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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정동진의 어떤 민박집에서

수영복을 널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동네를 바라보는데

문득, 예전에 비슷한 장면 안에 내가 있었던 것같았다.

그것이 현실이든 꿈이든.

 

<삿뽀로 여인숙>이나 <내 생애 꼭 하루 뿐인 특별한 날>이 

일상에서 가끔 복기되는 이유는

사랑의 감미로운 순간 때문이 아니라

혼자 남겨진 후 건조하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일상 때문인 듯.

늦은 밤 길을 잘못 들어 인천의 항구를 지나갈 때면

<삿뽀로 여인숙>의 텔렉스가 떠오르고

옥상에서 한 때 시끌벅적하다가 결국 한적해질 어촌을 보고 있자면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온 채

먼지처럼 가볍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한 여인이 생각나는 거다.

 

먼지처럼 가벼운 삶에 대한 매혹은

20대의 어느 시기, 잠깐 떠돌다가   

끝까지 가보지 못해서 그런 걸지도.

새벽에 눈을 떴다. '삿뽀로 여인숙'의 정인과 진명의 이야기가 자꾸 생각이 나서 다시 잠들 수가 없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꿈같은 그리움이다. 겪어본 사람은 추억으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선망으로. 애절함은 이루어지지 못해서 더하나보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쉽게 붙일 수 없는 사람. 그런데도 이렇게 사무치는 건 소설 때문이다. 어쩌면 세월 때문이다.

열아홉살 때였다. 대학 1학년이었던 난 처음으로 4.18대장정이라는 이름의, 안암동에서 수유리 4.19묘지까지 뛰는 달리기에 참가했다. 그 때 스치듯 한 남자를 보았다. 나는 그 사람이 우리 과 선배인 줄 알았다. 
스무살 때였다. 나는 철학과 C랑 무척 친했는데 그 애는 항상 군대에 갔다는 가장 친한 친구 얘기를 자주 해줬었다. 어느 토요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학생회실 앞 벤치에 혼자 앉아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남자를 보았다. 군복을 입고 혼자 터덜터덜 걸어오는 그 남자를. 어떻게 말을 텄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그 남자는 나랑 같은 학번이었고 항상 얘기를 들어왔던 C의 가장 친한 친구, 바로 그 애였다. 휴가를 나왔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었던 그 애에게 나는 술벗이 되어주었다. 

그 뒤부터는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 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 애는 휴가를 나올 때마다 날 찾았고, 가끔은 친구가 서빙 아르바이트하는 까페에 취해 쓰러져있기도 했다. 난 이미 누군가를 사귀고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입대를 하고 그 애가 제대를 했다. 나는 그 애와 처음으로 극장에 가봤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건 내 생활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가봤던 극장은 허리우드극장이었다. 옥상에 극장이 있었던 그 곳은 처음 극장을 가본 내게 놀라움을 주었다. 와~ 극장은 참 이상한 곳이구나. 시간이 많이 남아서 우리는 낙원동 허름한 뒷골목과 인사동 길을 내려다보며 C 얘기를 했다. 우리는 항상 그렇게 C 얘기를 했다. 그리고 <흐르는 강물처럼>을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애가 말을 툭 던졌다. 
"우리도 몬태나에 가서 살까?"
가슴에 돌멩이 하나가 툭 던져졌다. 허리우드에서 대학로까지 걸었다. 걸으며 그애는 자기가 다녔던 고등학교와 그 때의 C 얘기를 했다. 아마도 그 애의 고등학교는 그 길 어딘가에 있었던 것같다. 그 애와 함께 있으면 세상을 알기 전, 여고시절의 꿈이 생각났다. 입학하기 전부터 대학은 학원민주화 문제로 술렁이고 있었고 입학하자마자 휴업이니, 수업거부로 시끄러웠다. 나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위대 속으로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렇게 지낸 시간이 2년인데,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는데, 그 애와 함께 있으면 세상을 몰랐던 시절의 그 분홍빛 꿈들이 생각났다. <흐르는 강물처럼>의 그 우거진 숲과 맑은 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던 거리, 그리고 인사동에서 대학로까지의 그 조용한 길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작고 예뻤던 그 애. 매일 그 애 생각을 했다.

나는 자주 그 애를 떠올렸고 휴가를 나온 남자친구에게 내 상태를 얘기했다. 그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남자친구는...말하자면 사상적 동지같은 관계였는데(이런 말을 여기서 쓰다니...불편하지만 적당한 말이 없다) 내 긴 얘기를 들어주고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가끔 그 때 그 눈물을 견뎠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난 그러지 못했다. 난 내가 나쁜 여자가 되는 게 싫어서 그냥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애에게 더이상 널 만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가끔 그 앨 만났고, 술을 마셨고, 자주 울었다. 더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난 정말 독하게 맘먹고 독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다시 그 시간이 온다면 난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 때의 난 지나치게 도덕적이었고, 우습게도 "사랑은(정확하게 말하면 연인관계겠지) 일생에 딱 한 번 뿐이어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난 선택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 약속을 저버리는 건...절대 안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때 난 사랑이란 어릴 때 읽었던 보리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한 임금이 보리밭 앞에서 아이에게 말을 한다. 
"이 보리밭에서 가장 빛나는 보리를 너에게 주겠다. 보리이삭을 꺾는 건 단 한 번이어야 하고, 다시 돌아보는 것도 안된다"
아이는 보리밭을 걷는다. 빛나는 보리 이삭이 나왔다. 한 번 참아본다. 더 빛나는 보리이삭이 나왔다. 그런 식으로 아이는 참는 만큼 더 빛나는 보리이삭을 만났다. 그리고 아이가 마지막에 꺾은 건 그저 평범한 보통의 보리였을 뿐이었다. 
사랑이란 그렇게 보리를 꺾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난 이미 보리이삭 하나를 꺾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내 인생의 과오다.

스물 다섯살 때 졸업을 했다. 그리고 제대한 남자친구가 94학번 여자애랑 사귀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나는 채였다. 그뒤로 그런 비슷한 경우를 몇 번 더 겪었다. 참 이상하지. 불행들이 다 나를 통해서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같은 시간들이었다. 그 동안 그 애는 유학을 갔다. 민예총에서 일을 하던 어느 아침, 출근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알콜 기운이 느껴지는 그 애의 목소리였다. 프랑스라고 했다. "너 결혼했냐?" 난 아니라고, 그렇지만 곧 할거라고 그랬다. "그래, 잘 살아라" 그렇게 짧은 통화는 끝났다.

스물 여덟살에 다시 그애를 만났다. 늦은 밤, 집으로 전화가 왔다. 집 앞이라고 했다. 정말 집 앞 화단에 그애가 앉아있었다. 나는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다음 날 푸른영상 앞의 보라매공원에서 그 앨 만났다. 연못가 벤치에서 김밥을 먹으며 얘기했다. 
"그동안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너한테 잘못해서 그 벌을 이렇게 받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겪는 불행들이 다 이유가 있어졌다. 니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벨기에인가 어딘가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그 애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다.
"그런 생각하지 말고 잘 살아라. 다 잊었다. 너는 보고 싶지 않았는데 광명이 보고 싶더라. 너네 집 앞에 화단이랑 시흥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있는 해병대 초소. 거기서 많이 잤었거든."
(침묵)
그 애가 말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다 변해있더라. 다들 양복을 입고 다니고 더이상 할 말도 없고. 친구들이 그런다. 하나도 안 변했다고. 여전하다고."
그래, 나도 그런 얘길 들어...맞장구를 치자 그 애는 잠깐 날 보더니 말했다.
"아니야. 넌 너무 많이 변했어. 왜 그렇게 뚱뚱해졌니?"

그 애의 말 한마디로 우리의 만남은 유쾌해졌고 우린 잘 가라, 잘 살아라 손을 흔들며 정답게 헤어졌다. 항상 그 앨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는데 그 뒤로 통증은 사라졌다. '삿뽀로 여인숙'엘 보면 지독한 여자가 한 명 나온다. 이미 마음이 돌아선 남자에게 "내가 널 버릴 때까지 관계는 끝나지 않아"라고 하며 싸울 때마다 뭔가를 던진다. 그리고 말한다. "네 몸에 상처를 낼 거야. 적어도 흉터를 보는 동안은 날 기억할 테니까" 흉터로밖에 남지 않을 관계들을 거치며 서른이 되었다.

기억이란 건 지겹다. 이제라면 좀 잊을 만한데...하는 동안에도 기억은 흡혈박쥐처럼 물고 늘어진다. 그러나 그 애에 관한 한 기억할 수 있어서 기쁘다. 동백나무를 보면 그애의 시골집 마당이 생각난다. 수협을 보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신다던 그애의 아버지가 생각난다. 파도가 치면 차르륵 차르륵 소리가 난다던 완도의 자갈해변이 생각난다. 모두가 그 애의 말을 들으며 내가 상상했던 장면들이지만. <흐르는 강물처럼>을 생각하면 인생이란 가끔 힌트를 주는 것같다. 허리우드 극장에서 바라봤던 그 허름한 뒷골목에서 3년을 보낼 줄을, 스물 한살의 빛나는 나이의 난, 꿈에도 생각 못했을 테니까. 인생이란 놈이 지금 또 내게 어떤 힌트를 주진 않나....한번 곰곰히 들여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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