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문화가 활개를 치다

꼬뮨 현장에서 2006/09/28 22:23
문화연대가 만드는 웹진 <문화사회>에 쓴 글입니다.
 
 
대추리에서 저항의 문화는 스스럼없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

여름이 다 가고, 이제 황새울 들녘에 뿌려놓은 벼를 추수하는 계절이 왔다. 그리고 그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며 나는 오늘도 대추리에서 살고 있다. 지난 7월 초 급조대안밴드 ‘철조망을 불판으로’ 친구들과 함께 빈집을 하나 고치고, 꾸며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든 그 집이다. 평택지킴이네 집 옆에 있어서 ‘옆집’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불판팀 사람들이 함께 꾸민 집이라 ‘불판집’이라고도 불린다. 이 집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집 가운데 가장 큰 집이다. 방이 세 개나 있고, 마루도 널찍하고, 부엌과 화장실도 시원시원하다. 난 이 집이 아주 맘에 들어서, 주민들이 팽성에서 쫓겨나지 않고 계속 살 수 있게 된다면 나도 이 집에서 계속 살아갈 생각이다. 불판팀 친구들은 내가 이 집을 혼자 차지할까봐 불안해 하는 모양이다.

불판팀 사람들은 개성이나 하는 일이 너무도 제각각이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데, 반전집회에서 자주 만나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흩어지기를 몇 년간 반복하다가 이르게 된 하나의 동아리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미술가, 회사원, 록밴드 멤버, 양심에 따른 백수, 아나키스트 활동가, 정신질환 장애인, 학생 등등 이보다 더 다양할 수 없는 사람들이 평택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였다고 보면 된다.
본문의 모든 사진은 비대칭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blog.jinbo.net/plant001)
불판팀 사람들은 6월 18일에 대추리에서 열렸던 3차 범국민대회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모였다. 철조망으로 막혀 있던 대추리, 도두리 마을에 경찰의 삼엄한 검문을 뚫고 모인 우리들은 즉석에서 노래 공연을 갖기로 했다. 악기는 별로 없었고, 음악 실력도 별로 없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흥겹고 신나게, 범국민대회에 모인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으니까. 평소 들고 다니던 잠베 드럼과 기타, 피리, 탬버린 그리고 즉석에서 만든 타악기들을 들고 무대에 올라 ‘국방부 똥구멍’과 ‘올해에도 농사짓자’ 같은 가사들이 반복되는 노래들을 불렀다.


무대에 서기 전 리허설을 할 곳이 필요했다. 마침 행사가 열리던 평화동산에서 가까운 곳에 빈집이 하나 있었다. 지킴이네 바로 옆집으로, 내가 미리 점찍어둔 곳이었다. 우리들은 더러운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북을 두드리고, 노래를 불렀다. 바닥은 더럽고, 깨진 유리가 사방에 널려 있었지만 아늑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껏 소리를 내지를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하고도 행복한 느낌이었다. 그 날 말로 꺼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들 모두 그집에 다시 모이리라는 것을 육감으로 알 수 있었다.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우리들에게 마침내 계기가 마련되었다. 국방부에서는 7월부터 조만간 빈집을 철거하기 위해 경찰과 용역을 동원해 들어온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포고를 내렸고, 우리들은 당연히 그집을 예쁘게 다듬어 구해내고 싶었다. 비어있던 집이 주었던 따뜻한 느낌을 우리는 보답하기로 한 것이다. 이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들어와 마을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채소들이 쑥쑥 커나가는 것도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 놀라운 생명력도 우리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농사꾼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라고들 하는데, 그 의미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7월 초 불판팀 사람들은 손에 페인트와 붓 그리고 청소도구들을 들고 다시 모였다.








완전히 처음부터 집을 고쳐 나갔다. 마당과 마루와 방을 청소하고, 문짝과 창틀을 손보고, 화장실을 닦고, 침침한 방안을 파스텔 톤의 페인트로 칠해 분위기를 확 바꿔 버렸다. 부서진 것들은 내다 버리고, 필요한 것들을 주워왔다. 작업은 꼬박 이틀이 걸렸지만 흉가 같던 집은 어느새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이제 그곳에서 본격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전기와 물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지만 당장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 자체로 저항이었고, 스쾃이었고, 점거였으니까. 밤에는 촛불을 켜고 생활을 했고, 필요한 물은 근처에서 양동이로 길어다 썼다. 물이 부족했기에 생태화장실을 만들었다. 똥과 오줌을 맑은 물로 씻어내기 위해 낭비해야 하는 그 많은 물의 양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마을 골목마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왕겨와 짚을 구해 퇴비화 변기 시스템을 만들었다. 전기가 없으니 텔레비전도 보지 않게 되고, 자연히 우리들은 밤마다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귀신놀이를 하면서 더욱 친해져갔다.

우리들은 대추리, 도두리 마을이 비옥한 토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자 그대로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벼를 심으면 맛좋은 쌀이 나는 비옥한 황새울 토양이기도 하지만 저항의 싹을 심으면 그것이 자라고, 예술의 싹을 심으면 그것도 자라나는 곳이 이곳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국가폭력에 맞서는 민중들의 자율적인 질서로 운영되는 평화예술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경찰과 군인 그리고 정부차량이 얼씬거리기만 해도 주민들이 나서서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친다. 적어도 이곳에서 주민들은 국가의 실체를 똑똑히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부는 필요 없는 것 같다’면서 자신들도 나처럼 ‘무정부주의자’가 되어버렸다고 나에게 은밀한 고백을 하기도 한다. 이런 거대한 실험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나는 아나키스트로서 참으로 행복하다.
대추리, 도두리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정치적이고, 더 급진적이고, 더 예술적인 스쾃운동은 아마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1960년대 말 이후부터 불타올랐던 스쾃 운동을 살펴 보았지만 대부분은 개별 건물들에 대한 스쾃이었고, 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진 스쾃들이었다. (물론 도시의 일부 지역을 모두 점령한 강력한 스쾃 운동도 있긴 했다) 이곳은 개별 건물을 점유해 거주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마을 자체가 스쾃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농촌 등 다른 지역을 착취해야만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 도시에서가 아니라, 자급할 수 있는 기반이 존재하고 있는 농촌에서의 해방공동체 스쾃 건설운동이어서 유지 가능성이 높다.

대추리, 도두리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놈의 법이 들어와 강제로 땅을 빼앗아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법이 주민대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었고, 그놈의 법이 들어와 철조망을 치고 주민들의 통행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 강한자들의 법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떠난 사람들이 생겨났고, 마을 공동체가 여러번 파괴되었던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주민들의 생존권을 완전히 무시해온 곳이기에 이제 이곳에서 저들의 법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곳에서의 삶이 앞으로 제국주의 군대의 폭력에서 해방되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법은 결국 강자의 폭력이기 마련인데, 아름다움과 소박함에 기반한 예술이야말로 일상생활에서 폭력을 몰아낼 수 있는 가장 신나는 행동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빈집을 꾸미고, 미술작품처럼 사방을 칠해 놓으니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 살게 되고, 마을이 차츰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곳이 평화예술마을이 되어 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죽음의 냄새가 피어오르는 곳에 생명의 싹이 자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대안이자 오래된 혁명이니까. 물론 온 마을을 그림으로 칠해놓고, 하루종일 시끌벅적 노래를 부르면서 지낸다고 마을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박하고 비장한 투쟁도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대추리, 도두리에서는 저항이 일상이 된 곳이다. 그곳에서의 삶 자체가 저항이다.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잠을 자는 것 하나하나가 국방부와 미군의 폭력에 대항하는 소중한 행동이 된다. 그런 곳에서 누구도 절박함만으로 하루를 온전히 버텨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신나고 즐겁게 가기로 한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나서서 생태와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최전선에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설득하려 들지 않고 그저 저항의 문화와 예술이 스스럼없이 활개를 치고 다니며 삶 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대추리 불판집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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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8 22:23 2006/09/2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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