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돈 몇 푼을 벌다, 그것도 노래로!

나의 화분 2004/09/22 18:18

여기저기서 날 가수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난 노래를 불러 돈을 벌어본 기억이 없다.

내가 돈을 달라고 조르면 아마 몇 푼 받았을 수는 있지만 내 노래의 댓가를 돈이라는, 이 국가가 운영하는 화폐체계로 환산당하는 것이 싫어서 나는 무보수를 고집한 것이다.

내 노래를 돈으로 계산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모욕이다. 나의 노래가 탱크보다 강한 것처럼 나의 노래는 돈보다 강하다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있는 내게 누군가 나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주고 싶다면 쌀이나 과일, 또는 야채 등 현물로 주면 된다고 이야기해주련다)

2004년 9월 20일은 부시와 블레어 그리고 노무현 등 이름을 거명하기조차 끔찍한 이들 '전쟁범죄자'들을 민중들이 재판을 열어 기소하는 전범 민중재판운동의 발기인 총회가 열렸던 날이다.

비가 많이 내려서 장소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흥사단 3층 강당으로 바뀌었고, 행사는 그럭저럭 잘 끝났다.

나는 여는 마당으로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노래를 2곡 불렀다.
'자이툰 부대, 들어'와 '평화가 무엇이냐'를 불렀다. 평화가 무엇이냐는 보리언니도 함께 올라가 불렀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원래 기타도 잘 못치고 노래도 잘 못부르는 내가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베이스 기타를 치는 놈 아닌가? 내가 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고 있는가?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이다.

나보다 노래도 더 잘 하고, 나보다 기타도 더 잘치는 친구가 있어서 함께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치고 그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내가 원하는 노래들인만큼 내가 기타를 치고 내가 노래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느낌으로 부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행사는 그럭저럭 잘 끝났다.
그리고 아콤다의 공연과 별음자리표의 공연도 있었다.
행사가 시종일관 지루했던 탓에 나는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아콤다가 나가서 흥겨운 노래들을 부르니 몸이 저절로 덩실거린다.

게다가 별음자리표가 '총을 내려'와 '앗살람 알라이쿰'을 불렀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70년대 저항가요는 '아침이슬'이었고, 80년대 저항가요는 '그날이 오면'이었고, 90년대 저항가요는 '바위처럼'이었다면 2000년대 저항가요는 단연 별음자리표의 '앗살람 알라이쿰'이 아닌가 생각이 든 것이다.

훌륭한 노래다.
나는 탬버린을 치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고, 분위기도 달아오르는 듯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헤어질려고 했다.
나는 기타를 메고 대학로에서 집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다.
마침 주위에는 1시간 반 동안 걸으며 허해질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내가 미리 마련한 채식 김밥 2줄을 탐내는 아콤다 멤버들이 줄지어 있었다.

우리들은 즉석 공연을 하기로 했다.
마침 풍동에서 변두리 영화제를 열려고 했었기에 기금도 필요했다.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저글링을 하면서, 그리고 구호를 외치면서, 우리들은 맘속에 품고 있던 주장들을 하나하나 펼쳐놓기 시작했다.

* 이주노동자들을 전면 합법화하고, 노동비자를 주어 맘놓고 일할 수 있게 하라. 단속 추방은 당장 중지하라!

* 대한주택공사 등 가진자들은 용역깡패를 동원해 일산 풍동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주거권마저 빼앗겨야 하는가? 철거민들의 처절한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요구를 당장 수용하라!

* 병역거부자들을 당장 석방하고 병역거부권 인정하라!

* 침략적인 전쟁을 중단하고 자이툰 부대는 철군하라!

* 천성산을 망가뜨리고 온 국토를 짓밟는 KTX를 반대한다! 모든 골프장 건설도 당장 중단하라!

우리들은 목이 터져라 외치고 노래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우리의 주장이 낯설어서였는지, 아니면 우리의 주장에 공명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가 희한하게 보였기 때문인지 또는 그저 스캥크의 불쇼가 눈길을 확 잡아 끌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사람들은 지나가던 발걸음들을 멈추고 우리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몇몇은 지갑을 꺼내 지폐들을 던져주기도 했다. 천원과 천원이 모이고 모여 29,500원이 되었다. 즉석 공연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의 일이다.

이 날의 공연이 '특이한 길거리 공연을 보았다'는 식으로, 가을날의 추억 쯤으로 행인들에게 기억될 수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며 갖은 차별과 억압, 착취와 폭력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그리고 이들과 마주보고 함께 손을 잡기 전에는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음을 되새기는 자리였기를 바란다.

아마도 사람들은 우리들의 이런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없는 돈이나마 털어서 보태준 것이 아닐까? 그 돈 몇 푼이 내게는 소중했던 이유는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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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2 18:18 2004/09/2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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