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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성희롱으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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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으로 끝나지 않는다!

 

 

_바람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한국여성민우회 노동권팀

 


2012년 새로 부임한 팀장은 1년이 넘게 상습적이고 지속적인 성희롱을 반복하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피해자는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다. 사직 사실을 담당임원에게 전하자 임원은 사직 이유를 물었다. 결국 피해자는 성희롱 사실을 담당임원에게 말했고, 관련하여 담당임원은 “성희롱이 있었다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그만두어야 한다며 사직은 보류하자”며 피해자를 도와줄 것처럼 말하였다. 도움을 줄 것처럼 보였던 담당임원은 태도를 바꾸어 피해자에게 “일을 가장 깔끔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하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피해자를 따돌렸다. 담당임원을 신뢰하지 못한 피해자는 성희롱 사실을 공식적으로 신고하였다. 

 

하지만 성희롱 신고와 조사과정에서 가해자와 인사팀 직원들은 ‘여자가 먼저 유혹했다.’, ‘만남에 동의해 놓고, 이제 와서 무고한 사람을 성희롱으로 신고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허위소문 유포, 조직적 따돌림, 사직종용 등 성희롱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 불이익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결국 조직 안에서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피해자는 법적 절차를 밟기 시작하였다.1 하지만 회사는 이때부터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더욱 가중하게 행하였다. 동료를 협박하여 진술서를 징구하였다는 명목으로 징계를 내리고, 그동안 해왔던 핵심 업무를 배제하고 공통 업무(비품 구입 등)만을 지시하고, 최고등급의 인사고과를 받던 피해자에게 최저등급의 인사고과를 내리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징계 부당함을 결정하자 피해자에게 ‘직무정지와 대기발령’을 내렸다. 이러한 불이익 조치는 피해자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에게 피해자와 ‘어울리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승진 대상자인 조력자의 승진 심사 기회를 박탈하고, 조력자에게도 최하 등급의 인사고과를 주고, 근무태만이라는 꼬리표를 던져 1주 정직이라는 징계를 내리고,2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조력자에 대한 징계 처분 또한 정당성이 없다고 결정하자 역시 ‘직무정지와 대기발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에 대해 침묵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칼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훼손된 본인의 명예를 복원하기 위해서 피해자와 조력자는 ‘불이익 조치’라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대응할 것을,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싸움을 진행하였다. 2013년 6월 회사와 성희롱 가해자를 대상으로 시작한 손해배상청구는 2014년 12월에 1심 재판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가해자의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을 명령하였지만, 사측의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 조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판결하였다. 피해자와 조력자는 또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고용평등법) 제14조2항 ‘피해 노동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노동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을 위반으로 르노삼성자동차를 여성/노동/인권단체와 함께 2014년 2월 고용노동부에 진정․고발하였다. 하지만 1년이 넘은 지금 고용노동부는 계속해서 ‘조사 중’이라는 답변만을 할 뿐이다. 2012년 성희롱 발생 이후 2015년 현재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4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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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 이후, 불이익 조치의 영향력 


이와 같은 직장 내 성희롱과 그 이후에 발생하는 불이익 조치는 성희롱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를 목격하는 동료, 결과적으로는 회사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회사가 피해자에게 가하는 ‘공격’을 목격하며 ‘나에게도 불똥이 떨어진다.’ 두려움으로 침묵하고 부당함에 대해 올곧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상태의 지속은 방관자 스트레스를 낳게 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인권유린을 묵인한 죄책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른 핑계를 믿는다. ‘피해자들이 결격 사유가 있는 인물이며, 다른 장애 요인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야. 그러니 문제는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저기 있었어.’라고 가해자들이 본질과 다른 사건을 만들어 내면 가해자들과 함께 구성원들은 자신들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면죄 카르텔을 형성한다.3 피해자를 향한 ‘공격’의 화살은 동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과 동시에 회사에게 파급력은 분명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을 방관하고, 불이익 조치를 반복하게 되는 경우 사측은 고용환경의 악화로 생산성이 저하되고, 소송비용, 인력 소모 등으로 비용부담이 가중되며, 이미지 손상 등으로 경쟁력이 저하되는 영향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력과 손해가 있음에도 도대체 왜 성희롱과 불이익 조치는 반복되는 것일까?

 

불이익 조치의 이유는?


사측은 가시적인 형태이든 비가시적인 형태로 성희롱 문제제기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반복한다.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 조치를 견디지 못해 결국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처럼 불이익 조치의 종착지는 피해자 ‘퇴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불이익 조치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조직 밖으로 퇴출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작동한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조직에서 퇴출시킨다는 것은 문제 제기자를 조직에서 도려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희롱 피해자의 문제제기는 조직의 문화와 관습에 균열을 내는 행위로 기업의 통제 권한과 지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강자들은 조직을 관리하고 조직을 책임진다는 미명하에 인권침해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과 조직 모두가 무너진다는 논리를 편다.3 조력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 또한 조직의 문화와 위계를 지키기 위한 일환으로 작동하는 것과 동시에 조직의 권한을 위협하는 자에 대한 공포 모델을 제시하여 구성원에게 두려움을 내재시켜 저항을 잠재우고자 하는 것이다.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과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 또한 이러한 명목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르노삼성자동차를 비롯한 직장 내 성희롱 불이익 조치를 반복하고 있는 사측의 행보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위계와 권위의 무게 속에서 다양성과 변화의 가능성이 묵살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이런 문화와 관습을 지키려고 하는가?’ 하지만 이에 대해 ‘누가 기득권을 가지고 조직을 이끌어 왔는가?’라고 재 질문을 하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남성 중심적 위계질서가 구축된 조직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성희롱’이 작동하고, 이에 대해 피해자와 조력자가 ‘문제제기’를 하고, 사측은 조직문화의 균열을 막기 위해 ‘불이익조치‘를 작동시킨다. 

 

법과 현실의 연결 작용은 불이익조치를 단절시킬 수 있다!


불이익조치와 관련하여 미국 시민권법(Civil Rights Act)에서는 노동자가 차별행위에 반대하거나 차별 관련 구제절차에 관여하였음을 이유로 보복행위(retaliation)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노동자가 보복적 의도로 불이익 조치 겪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더라도, 직장에서 겪은 차별에 대해 노동자가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거나 해당 기관에 구제절차를 요청한 사실을 안 ‘직후에’ 사측이 불이익조치를 하였다면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보고, ‘성희롱 신고가 없었더라면 피해자에 대한 징계조치를 하지 않았을 것’(연방대법원 ‘but-for causation’, 409U.S.228)을 사측이 직접 증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 법은 사측의 위법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고용차별 관련 진정 절차에 참여 중인 당사자 및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행위를 한 사람과 긴밀한 관계(close association)를 가진 사람도 보호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한 영국 평등법에서는 ‘괴롭힘’(harassmant)과 ‘불이익조치’(victmization)는 차별에 관련하여 ‘기타 금지된 행위’(other prohibited conduct)로 분류하고 있다. 이렇게 불이익조치가 독립적인 금지행위로 규정되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영국은 불이익조치를 ①평등법에 근거한 소송을 제기하거나 ②평등법에 근거한 소송과 관련된 증거 또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③평등법과 관련한 목적을 위한 기타행위와 ④가해자가 평등법을 위반하였다고 혐의를 제기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또는 그런 행위를 했다거나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누군가에게 손해(detriment)를 입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불이익조치에 대해 법적으로 정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판결이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논쟁이 이어지는 등 법과 현실의 연결 작용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어떠할까?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불이익조치에 대한 법적인 정의는 존재하지만 법을 근거로 현실을 수정하기 위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사례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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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2항에서는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한다. 사업주가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 만 원 이하의 벌금’을 처하도록 되어 있다. 현행 법 체계에서는 성희롱 사건 이후 문제제기를 한 노동자 당사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이 법에 근거하여 현재까지 불이익 조치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어느 정도 되는 것일까? 소규모영세사업장에서 사업주의 성희롱이 있었고, 이에 대해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자 피해자를 해고한 사례가 있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피해자를 바로 해고해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했다"면서 벌금 50만원을 선고하였다. 현재까지 불이익 조치로 결정된 사안은 이것이 유일한 사안이다. 또한 이 사례의 경우는 문제제기 이후 피해자를 즉각적인 해고라는 불이익 조치를 행한 사례로서 일정정도 행위의 명확성이 드러났다. 하지만 불이익 조치는 채용탈락, 감봉, 승진탈락, 전직, 정직, 휴직, 해고 등과 같이 채용 또는 근로조건을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하는 경우 외에도 조직적인 따돌림, 업무 미 지시 혹은 업무과다 부여, 인격적 무시 등 사무실에 나오기 싫게 분위기를 형성하여 노동자가 안전하고 쾌적하게 일할 권리를 빼앗는 비가시적 형태의 불이익 조치도 만연하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 조치가 현실 세계에서는 작동하고 있지만 현재 법은 해고와 같은 명확한 고용상의 불이익에 대해서만 판단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 가지 형태로 발생하는 불이익 조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이익조치에 대한 해석을 확장하고 법적 판단 시 전후맥락까지 제대로 짚어내는 해석을 하는 등의 실질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이에 불이익 조치 해석의 확장을 위한 단계적 절차로 법체계에서 불이익 조치를 유형화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이는 불리한 조치에 대한 현실에 부합하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불이익 조치에 대한 다양한 법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여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놓여있는 현실을 바꿀 수 있게도 할 것이다.   

 

불이익조치에 대해 법적 정의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판결이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논쟁이 이어지게 하는 것은 현실을 수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진정과 고소 등 끊임없는 법적 대응활동을 통해 사회적 판단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두 여성노동자의 행보는 우리가 마땅히 응원해야 하는 것이다. 쉽게 끝나지 않는 싸움 하지만 곧 끝날 싸움의 길에 있는 두 사람과 우리는 함께 연대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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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해자는 2013년 6월 가해자, 담당임원, 인사팀장을 대상으로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 당시 조력자가 근무를 하고 있던 부서는 유연근무제를 실시하는 부서로서 근태기록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력자에게만 자의적인 기준으로 군로시간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조사하여 징계를 받도록 하였다.텍스트로 돌아가기
  3. [미디어스 오피니언] 르노삼성, 나빴다고 사과하면 돼! [지금 인권하고 계세요?] 인권침해자로 찍히기 싫은 그 마음이야말로 위험하다 (2014년, 박진/다산인권센터 활동가)텍스트로 돌아가기
  4. [미디어스 오피니언] 르노삼성, 나빴다고 사과하면 돼! [지금 인권하고 계세요?] 인권침해자로 찍히기 싫은 그 마음이야말로 위험하다 (2014년, 박진/다산인권센터 활동가)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