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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야매관광


한달 전 아침에 전화가 왔다. 혐님 해남 계시는 데 놀러 가겠다고. 
끌질기다. 30여 년 전 탈춤한다고 만나 지금까지 연이 끊어지지 않고 연락을 하고 가끔씩 만나고 있다. 나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 만남이 뜸하면서 가끔씩 송년회 때 정도만 나가곤 했다. 다른 이들은 지금도 친 동기 간 처럼 부지런히 만나고 있다. 사람들 관계도 묵은 이들이 더 정겹고 편한가 보다. 놀러 온다고 하고 그후 연락이 없어 너무 멀어 나들이 하기가 어려운가 했다.

약속한 어제 토요일에는 장흥 용산 마실장이 열리고, 그곳에서 전남민예총에서 준비한 남도풍물한마당도 연다고 하고 가고 싶었다. 아침에 밖을 보니 남쪽에서는 눈이 내려도 싸히지 않는데, 간 밤에 눈이 더 내려 쌓였다. 망설이다 그래도 마음 먹은거니 괜찮거니... 하면서 출발했다. 응달진 곳과 다리 위의 길은 얼었다. 겁이 났다. 타이어도 반질반질 닳은 고물차라 조심 조심 하면서 갔다. 눈이 쌓이고 추운 날씨에도 장을 차려 놓고, 풍물꾼들이 풍물을 치고 고사를 지내고 한다. 서울서 해남으로 출발한 차가 곧 도착한다고 해, 장터에서 두부 김치 피꼬막 키위쨈을 사 가지고 부랴부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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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온 이들을 만나 먼저 두륜산을 찾았다. 케이블 카를 타고 높이 올라 단풍을 구경하고 멀리 바다를 바라볼까 했는데.... 갑작스레 내린 눈으로 못한 환상적인 설경을 보여 주었다. 짧게 살아본 경험으로 이곳은 눈이 오면서 녹고 쌓이지 않아  기대하지 못한 풍경이다. 케이블 카를 타고 산을 오르면서 모든 사람들이 창 밖으로 펼쳐지는 모습에 감탄하면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알프스가 따로 없다' 라고 하는데 환상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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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가 지나면서도 설경을 보려고 점심을 미룬 상태다. 점심은 대흥사 오르는 길목에 물레방아 쌈밥집이다. 얼마전 사회봉사 명령 받은 아저씨들과 키위 따다 점심 먹으로 왔던 집인데 괜찮은 듯하여 왔다 . 칠 천원에 석쇠에 구운 돼지고기에 보리 쌈밥이 맛있고 실속이 있다. 대흥사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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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이 왼쪽 없에 위치하고 있고, 다른 절이 흔치 않은 윤장대, 500년 느티나무 두 그루가 뿔리를 안고 있는 연리근, 초의선사께서 계신다. 절집 주위 산에는 동백이 흐트리게 피어 있고, 한 겨울 눈 덮혀 추운 지금도 부처님은 산 꼭대기에 누워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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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기후 변화로 인해 도시에서도 개나리 진달래는 철도 없이 자주 피는 모슾을 볼 수 있다. 봄이 되면 피는 동백이 따뜻한 남쪽에서는 한 겨울에도 피고 있다. 동백하면 떠 오르는 선운사보다 남녘에 동백이 훨씬 더 많다. 눈이 뒤 덮힌 지금 동백이 피었고, 땅 바닥에는 꽃이 상딩히 떨어져 있다.

해남에 오면 땅끝이 필수 코스다. 땅끝 전망대에 올라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이 탁 틔인다. 겨울이라 위험하다고 전망대 주차장으로는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중턱에서 올라가게 한다. 한반도를 말하면서 '삼천리'라고 하는데 이곳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음성까지 이천리 이렇게 해서 삼천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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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가 남아 미황사오 향한다. 대흥사는 관람료가 있는데 미황사는 없다. 미황사 스님들도 좋고, 지역에 대한 관심도 크고, 템플스테이도 많이 오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가을에도 온 괘불제 또한, 흔하하지 않고 내년도 기다려지는 축제다. 눈 쌓인 달마산 벽풍바위 아래 오랜 된 절집의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날도 저물고, 새벽부터 서울에서 출발한 이들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온다. 여느 농가집과 같이 허름하고 불편할 수 있는 기와집. 짐을 풀고 육일시 식당으로 가서 고기를 구워 허기진 배를 채우고, 이야기 꽃을 피우며 풍성해지는 시간을 가진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상을 차리고 장흥 마실장에서 사온 안주와 해창막걸리 잎세주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벌써 돌아가신 우리의 선생님이셨던 인간문화재 김선봉 선생님, 선생님의 몇 년 후배이신 긴금화 만신, 같이 춤 추던 이들 중에 먼저 떠나간 동무들... 86년 처음 시작할 때 학생이었던 이가 이제는 중년이 되고 영화 '만신' 제작하는데 함께 했단다. 독거남의 살림살이로 소주 잔이 없다고 하니 자동차에 상비해 둔 소주잔 컵을 가져와서 마신다. 밤 시간이 지나니 화투를 쳐야 된다고 해서 없다고 하니, 이 또한 가방에서 꺼내어 오랜 만에 '나이롱 뽕'으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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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윤선도, 윤두서 선생님을 뵈러 가야 한다고 해서 녹우당으로 향했다. 일요일 아침 조용한 녹우당 에서 공재 선생의 그림을 심도있게 감상을 하고 있다. 그때 85세 까지 살다가신 고산 선생님을 보면 대단한 분이었던가 보다. 해남 곳곳에 터전을 만드시고, 보길도에 세연정을 비롯한 여러 정자들.... 그 중에서 선생께서 후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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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강진으로 발길을 돌려 다산 초당이다. 해남과 강진이 약간의 거리가 있고 시간이 촉박해서 다산초당을 가는 발걸음이 쉽지 않은데 택시 운전사께서 가 보라고 했단다. 다산초당은 첫번째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들린 곳이다. 초당을 오르는 길에 소나무 뿌리가 땅 밖으로 튀어 나와 발이 걸리수 있는 '뿌리길'이 가슴에 남는다. 유배 당한 선생께서 부터 오르 내리고, 그 뒤이어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 내리면서 흙이 사라지고 땅속의 소나무 뿌리가 속살을 드러낸 뿌리길. 정호승은 노래 했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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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에서 바라보면 저 멀리 강진만 바다가 바라보이고, 다음에 가려는 '가우도' 출렁다리도 보인다. 
또 돌아서 산을 넘으며 백련사 절로도 갈 수 있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걸어 백련사도 둘러보고 한적한 산속의 내음의 맡으며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으련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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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 출렁다리. 바다 위를 지나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고, 자그마한 섬에 다달을 수 있어 사람들이 많이들 찾는다. 지난 월요일에는 워낙 눈비에 바람이 불어 다리를 건너면서 사람이 날아갈 정도였는데, 오늘은 날씨가 춥지도 않고 바람도 없다. 이제껏  청자박물관 마량향으로 향하는 쪽의 다리를 건넜는데, 이번에는 반대편 다리다. 이쪽 다리를 건너면서 저쪽 다리는 어떨까 하면서 지났는데, 이번에는 내비가 가르켜주눈 데로 가다보니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어쩌면 이쪽이 더 한적하고 운치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섬을 건너니 팬션도 있고 슈퍼도 있다. 슈퍼에 가니 잡아 놓은 낙지가 있어 한접시 가득 삼만원에 여섯 명이 맛있게 흡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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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까지 먼 길을 가야 하기에 이쯤해서 그쳐야 한다. 조금은 늦었지난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하고 읍내 식당으로 갔다. 멀리서 온 이들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푸짐한 식사를 하면 좋을것 같아 몇 번 찾은 곳이다. 야매관광의 마무리는 이곳 '강진*한정식'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은 한 등급 높은 상차림이었는데, 회 한 접시와 생굴 한 접시가 추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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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사람들 마다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애써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단지 허술한 집에 재워주고,  함께 다니면서 맛있는거 먹고 같이 구경한다. 떠나는 시간. 아직 농사한 게 없어 마땅이 나누어 줄  것도 없어 아쉽다. 느지막히 심어 명색만 배추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배추를 몇 포기 뽑는다. 가을에 밭 귀퉁이에서 스스로 맺은 키위를 싸서 봉지에 싼다. 콩 농사를 했다하고, 골라놓은 콩 포대를 한 자루 달랜다. "집에서 해 먹기에 쉽지 않다"고 해도 가져 간다고 한다. "무게가 얼마나 되냐" "한 포대 가득이니 40Kg는 될~까" " 값이 얼마냐" 모르겠다 하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더니 값을 풍족하게 치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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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찾아온 동무들과 함께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들도 바쁜 사람들이라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돌아간다. 가고나면 뒷정리를 하고 남은 먹을거리로 몇 일간 먹는다. 쉼으로 약간의 피곤함과 미련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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