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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2009년 12월 32일"

 

 
 
"1월 20일, 멈춰버린 용산의 시계는 2010년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용산참사 해결 촉구 추모문화제 "용산! 2009년 12월 32일"
 
 
올해가 가기전 용산에 모여 우리의 의지를 모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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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감옥 바깥이 모조품입니다

[한겨레를 읽고] 양심의 감옥 바깥이 모조품입니다 / 은국
한겨레를 읽고 / 서경식 선생님께


‘디아스포라의 눈-눈보라처럼 진실이 몰아치다’(<한겨레> 11월21일치)를 읽고 편지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글을 읽고 지금 저의 상황과 선생님의 글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저는 선생님을 잘 모릅니다. 서준식 선생님 동생이라고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중인 젊은이입니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병역거부 선언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징병제에 반대하며 군대와 국가같이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시스템 자체가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눈보라처럼 진실이 몰아치다’의 마지막 단락에서 ‘지금의 내 생활이 어쩐지 모조품 같고 그 바깥에 위험으로 가득 찬 진실이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는 말이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병역을 거부하고 (저는 4주 군사훈련만 받으면 공익근무를 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제 처지가 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나는 좀더 진실에 다가서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신념과 양심을 뒤로하고 군사훈련을 받았다면 제 삶과 인생이 여전히 ‘모조품’ 같다고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감옥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이 비일상적인 곳이고 아나키스트에게는 지옥과 같은 국가권력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모조품과 같은 평온하고 안전한 삶을 거부하고 위험으로 가득 찬 진실의 공간인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잖아요. 허상의 매트릭스 세계는 화려하고 안락합니다. 하지만 진실의 공간인 우주선 속은 누추하고 삭막한 세계이죠.

저에게 이 감옥은 진실의 세계입니다. 무덤과도 같은 감옥에서 오히려 ‘살아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네요. 하지만 신념과 양심이 없는 삶은 모조품일 뿐이겠죠. 제가 이 진실의 세계를 선택한 것에 대해 오늘은 안도감이 듭니다. 몸은 비록 감옥에 묶여 있지만, 이 선택이 제 자신에게 솔직한 삶이었고 더 진실한 삶이라는 확신이 저를 충만하게 만듭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제가 이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좀더 분명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그 느낌이 다가왔습니다. 아마 선생님과 제가 모두 ‘소수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러한 공명이 가능한 듯싶네요. 제 얘기를 들으시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정도의 생각이라도 해주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은국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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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현장 달거리대 만들기 모습

2009년 7월 26일 용산참사 현장 뒤편 촛불미디어센터 '레아' 2층에서 열린 피자매연대 달거리대 만들기 워크샵 모습입니다.

 

 

10명이 넘는 분들이 오셨습니다.

모두들 용산참사 현장에는 처음 오시는 분들이어서 용산 철거민들의 투쟁소식을 경청했고, 바느질도 재밌게 했습니다.

모두들 피자매 달거리대도 완성해갔습니다.

 

아래 사진은 피자매연대가 모은 용산 철거민 투쟁 후원금을 철거민대책위 위원장님께 전달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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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서 열리는 달거리대 만들기 워크샵

안녕하세요.
피자매연대입니다.
 
피자매연대가 용산참사 현장에서 개최하는 달거리대 만들기 공개워크샵이 2009년 6월 7일 일요일에 열립니다. 
다음 준비물과 참가비 천 원을 가져오시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어요.
 
참가비: 1,000원 (용산 철거민과 참사 유가족 후원금으로 전액 사용합니다) 
준비물 : 가위, 실, 바늘, 시침핀. 수성펜, 융천(현장 구매 가능), 똑딱단추(현장 구매 가능) 
*날개 분리형 만드실 분은 융천 대신 수건을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 시간이 없어 천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달거리대 하나를 만들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로 자른 융천과 똑딱단추 키트 판매합니다.(1천원)

* 대신 가위와 바늘 및 실은 꼭 지참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초보자들이 가능하고요, 남자든, 어린아이든 바늘을 집을 수 있으면 모두 만드실 수 있어요.
물론 다양한 면 생리대 종류를 구경하실 수 있고, 해면과 키퍼를 보고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여럿이 같이 만들면, 혼자 할 때보다 훨씬 쉽고 재밌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함께 수다를 떨며 바느질을 하는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아요.
 
장소: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용산참사 현장 바로 뒤 '레아 호프' (수도권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2번 출구에서 직진 약 100m. 현장 주변에 경찰버스가 주차되어 있으므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시간: 2009년 6월 7일 일요일 오후 3시 부터 5시 30분까지
문의: 02-6406-0040 (피자매연대)
 
* 널리 알려주세요. 
* 부자들과 재벌 건설사만을 위한 재개발이 아니라 가난한 서민과 세입자들을 위한 재개발을 위해서 용산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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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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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방기하는 국가와 의료기관, 재판부 모두가 유죄다

[성명서]

책임을 방기하는 국가와 의료기관, 재판부 모두가 유죄다

- 난자채취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기각에 대한 여성단체 네트워크의 입장을 지지하며

2009년 2월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89단독 박재현 판사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연구팀에 난자를 제공했던 여성 2명이 국가와 성심의료재단(미즈메디 병원), 한양학원(한양대병원)을 상태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난자채취 시술의 후유증에 대한 설명이 미흡한 것은 인정되지만 법률적으로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고 심각한 합병증이 없는 이상 손해배상 제기가 불가능하다”는 재판부의 결정은 난자채취 과정에서 발생한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적'으로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소송에서 피해 여성들이 제기한 핵심적인 문제는 첫째, 황우석 연구팀이 난자의 사용 방안에 대해 허위 또는 불충분한 정보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둘째, 난자채취 시술 과정이나 그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난자의 사용 방안에 대한 불충분한 정보 제공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실험의 모든 목적과 과정에 대한 정확하고도 상세한 설명까지 필요하다고 할 수 없고 전문적인 의학실험에 있어서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다"고 판단했다. 연구팀이 제공한 기증안내서와 동의서에 이미 기증된 난자가 줄기세포 연구에 쓰인다는 점이 드러나 있고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의 확립과정, 줄기세포 연구 단계 등이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기증자들이 자기결정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난자기증자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한 전제로 선행되어야 할 의료기관 및 연구팀의 설명의 의무가 단순히 기증동의서에 서명을 받는 것만을 의미하는가? 피해자들은 기증한 난자가 초기단계의 기초 연구에 사용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가 수립된 것으로 알고 기증했거나, 곧바로 난치병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안내되어야 할 정보인 난자의 사용 방안조차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거나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점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모든 목적과 과정에 대한 정확하고도 상세한 설명"의 어려움을 친히 미루어 짐작하고 배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6년 황우석 연구팀의 논문조작 사건 이후 학계와 법조계, 정부 및 언론이 한 목소리로 성과 중심적인 연구문화에 대해 반성하며 '생명과학 연구에서의 윤리'를 주장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의문이다.

두 번째, 난자채취 과정과 그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이 불충분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합병증을 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미 2006년 11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황우석 연구의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보고서> 발표에서 '황우석 연구팀은 난자 수급을 전제로 하는 연구계획 당시부터 과배란 증후군 환자에 대한 사후적인 조치에 이르기까지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나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후유증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합병증이 아니기 때문에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은, 결국 생명과학 연구에서 발생한 윤리적 책임을 아무에게도 지우지 않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난자 채취의 부작용과 위험 설명에 대한 절차적인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그 문제가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받을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결국 그 자체가 기만적인 판결인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은 결국 난자를 기증하고도 후유증에 시달리며 그 고통을 온전히 혼자서 감수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더 심각한 수준의 합병증'이라는 결과를 통해 절차상의 문제점을 증명해 내라는 요구처럼 들릴 뿐이다. 재판부는 '충분히 설명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난자기증자들이 입증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병원 측이 '충분히 설명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상식조차 떠올리지 못한 것인가.

'과거의 잘못을 되짚는데 의미가 있다'는 자기만족형 판결은 누구를 위한 판결인가?

재판부는 이번 소송에 대해 "황 박사에게 열광해 여성 인권을 도외시한 과거의 잘못을 되짚는데 의미가 있었다"며 "여성 인권보호를 위해 난자기증 절차에 대한 논의가 계속돼야 하며,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우석 논문조작 의혹이 보도되기 이전부터 수많은 연구자 및 여성단체들이 생명과학 연구의 윤리문제와 난자채취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했지만, 국가차원의 프로젝트에 여성인권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논문조작 사건이 공론화되고 난자기증의 부작용과 위험성에 대한 문제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이후에야, '인체를 이용한 의학 연구에서 피험자의 복지에 대한 고려가 과학적∙사회적인 이익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헬싱키 선언)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수준의 인식을 공유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과거의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르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목 아래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등 여성 인권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오며 3년이 지난 지금 시점까지 아무런 변화 없이 그 책임을 회피, 방관하고 있는 국가와 의료기관, 그리고 재판부이다. 3년 전에 얻은 상식조차도 발휘하지 못할 만큼 '과거의 잘못'은 제대로 평가하지도 않은 채, 언제까지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를 방관만 할 셈인가?

이번 재판부의 판결에서 보여준 국가와 관련 의료기관, 그리고 재판부의 인식은 황우석 연구팀의 논문조작 사건 이후 진행되어 온 연구윤리에 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들을 오히려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다시 한 번 여성의 인권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렸다는 혐의를 벗기 어려울 것이다.

마땅히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여성단체들을 지지하며, 무엇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여성의 인권에 대해 무심한 사회의 반성을 촉구해 온 여성들의 용기에 지지를 보낸다.

2009년 3월 2일

언니네트워크 / 성매매없는세상[이룸] / 인권운동사랑방 / 장애여성공감 / 트렌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 피자매연대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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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생겨난 피자매연대 운동



보다 자세한 내용은 http://irregularrhythmasylum.blogspot.com/2009/02/blog-post_16.html 에 있습니다. 직접 일본어를 읽고 이해하시는 분들은 위 기사를 읽어보세요.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국경에 상관없이 어디에서든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대안운동이 벌어집니다.
환경과 월경권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대안생리대 운동 역시 경계를 넘어 퍼지고 있습니다.
2008년 여름에 도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피자매연대 운동에 대해 잠시 소개해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관련 글은 http://www.dopehead.net/board/zboard.php?id=blood&no=10402 에 있습니다)
드디어 일본의 피자매 활동가들이 지난 2월 20일 금요일 저녁 도쿄의 코엔지에 있는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곳에서 대안생리대 만들기 공개워크샵을 갖고, 앞으로 매달 이와 같은 모임을 개최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피자매연대 활동가들은 초창기부터 일본의 활동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해왔고요, 얼마 전 일본에서 온 활동가에게 저희들이 응원과 연대의 메시지를 담아서 보냈습니다.
그 메시지가 2월 20일 도쿄에서 열렸던 대안생리대 만들기 공개워크샵에서 상영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다시 또 한 명의 일본 활동가가 3월 초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 친구는 도쿄 워크샵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갖고 온다고 해요.
그래서 이 친구와 함께 이 동영상을 관람하고, 간담회를 갖을 예정입니다.
한국 피자매연대 홈페이지 http://bloodsisters.net 를 통해 곧, 장소와 일정을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그리고 또 다른 많은 곳에서 피자매연대 운동이 보다 활발하고 널리 퍼지게 합시다!

아래 사진은 이번에 일본 피자매 활동가들이 만든 달거리대들을 엮어 만든 걸게천입니다.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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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매 세미나 - 여성의 성, 사랑, 젠더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2008-2009 겨울 피자매연대 세미나 여섯번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일시: 2009년 2월 20일 금요일 저녁 8시
장소: 피자매연대 활동가 디온네 집 (서울 남산 아래 해방촌 오거리 부근입니다. 저녁 7시 30분에 '수유+너머 연구실 카페'에서 만나서 같이 가겠습니다. 늦게 오시는 분은 해방촌 오거리까지 올라오셔서 02-6406-0040 으로 전화를 주시면 모시려 가겠습니다)
내용: 캐롤 타브리스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1999년 또 하나의 문화 발간)' 6장, 7장, 8장을 읽고 오시면 됩니다.

6장 - 잠자리 이야기 - 여성의 성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7장 - 사랑의 전문가, 사랑의 희생자 - 여성은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
8장 - 젠더에 대해 말하기 - 멀었던 한쪽 눈 회복하기
 
* 2009년 3월부터는 벨 훅스'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를 같이 읽고 세미나를 합니다. 매월 첫째, 셋째 금요일에 모일 예정입니다. 세미나에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책을 읽고 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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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

2009년 맞이 피자매연대 세 번째 세미나 초대글

안녕하세요? ; )

난 피자매_아하에요.

일단 신년이니까 2009년 새해 복 많이받으시구요^^ㅎ
원하는 일마다 잘 이루어지길 바래요~
그리고 우리 올해 2MB정권에서도 굴하지 말고 꾿!꾿!히 살아남아요!!!

다름이 아니라 피자매연대에서 주최하는 세미나가 1월 9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 서울 남산 아래 해방촌에 있는 빈집에서(http://house.jinbo.net ) 열리게 됩니다^^
세미나 내용은 캐롤 타브리스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1999년 또 하나의 문화 발간)' 1장, 2장을 읽고 오시면 되는데요.

1장과 2장의 내용은
1장 - 남성 기준에 도달하기,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은 이유
2장 - 아름다운 영혼과 다른 목소리 -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지 않은 이유

이렇게 나누어지는데요.
제가 1장 발제를 맡게 되어서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긴 한데요.

세상의 몸과 정신에 대한 매체들은 끊임없이 이성애자 성인남성을 세상 기준에 두고
일단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이후에 그외의 사람들을 열외로 생각을 하고,
특히 여성의 몸과 정신에 대해서 열등한 존재로 야기를 하곤하는데,
이에 대해서 거꾸로 생각하면서

내가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민들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로 다시끔 생각할수 있는 문제를 던져누는 책인 것 같아서 피자매와 연을 맺으셨던 피자매들이 다같이 모여서 이 책에 대해서 같이 읽고
재밌게 고민하고, 치열히 수다떨었으면('-') 해서 이렇게 편지를 보내요~

피자매에 항상 많은 관심을 두고 계시지만 발걸음을 머뭇거리시던 피자매분들도 좋구
항상 다이어트에 치여서 살아가면서도 내가 살을빼는 이유에 대해서
타인의 눈과 자신의 건강사이에서 고민하시는 언니분들도 좋고
에리히 프롬의 정신발달 8단계에서 난 벗어났는데~ㅠㅠ 하면서 좌절하셨던 언니들도

모두모두 모여서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를 읽고 이야기를 해보아용^^ㅎ

그럼 1월 9일 7시 30분에 만나용^^ㅎㅎ

안뇽 피자매아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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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의 병역거부 이유서

병역거부 이유서


군대는 전쟁을 생산하는 기구입니다.

자유인이냐 수인(囚人)이냐?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선택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전지구적 전쟁이 항상 진행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2009년 1월 초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전쟁 중이라는 소식이 들립니다. 우리는 지난 20세기를 전쟁의 세기로 기억합니다. 1,2차 세계대전 이외에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국지적인 전쟁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21세기도 전쟁의 세기로 기억하게 될지 모릅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무역빌딩에 대한 테러공격 이후 미국 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국내외 양심 있는 언론인, 지식인, 문학인들이 이라크에 대한 미국전쟁의 참상을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끔찍한 전쟁입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전쟁에서 적(敵)은 이라크라는 국민국가나 테러행위를 한 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이 전쟁이 ‘악’에 대한 전쟁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악이라니요. 누가, 무엇이 악인가요? 악을 규정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그렇기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 정부가 전쟁을 일으킨 이후 미국 내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람들이나 이슬람인들이 ‘악’으로 규정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악’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 적으로 정의되는 순간 다른 국가와 국민뿐만 아니라 내국민도 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적은 국민국가 안팎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언제라도 국민들이 (정부가 규정한) 적이 될 수 있는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이 전쟁의 당사자입니다. 2003년 한국 정부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미국 정부가 일으킨 전쟁에 국익의 이름으로 파병을 결정했고, 의회에서 이것이 통과되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 앞, 도심에서 연일 집회를 열었지만 정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정부는 고(故) 김선일 씨가 납치되었음에도 파병 결정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국민들을 ‘잠재적 테러행위자들’로 여기며 지하철에서 쓰레기통을 치우고, (도무지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을 신고하라며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습은 미국 정부가 내국민에게 보인 태도와 너무 흡사합니다.
저 또한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었으며, 대학 학생회 집행부로서 전쟁반대 일일휴교 집회를 준비하고 연일 거리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후 한국군은 파병되었습니다. 또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되어 미국 정부의 거짓이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파병에 찬성한 사람들은 사과하지 않았고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분노할 일입니다.
군대는 이러한 전쟁을 준비하는 국가기구입니다. 실제 전쟁이 발생하지 않아도 군대는 전쟁이 발생했다는 가상의 전제 위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훈련을 실행합니다. 그렇기에 군대는 ‘전쟁을 막기 위한 기구’가 아닙니다. 군대는 전쟁을 생산하는 기구입니다. 저는 이러한 군대에 입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쟁의 시대’라는 감옥 속에서 수인(囚人)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절박하고도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전쟁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전쟁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전쟁은 민주주의의 즉각적인 유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5조는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전쟁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전쟁에 참여를 결정한 한국 정부는 모두 헌법을 위반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가피한 최후의 방어가 아닌 전쟁은 모두 침략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전쟁은 ‘예방과 선제 공격’임을 명확히 했기에 더욱더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전쟁이 침략전쟁이 아니라면 무엇이 침략전쟁입니까? 그럼에도 이 위헌 결정에 대한 책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정부는 헌법을 위반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시켰음에도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잡히지 않는다면 한국의 헌법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고 항상 미뤄진 상태일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침략전쟁에 참여했음에도 아무런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의미의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정부의 군대에 입영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선택입니다.


민주주의는 제헌권력입니다.

지난 2004년 8월 26일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위헌제청’의 판결과 2004년 7월 15일 대법원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번 유예되었습니다. 저는 ‘국방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국가주의적 판결에 깊은 상심에 빠졌습니다. 이런 판결이 지속된다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자유는 항상 국가주의적 판단에 의해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헌법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정되어 성문화된 헌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헌법을 만드는 국민들의 행위 아닐까요? 한국의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하여 헌법을 만드는 원천으로서의 권력, 즉 제헌(制憲)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제정․성문화된 헌법은 항상 이 제헌권력에 의해 변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요? 재판부는 헌법 제39조 1항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조항에 근거하여 이 점도 중시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도 국민의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요? 국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방의 의무도 국가도 사라지기 때문에 항상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국민의 의사가 아닌가요? 이것이 민주주의의 원리가 아닌가요?
최근 저는 또 한 번 참담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국방부의 발표입니다. 2008년 12월 24일 국방부는 실질적으로 ‘대체복무제도 백지화’ 발표를 하였습니다. 국방부는 헌법재판소, 대법원, 국가인권위원회의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가 충돌하여 발생하는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권고도 무시한 채 대체복무제도 백지화 발표를 하였습니다. 설문조사 과정을 거친 발표라고 하였지만 최근 언론기사에 의하면, 국방부는 설문조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복무제도는 개헌을 하지 않고서도 추가 입법을 통해서만 도입할 수 있는 제도이며 외국의 다양한 대체복무제도와 그 도입 과정에 관한 사례들이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습니다. 이런 기초적인 제도조차도 한국에서는 도입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아직 한국의 민주주의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한편으로는 오늘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더욱더 많은 고민과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할테지요.

이상이 부모님이 흘리시는 눈물에 제 가슴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아마 이 고통은 지난 수십년 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한 분들과 그들의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그밖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같은 것이겠지요. 부모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수십년 간 쌓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고통들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한 걸음이 민주주의로 가는 즐거운 한 걸음이라고 믿습니다.


2009년 1월 6일 화요일 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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