨌든 시작은 괜찮았다.

이렇게 가면 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착한 순돌이. 아직도 힘이 없고 잘안먹는다. 그래도 우리들을 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힘없는 머리를 조용히 기대온다. 아가야, 빨리 건강해져야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