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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학원에서의 단상

2003년 11월 03일

 

웬걸, 주제넘게 놀고먹고자빠져있는 나로 하여금 매일 새벽 6시 기상을 하도록 만든 건 3주전 등록하여 아침마다 나가고 있는 운전면허학원이다. 그 동안 울산이니 서울이니 사북이니 돌아다니면서도 학과시험, 기능시험 통과하고 오늘부터 도로주행연수를 받는 나는 강사들과 직원들이 막 출근할 때인 7시 50분 경 학원 로비에 들어앉아서 이라크에서 테러로, 전쟁개시 이후 미군 최대규모라는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때 쯤 2층에서는 사장과 노동자들(강사 및 직원)이 참석하는 조회가 끝날 무렵인지 "어서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같은 인사말들이 꽝꽝 울려대고 도로주행연수 담당 강사들도 뭔가 어두운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일반 도로에서의 운전은 처음 경험하기에 강사의 시범을 유심히 보고 1톤 트럭을 몰고 드디어 도로에 나섰다.

 

나는 정해진 코스를 두 번쯤 돌고 출발지로 돌아와서 나와 비슷한 또래인 H군 등과 담배를 피우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나의 아버지뻘 되어 보이는(사십대 후반 쯤, 우리 아버지는 50대 후반이긴 하지만) 담당 강사가 갑자기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하는 것이 아닌가.

 

"에이, 간만에 오전교육 좀 할 만 하네. 이건 뭐 사장놈으새끼는 몇 푼 더 쥐어주면 어디서 장내 코스도 제대로 못허고 기어 변속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데려다놓고 도로연수 시키라니 길바닥에서 뒈지라는 거여, 뭐여."

 

또 다른 강사 아저씨 왈

 

"아, 누가 아니래. 하여간 나는 아줌마들땜에 미치겄어. 툭 하먼 시동 꺼먹고 불안해서 어디 강사 허겄나그려. 그리고 뭐 알려 주면 욕 해싸코, 뭐 장 본다고 태워다 달라 뭐 하라 참. 오늘은 야 묘허게 젊은사람들만 일찍덜 나와갔고서는 헐만 허네그려."

 

다시 나의 담임 강사 아저씨 계속하시기를

 

"육시럴, 내년이면 도로주행도 2키로(km) 늘어나는디, 코스 교육 준비도 니덜이 알아서 하란 식이고 지대로 교육여건도 안해주면서 아침마다 친절교육 허라고 인사나 시켜싸코, 얼어죽을 그렇게 해갖고 어디 친절교욱 되겄어?"

 

욕설이라든지 성차별적인 표현의 문제는 잠시 접어 두고, 아저씨들간의 대화의 내용이 심상치 않게 들렸다. 운전학원이라는 현장에서 최소한 10년 넘게 일해온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에 대한 불만이 그렇게 터져 나왔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운전면허 취득에 있어서는 도로교통법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학과 교육 1시간, 장내기능교욱 25시간을 받아야 검정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규정인데, 대부분의 학원에서는 일단 연습 조금 해 보고 시험에만 통과하면 수강 시간 채워서 적어주고 도장 찍어주는 그런 식이다. 웃돈을 좀 얹어준다던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뭐 '다 아는' 그런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운전면허 취득희망자들은 단시간에 면허를 취득하길 바라며, 이것이 운전학원 홍보에는 최고다. 그리고 얼른얼른 면허 따가지고 나가면 수강생 더 받을 수도 있고 말이다. 물론 운전면허도 최대한 빨리 따야 하고 특히 화물차는 도로에서 날아다니는 이런 현실들도 먹고 살기 힘든 계급적 현실을 반영하긴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 자본과 권력이 이를 이용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얼마 전엔 경기지역의 어느 자동차학원에서 노동조합의 투쟁이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임단투가 아니라면 아마 이런 것들이 주요 쟁점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이 학원은 어용노조조차 없지만, 노동조합 아니더라도 이렇게 충분히 정치적인 아저씨들이 조직화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만' 해 보며, 그래도 내게 '친절교육' 해준 강사아저씨에게 조금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저씨 그럴 땐 싸우자고요."

 

제길, 그래도 이번 주만 보내면 운전면허 나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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