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민중, 지배계급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6/02/01 19:41
몇 년간 지렁이를 키웠었다.
내가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들을 먹고 지렁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지금은 음식물 쓰레기 전용봉투가 나와서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거기에 버리지만, 음식물 쓰레기 전용봉투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나는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음식물(수박껍질, 양파껍질, 귤껍질, 당근 대가리, 버섯 뿌리 부분, 딸기나 토마토 꼭지 등)이 있으면 그걸 지렁이에게 주었던 것이다.
 
처음엔 화분 하나로 충분하던 지렁이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더넓은 곳으로 지렁이들을 이주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지렁이들은 자신이 사는 흙을 거무스름한 분변토로 바꿔준다.
이 분변토는 영양소가 아주 풍부하게 들어있는 최고의 흙으로 여기에 작물을 재배하면 따로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그 흙을 파보면 건강하게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지렁이들이 다치지 않게 플라스틱 수저로 흙을 요리조리 파보면서 지렁이들의 생김새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커다란 재미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지렁이들은 매우 영특하다는 것이다.
지렁이들은 단성생식을 한다.
즉 암수가 결합하지 않아도 스스로 번식을 한다는 말이다.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니, 부러운 부분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가 사는 곳에 필요한 개체수 이상의 지렁이가 생겨나면 더이상 생식을 하지 않고 번식을 멈춘다.
스스로 적절한 생활조건을 만들기 위해 본능인 생식까지도 조절을 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출산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다고 지배계급은 난리가 난 모양이다.
젊은 사람들, 즉 노동력을 가진 인구가 끊임 없이 보충되지 않으면 자본가들은 생산활동을 계속 할 수가 없게 되고, 권력자들이 거둬들이는 세금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자본가들과 권력자들 즉 지배계급은 타격을 입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출산을 장려한다.
출산장려금 같은 것을 주며 아이를 더 낳으라고 유인하는 한국의 지배계급을 보면서 난 이들이 지렁이보다도 더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민중들은 이 조그만 반도 남단에 이미 4천7백만명이라는 너무나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비좁다는 것을, 이것은 적절한 생활환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민중은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스스로 출산률을 조절하는 것이 아닐까.
지렁이처럼 말이다.
 
민중이 살아가기에 적절한 생활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배계급의 배를 불리고, 그들의 권력을 키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 민중들이 뿌리박고 제대로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멀쩡한 논을 파헤쳐 미군기지로 만들어버리려는 시도가 팽성에서 벌어지고 있고, 멀쩡한 갯벌을 파괴해 논을 만들겠다는, 실은 가진자들의 놀이공원을 만들겠다는 시도가 새만금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래서야 어디 민중이 마음놓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을까?
 
민중은 자신이 살아갈 환경을 끊임 없이 파괴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지배계급의 시도를 저지해야 한다.
그리고 척박해진 흙을 기어다니며 숨구멍을 트고, 자신의 똥으로 산성의 죽은 흙을 생명이 숨쉬는 기름진 분변토로 바꾸는 지렁이의 지혜를 민중은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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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1 19:41 2006/02/0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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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작나무 2006/02/01 23:27 Modify/Delete Reply

    '지렁이 카로'를 읽고 고녀석들에게 반했더랬지요.
    행복하시겠어요.
    저도 고녀석들과 살림을 차려볼까 했는데 여의치 않드만요. 분양받을려면 매일 일지도 꼼꼼하게 써야하고, 가족들의 동의도 얻어야 하고, 뭐 여차저차해서 담을 기약하기로 했어요.

    꿈꾸는 지렁이 녀석들 올핸 만날 수 있으려나.

  2. 2006/02/02 00:04 Modify/Delete Reply

    꼭 분양받아보세요. 여의치 않으면요, 커다란 화분에 흙을 채워넣고요, 동네 낚시점에 가서 미끼로 쓰는 지렁이 천원어치를 사서 넣어주면 된답니다.
    처음엔 음식물 쓰레기를 넣어줄 때 염분이 없도록 물로 헹궈서 물기가 어느 정도 빠진 다음에 주면 되고요,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면 그냥 아무 음식물 쓰레기나 줘도 잘 먹더라고요.

  3. 나루 2006/02/02 00:57 Modify/Delete Reply

    정말 멋진 글이군요!!

  4. 아침 2006/02/02 14:56 Modify/Delete Reply

    나도 독립의 꿈을 이루면 지렁이를 키워볼테야... 아직은 무섭지만, 곧 친하게 지내겠지?

  5. 2006/02/02 18:50 Modify/Delete Reply

    나루/ 진보넷 블로그에는 정말 멋진 글들이 많죠?
    아침/ 그러도록 해. 지렁이와 친해지면 아주 좋단다.

  6. 티코 2006/02/04 23:51 Modify/Delete Reply

    지렁이에 비유한 적절한 글..ㅎㅎㅎㅎㅎㅎ나도 지렁이 키우고 싶다........ 나중에 텃밭 사면 진짜 멋지게 만들어 볼 텐데..... 지배계급은 지배할 머릿 수가 많아야 자신들에게 돌아갈 몫이 많아진다고 생각하죠.. 그만큼 착취해야할 대상이 늘어나니 착취물은 자연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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