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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17
    어느 눈이 오던 밤(1)
    ^^림

어느 눈이 오던 밤

오늘 새벽 눈내리는 골목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아련하게 어떤 장면들이 떠올랐다.

 

고3 수능이 끝나고 난 아빠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저녁시간부터 가게가 끝날때까지 카운터를 보는 일이었다.

가게에서 일하는 다른  언니, 오빠들과 마감을 끝내고

지하 가게문을 닫고 올라왔는데, 그때까지 까맣게 모르던 하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가로등불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뽀송뽀송한 눈 속으로

강아지처럼 들떠서 뛰어다니던.....

세상은 고요하고 푸르스름했지만 우리의 웃음소리는 맑게 울렸었지.

 

눈송이를 맞으며 난 무슨생각을 했을까.

그때 같이 눈뭉치를 날리던 언니들은 또 어디서 피곤한 눈두덩이를 쓸어내리고 있을까.

수능 시험은 끝났지만 고상하고 재미있을것 같던 시간들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던 그 시절

그래도 그땐 내리는 눈송이을 보면서 즐거울 수 있었다.

반쯤 정신나간 아이처럼 뛰고 뒹굴수 있었다.

 

 

그때의 언니 오빠들을 생각한다. 26, 27, 30 의 나이를 짊어졌던......

가난한 동네 지하상가에서 지끈거리는 두통, 손님들의 냉대,

내아버지의 명령속에서 언제나 마네킹처럼 딱딱한 표정으로 일하던 그들.....

반나절만 일해도 까맣게 손톱때가 오르지만

그녀들은 꿋꿋히 매니큐어를 바르고 지우기를 반복했지.

그이들은 좀더 편한 일을 하고 싶다고 떠나갔다.

 

모두가 망해 쓰러지던 그 전쟁같던 시절,

어두운 얼굴의 부모님이 , 돈돈돈.....모든게 돈문제로 끝나는 구질구질한 대화들이

얼마나 싫었던지.....

한번 눈이 내려 얼음이 생기면,

겨우내 녹아내리지도 않던, 그 차갑고 어두운 동네.

 

그래도 그 눈오는 날에는 어두운 골목도 하얗게 눈으로 빛나고

언니들의 어두운 얼굴에도 장난기 어린 소녀가 돌아와 꺄르르 웃을 수 있었다.

  

오늘 새벽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그 언니오빠들은 이 시간

아무 기억없이 따뜻한 단잠을 자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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