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성격이 까칠해지고 있는 자신을 의식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줄어드는 머리카락을 걱정하는 것처럼 자신이 점점 못난 인간이 되어가는 걸 걱정하는 건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니다.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소리에 다름 아닌가! 옹졸하고 고집쟁이 늙은이, 마치 스크루지 영감처럼 늙어가고 있다는 우려는 단지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혼자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물론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혼자 사는 것 만큼 편한 일이 어디 있더냐? 나 만큼 혼자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다들 그 점은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책갈피 사이에서 바삭바삭 말라버린 나뭇잎처럼 윤기도 없고 생기도 없는 그런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2월 초 성판악에서 정상으로 오르면서 나는 다른 동료들을 제치고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과 체력을 부러워했지만 전날부터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는 걸로 보아 이번 제주도 여행은 꽝이라고 생각하던 터였는데 말이다. 견딜 수 없는 열망도 없이 미칠듯이 소리칠 수 있는 열정도 없이, 미련을 버리듯 묵은 찌꺼기같은 감정을 탈탈 털면서 자조하듯, 내리는 눈을 한탄하며 '내가 이 망할놈의 산에 올라가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앞서 가는 사람들을 헤치며 올랐던 것이다.
그 때 내 머리에 온다 리쿠의 소설이 떠올랐다. 터무니없이, 논리적인 맥락도 없이 나는 다루마 산을 오르는 야스히코가 생각났던 것이다. 나는 두고 온 아내도 없는데, 야스히코처럼 함께 살다 떠난 파트너는 이미 오래 전 떠나고 기억도 사라지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온다 리쿠의 소설이 강렬하게 떠 올랐던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외로워서였을까, 여전히 혼자라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결국 정상을 포기하고 사라오름으로 발길을 돌려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는 허허하게 눈발만 날리는 쓸쓸한 풍경이었다. 우연인지 원래 그곳에 사는 놈들인지 까마귀 두 마리가 눈 속을 날아 오르더니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내가 떠 올렸던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산을 뒤덮은 억새 잎사귀가 바람에 사각거리지만 나는 오로지 두고 온 아내 생각뿐.
재미없고 꽉 막힌 사람. 줄곧 그렇게 믿었던 아버지의 유품에서 두고두고 읽은 태가 나는 고전 가요집과 시집을 발견하고 야스히코는 놀랐다. 특히 <만요슈>가 너덜너덜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 노래에는 밑줄까지 여러 줄 그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았던 파트너가 나가버려, 기분전환 삼아 집 안을 청소하면서 아버지 책에 쌓인 먼지를 털었다. 그것이 20년 만에 이 산을 올라볼 생각이 든 계기일지도 모른다.
나도 야스히코의 아버지처럼 이 소설의 한 구절에 진하게 밑줄을 그은 적이 있다. 좀체 소설에는 밑줄을 긋지 않는데도 말이다.
"숨이 막힐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