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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5년 10월 7일 이후의 몸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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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1/17
    애도하는 사람
    하루

애도하는 사람

빠져나왔다.

 

작년 10월 교통사고 이후 한동안 가라앉아있었다.

할 일은 내 키만큼 쌓여있는데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꾸 내 안에서 부정적인 대답이 흘러나왔고

나는 그 대답을 꿀꺽 삼킨 채 어떻게든 지금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조석의 웹툰 <마음의 소리>를 보며 웃었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을 읽으며 뇌를 가볍게 움직였다.

 

그리고 벗어났다.

다행이었다.

남아있는 문제는 히가시노 게이고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

틈틈히, 여전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을 읽었고

그 책들을 다 읽은 후에는 기리노 나쓰에의 책들을 읽었다.

그 두 사람의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도서관의 일본문학 칸에서

추리소설로 보이는 책들을 골라 읽었다.

문장 하나 하나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어떻게 이야기를 짜는지를 살펴본다는 명목으로

(하지만 사실은 나는 탐닉할만한 뭔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야기의 흐름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그래서 추리나 서스펜스가 아닌 이야기들은 곧 책장을 덮었다.

그렇게 되더라. 금방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방금 텐도 아키라의 <애도하는 사람>의 책장을 덮으면서

아, 다행히 벗어났다, 하고 안도한다. 

직전에 읽었던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 남자>가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것같다.

<내 남자>는 좀 낯선 내용이었고 일본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짙어서

특별한 감흥없이 읽어가다가 그 구성에 혹했다.

소설 중에 '낙후된 시골의 청춘' 부분의 묘사가 나와있어서 면담하는 학생에게 그 부분을 권했다.

그 애한테는 그 정서를 표현한 문장들이 자극이 될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제 면담을 하다가 <내 남자>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ㅅㄹ은 내게 내가 읽어보라고 한 부분은 읽다가 갑자기 소설의 전체 내용이 궁금하다고

얘기해달라고 졸랐다.

나는 거절했다.

"<박하사탕>이 시간을 순차적으로 구성했다면 그 감동이 반으로 줄었을 거잖아.

<내 남자>도 똑같애.

등장인물들의 이상한 관계가 한 단계 한 단계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면서 

이해되어가는 과정이 이 소설에서 중요한 포인트라

나는 말해줄 수가 없다"

 

그리고 어제 읽고있었던 <애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출생에 대한 축복은 공평한데

죽음에 대한 애도는 왜 극명하게 달라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이야기들을 한참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살인과 치정과 음모와 추리의 세계에서

어렵게 벗어났다.

삶과 애도와 평등과 사랑의 세계로.

이 모드를 쭉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애도하는 사람>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부분을 옮겨적는다.

방대한 이야기의 망에서 이런 식의 조각만을 옮기는 것은

다른 이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기억하기 위해 옮겨 적음.

 

<애도하는 사람>, 7장, 마키노 고타로III 중. p431

"나쁜 짓도 했고, 거짓말도 했고, 배신도 했다. 

그러나 그 때그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살아있는 다른 이에게는 한낱 시체에 지나지 않겠지.

이름도 없는 백골 시체에 지나지 않겠지.

싫어. 싫다고. 싫어........

한사람,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있다.

'애도하는 사람' 이여, 너는 백골로 발견된 내 소식을 들으면 언젠가는 이 곳으로 와주겠지?

그리고 이 사람도 분명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 무슨 일로

이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다고 애도해주겠지?

무릎을 꿇고, 내가 아직은 희미하게 느낄 수 있는 바람을 오른손에,

내가 묻힌 이 땅 냄새를 왼손으로 받아 가슴 앞에 모으고

나를 기억하려 해주겠지?

어디의 누구인지 몰라도

너에게는 분명 좋은 점도 있을 거라고, 열심히 살았을 거라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이 존재했다고.....

기억해주겠지?

당신이 태어난 이유를 이제야 할 것 같다.

당신이 '애도하는 사람'이 된 데는 가족과 환경, 인생의 상처 등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당신도 분명 모른다. 그렇게 보였다.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 세상에 넘쳐나는 죽은 이를 잊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망자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세상에 만연한 이런 부담감이 쌓여서,

그리고 그것이 차고 넘쳐서 어떤 이를,

즉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니....당신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당신 말고도 '애도하는 사람'이 태어나 여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떤 이유로 죽었건 차별하지 않고, 

사랑과 감사에 관한 추억에 따라 가슴에 새기고,

그 인물이 살아 있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이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걸 원하니까......

적어도 지금 난 당신을 찾고 있다.

아아, 만약 내가 살아날 수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할텐데.

눈이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아도,

꼭 '애도하는 사람' 이야기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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