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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노래, 나의 노래.

그들의 노래.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만세..." 모두가 알고 있을 삼일절 노래다. 요즘은 이런 국경일 노래도 다 알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삼일절 행사를 준비하면서 삼일절 노래를 부르려면, 잘 모르니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때는 교과서에 삼일절 광복절을 비롯한 국경일 노래가 실려 있고 음악시간에 배우고 국경일 때 마다 불러 국경일 노래는 다 외우면서 지냈는데... 바뀐 학교 교육의 현실을 실감한다.

내가 국민(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런 노래를 배우고 불렀다. ”펄펄펄 휘날리는 재건의 깃발 아래서 조국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겠느냐 젊음은 피가 끓는다 일터로 달려나가자 개척에 크나큰 영광 뭉치자 재건의 동지...”라고 부르는 ‘재건의 노래’다. 또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라고 시작되는 ‘혁명공약’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국가를 재건하겠다고 하면서 만들어 보급시킨 노래다. 지금도 그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고 혁명공약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아이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왜 불러야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따라 불렀다.

쿠데타 정권은 삼선개헌을 하고, 긴급조치도 내리고, 월남전에 파병하고, 새마을운동을 벌이면서 정권을 이어갔다. 우리는 이를 홍보 찬양하는 노래들을 배우면서 학교를 다녔다. “자유 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이라고 부르는 맹호부대 노래를 시작으로 백마부대, 청용부대 등 파병부대들이 월남으로 떠날 때마다 노래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 용감하다던 월남 참전 용사들도 지금은 고엽제 피해 뿐 아니라 정신적 장애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새마을 운동을 할 때에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라는 새마을 노래를 마을마다 새벽부터 요란하게 틀어 놓으니 싫든 좋든 날이면 날마다 들어야 했다. 억압적인 정치 속에서 국민들의 저항을 잠재우고 정권안보를 위해 건전가요도 보급했다.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에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 무궁화꽃 피고 져도 유구한 우리역사 굳세게도 살아왔네 슬기로운 우리겨레...”라는 ‘나의조국’ 같은 건전가요는 음반을 낼 때에도 꼭 포함시키도록 했다. 향토예비군과 민방위를 창설하고, 군가도 불러야 했다.

 

어린 시절, 정권이 체제를 홍보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노래와 함께해 왔는데 내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 이십년 전 쯤 인듯하다. 피시통신 동호회에서 모꼬지 갔을 때 노래에 젬병인 내가 음정 박자를 무시하고 억지로 ‘사노라면’을 불렀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날도 날이 새면 해가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밑천인데...”라는 노랫말이다. 


옆에서 노래를 듣고 있던 이가 말했다. “어떻게 그런 노래를 부르느냐?” 90년대 암울하고 힘든 시절, 밝고 힘찬 노래면 좋을 텐데 나약하고 소극적인 노래라는 지적이다. 듣기에 따라 그렇게 들을 수도 있겠다. 그 후에도 가끔씩 사노라면은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청소년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눈을 감으면 구로동 가리봉동 대림동 양평동 같은데서 두어 평 남짓한 방에 두세 명이 비좁게 살아가는 모습을 더듬어 볼 수가 있다. 수십 명이 살아가는데도 화장실이 하나 뿐인 집.

나는 노래를 부르라면 피하고 도망 다닌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을 때는 이따금씩 사노라면을 부른다. 사노라면은 나약하고 소극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 힘들어하고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 비록 나약한 속에서도 이를 떨치고 일어나려는 몸부림을 안고 있다. 사노라면을 즐겨 부르시는 길위의 신부님, 문정현 신부님을 바라보면서. 그래. 오늘은 사노라면을 부르자. 그리고 노래 실력도 닦아 내일에는 더 힘차고 밝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도 오겠지.
작은책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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