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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개발’을 하겠다고 한다. 지금이 그 때인가 보다. 전국의 강을 막아 강물의 숨통을 조여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곳곳에 이런저런 개발을 하겠다고 야단이다. 새만금은 단골이고, 하늘 위로는 최대 최초의 건물을 올리고, 두더지처럼 땅속에 빠른 길을 내고 도시를 만들겠다고 한다. 도시 곳곳에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수 십층의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여기에는 4대강사업을 그토록 반대하던 정당이나 사람들도 부화뇌동하고 있다.
요즘 도시농업이 한창 인기가 있는데, 도시 주변에 농사를 지을 땅이 많지 않은데 그도 조금 있으면 개발로 땅을 빼앗기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몇 년 전에 모범이 되게 도시농업을 하던 농장이 개발로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장 운영자는 저항을 하겠다고 하더니, 얼마 지난 후에 보니 그 농장은 없어졌다.
지난 이야기다. 서울 끝자락 황량한 들판에 농사짓는 넓은 들판 한쪽에 판자와 비닐로 얼기설기 역어 사람들이 살았다. 닥지닥지 붙여서 지은 판잣집들은 불이 나서 마을을 다 태웠다. 불이 나고 종교인들을 비롯한 이웃들이 힘을 모아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때 함께한 일부는 돌아가지 않고 마을과 함께 했다. 주민들이 온전하게 살 수 있는 활동을 하여 여러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공부방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놀며 공부를 가르쳤다. 이렇게 마을과 함께하는 일은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 팽창해 가는 도시는 그 마을에 관청과 상가를 짓는다고 모두 내 쫓으려 하였다.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던 공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부방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함께 살던 마을 주민들은 그대로 살고 있음에도.
힘들게 살아가면서 화재까지 겪은 마을과 함께 하려고 공부방을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을 하였는데, 개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일찌감치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옮기면서 많은 생각과 번민을 하였을 테다. 처음 공부방을 시작할 때의 마음을 되새기면서 마을 주민들과 끝까지 함께하다가 마지막에 떠났으면 마을 주민들이나, 그들 자신도 편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동안 힘든 시간들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흔히 소주를 마실 때도 ‘처음처럼’이라고 주문한다. 처음처럼, 쉽지 않음이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그러면 좋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그러다가도 이런저런 이유로 끝까지 하지 못하고 도중에 다른 길로 간다. 민중과 함께 하겠다고 열심히 활동하던 정치인, 운동가들이 다른 길을 갈 때 우리는 쉽게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민중과 함께 역사와 함께 하겠다고 하고, 또 그렇게 칭송을 받던 이들은...
나와는 좀 멀리 떨어져있는 추상적인 구호는 쉽다. 그러나 내 발 앞에 닥친 작은 일에는 쉽지 않다는 경험을 자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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