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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메관광 0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해 보는 게 반년이 넘었다. 지난여름부터 생활 환경이 바뀐 후로는 차분하게 써 보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 차분해진 것은 아니다. '야메관광' 이야기를 풀어보자. 

'하나둘 셋네 다섯 여섯~' 앞으로 야메관광의 암구호로 사용해야 할 듯하다. 
그 시작은 마늘밭을 매고 있는 오후 나절에 작은책 대표로부터 전화다. 작은책 글쓰기 모임에 나오던 이인동 아저씨가 해남에 일 년 전에 내려와서 지낸단다. 나도 해남에 온지 반년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 해남에 오기로 했단다. 놀러 오는 것인지, 독자 방문인지는 모른다. 

내려오겠다고 한 금요일 오후 시간이 되어도 연락이 없다가 일을 마칠 시간이 되어 연락이 왔다. 해남에 와서 인동아저씨를 만났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단다. 부랴부랴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기다리니 곧장 찾아왔다. 흰색 승합차에 작은 책을 책임지고 있는 안건모 대표와 어디를 가나 이뿌다는 자랑질을 하는 이분이다. 이곳에 찾아온다기에 쑥스러워서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반가워 굳게 손을 잡았다. 

준비하느라 손님맞이도 제대로 못하고 잠시 앉혀 두었다가, 고구마와 금방 만든 두부가 있어 들고 인동아저씨 집으로 따라 나섰다. 아뿔싸 허둥대다 보니 때 묻은 흰 고무신을 그대로 신고 따라 나선다. 대흥사 앞 민박 촌에 버스 타고 다니면서 보아왔던 훌륭한 슬래브 집이다. 집에 들어서니 방이 셋이고 화장실도 둘인 깨끗한 집이다. 집을 보면서 느닷없이 '땡 잡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렇게 좋은 집에 그냥 이 년간 살라고 했다니 그럴 수밖에. 시골에 빈집이 있어도 잘 내어주지 않고, 비워둔 지 오래되어 집들이 낡아 그냥 살 수 있는 집에 흔하지 않다. 

읍에서 지내다가 어제 이사를 하였다고 아주머니와 함께 잠정리를 하느라 바빴다고 하는데, 방은 따뜻하게 불을 피워 두었다. 서울서 온 작은책 손님들이야 지난 연말에도 순창에서 만났고, 인동아저씨 소식이 궁금하고 반가웠다. 몇 년 전 글쓰기 모임에 '백수의 주식투자'라는 글을 써와서 인기를 얻었고, 작은 책이 실리고, 인터넷에서도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분이다. (http://sbook.co.kr/view.html?serial=939) 그런 양반이 농촌으로 와서 농사일을 도우면서 조용히 살고 계신단다. 

저녁을 먹어야 하기에 나의 일터와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 연세 드신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깔끔하고 맛나게 하는 대흥사 아래 식당으로 갔다. 산채 비빔밥에 청국장이다. 아스파탐이 들어있지 않은 해창막걸리와 함께 식사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근처 계시는 목사님께서 가져오신 두리안이라는 열대과일을 먹는다. 나는 처음 먹어보는 과일인데 커다란 과일 껍질을 벗기니 그 안에 노랗고 물컹물컹한 속살이 나온다. 맛을 보고는 잘 익어서 맛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이라 잘 모르겠다. 달콤한 게 먹음직한데 값이 비싸다고 한다. 먹으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였으니 작은 책, 교회, 농촌, 세상 이야기 등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고구마 말랭이, 김치, 식당에서 가져온 반찬, 과일을 안주로 막걸리 소주 복분자를 마시다 보니 여흥 시간으로 옮아간다. 건모아저씨는 기타를 꺼내 악보를 펴고 노래를 시작한다. 술 때문에 잘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노래를 듣는 귀는 즐겁다. 정태춘의 일본 기생관광을 노래한 '내가 살던 고향'이 '좆 되어 버렸어'로 끝난다. 이쁜 언니는 70년대 여공들의 이야기인 김민기의 '강변에서'로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어 김광석의 '일어나'도 나오고, 목사님의 사극의 주제가로 고음의 '훨~ 훨~'을 되뇌는 노래도 힘차다. 밤이 깊어가며 분위가 고조되자 '노래방'을 외쳐보지만 관철되지는 못한다. 촌에도 있을 건 다 있다. 

따뜻한 방에서 잠을 푹 자고 일어나 아침 전에 가까운 대흥사에 올랐다. 숲이 우거진 길다란 계곡을 따라가다 유선 여관이 드렀다. 물을 흐르는 계곡 옆에 오래된 기와집으로 운치잇는 여관이다. 이른 시간이 아니고 추운 날시가 아니면 계곡 바위에 걸터앉아 파전에 막걸리라도 한사발하지 않고 지나칠 수 없겠다. 대흥사에 들어서면 뒷 산세가 부처님이 누워계신 모습을 하고 있다. 산 자락도 부담스럽지 않고 잔잔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절을 들어서다보면 대웅전은 시내를 건너 왼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기도 새로 넓은 땅을 조성해서 불사를 하고 있다. 절 산책을 한 후, 준비된 아침을 맛나게 먹고, 예전 살던 읍에서 옮기지 못한 냉장고와 세탁기 옮기는 울력을 했다.

고정희 생가를 지나 김남주 생가를 찾았다. 아늑한 마을에 시인의 집을 단장해 놓고 그의 시를 새겨 놓았다. 한쪽에는 감옥을 만들어 놓았다. 감옥에 들어간 후에 밖에서 문을 잠그는 장난질도 해 본다.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려주는 시들이 적혀있다. '조국은 하나다.' '자유' '함께 가자 이 길을'... 남창에 있는 기사 식당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고 땅끝이다. 서울 촌에서 온 양반이 우리보고 야메관광이라고 하면서 안내를 잘하라고 다그친다. 그로부터 야메관광이다. 땅끝이면 대부분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오르는데, 우리의 안내자는 차를 타고 산을 오르더니 약간 걸어서 전망대 앞에 다다른다. 모노레일 값을 남겼다. 전망대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고 저 앞에 섬들을 살펴보면서 사진을 찍는다. 땅끝을 표시하는 기준점 아래서도 자세를 취한다. 


바닷길을 달려서 완도다. 배타고 청산도라도 들어갔다 오면 좋으련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다음으로 미룬다. 어떤 이는 나오는 배가 없어 갇혀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완도 선착장 앞산을 올라 전망대에서 저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바라본다. 누구나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까지 시원해지는가 보다. 어시장에서 커다란 숭어와 전복을 사서 그곳에 먹기 비좁아 편안한 집에서 먹기로 하고 돌아온다. 가까이에 '벌떡 백숙'이라는 음식점 간판을 보아서인지 건모아저씨는 오리고기를 먹어야 한단다. 그것도 시장에 파는 죽은 오리 말고 산 오리를 사서. 신오리를 파는 데가 없자 생협의 오리를 사자고 해서 읍내의 자연드림까지 찾아가서 큰 오리를 한마리 사서 커다란 냄비 푹 삶는다. 

완도에서 사온 전복과 숭어만 먹어도 배가 벌떡이다. 소화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또 노래를 불렀는듯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야메관광의 암구호가 될 수도 있는 '하나둘 셋네 다섯 여섯'이라는 장단이다. 리듬짝이라고 했던가? 완도할머니 이야기도 있었나. 이렇게 놀다 삶아놓은 오리를 가져다가 먹는데 국물은 구수하고 시원하며 고기도 고소하며 연하다. 배가 불러 많이 먹을 수 없어 맛만 보고 내일 먹기로 한다. 어제와 잠자리가 바뀌면서 코를 더 많이 골았다고 한다. 

오리 백숙과 함께 맛있는 아침밥을 먹고 일어선다. 염소 내장도 있었고, 팥죽도 있었는듯한데. 서울 양반들이 갈 길이 멀다고 오전에 가겠다고 한다. 오전에 강진으로 다산초당을 거쳐서 점심이라도 먹고 가면 좋을 텐데 말이다. 가늘 길에 인동아저씨는 고구마 두 부대를 차에 실어주면서 잘 먹으라고 한다. 헤어짐의 아쉬움과 시골 고향 부모님과 같은 마음일까? 

헤어진 후 오랜만에 교회를 갔다가 오늘 길에 옆 마을 '다이룬집'에 들렀다. 지금은 지혜 학교에 있고, 예전 작은 책 글쓰기에도 나오고 역사와산에도 나오던 남옥선생이 와 있었다. 내가 둔해서 처음에는 미처 못 알아보다가 이름자를 듣고 반가이 손을 잡았다. 나도 이 집을 몇 번 다녀갔지만, 이곳에 가끔 온다고 한다. 앞으로도 만나는 시간이 있을 듯하다. 미리 알았으면 서울 양반들과 하루밤을 같이 보냈으면 좋았을텐데. 흔히 하는 말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 

그들이 떠나고 '야메관광'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래 야메관광을 해 보면 좋겠다. 심심한데 사람들도 만나고, 도시 사람들 머리도 식히면서 즐겁게 놀면 좋을듯하다. 서울에서 멀기는 하나 남녘에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쉴 곳도 많다. 그러고 보니 90년대 10여 년간 답사모임 해 본 짓거리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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