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 글을 찾아 읽었다.
일상의 상투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새로움이란 그저 또 다른 진부한 일상의 일면. 이런 일상에서 사람들은"규정받지" 않을 권리를 포기할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고 또 온갖 규정을 요구한다.

“여기는 인생이 뭐 딱 정해져 있잖아요. 뭐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 고등학교 졸업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 얻어야 하고. 또 환경이 서로 잘 맞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아이 낳고 집 사고. 노후를 맞이하는 게, 야 인생이 이렇게 정해져 있구나. 깜짝 놀랐어요. 인생을 어떻게 정해서 살지? 근데 그대로도 안되잖아요. … 특히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주어진 거에 쪼들려 사는 게 안타까운 거예요. 자기 잠재력이나 하고 싶은 거 못하고, 부모님의 기대나 가치 또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나 기업이 요구하는 것에 맞게끔 자기를 만들어야 하니까. 불쌍해요 사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511242103125#csidxcb1c978cfac913db7cd006bff64fe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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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3 20:24 2019/04/23 20:24

[시론]히틀러가 정신질환자일 가능성도 생각해보자

박경신 | 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남역 화장실 여성살인 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범죄인지 정신질환 범죄인지 또는 ‘묻지마 폭행’인지 논란이 뜨겁다고?

‘논란이 뜨겁다’고 보도하는 것 자체가 여성혐오이다. 일부 종편과 일베 말고 여성혐오 범죄임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그런 논란과 무관하게 첫째, 무고하게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있고 둘째, 아동학대의 피해자들이 그렇듯이 신체적 약자인 여성은 항상 이유 없는 폭행 대상이 쉽게 될 수 있다는 상황에 통감하고 있다. 또 상당수 사람들은 한국의 성 차별적 상황에서 여성은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남성들의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참고로 ‘세계여성포럼’이 2015년 발표한 ‘성(性) 격차’ 세계 랭킹에서 한국은 중국이나 캄보디아보다도 낮았다.) 내가 보기에는 이번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여성차별철폐를 위해 더욱 단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논란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면서 극소수 여성혐오자(여혐자)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다.

바로 작년 6월에 한 백인청년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시의 흑인교회에 들어가서 총기 난사를 했을 때 어느 누구도 그것이 증오범죄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모두가 미국사회에 인종차별·혐오의 문제가 있고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미친놈’이었기에 그런 차별적 이념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음에도 동의했다. 무슬림청년이었다면 ‘테러리즘’으로 규정되어 훨씬 더 많은 수사 자원이 투입되었을 거라는 비판이 있었을 뿐이다.

혐오는 두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당연히 두뇌에 문제가 생기면 혐오는 더 증폭될 수 있다. 이미 10년 넘게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인종차별 및 혐오가 뇌의 특정 부분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음이 밝혀진 바 있다. 뇌의 관련 부분에 문제가 생겼는데 차별이나 혐오적 성향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히틀러의 정신질환 가능성에 대해서 밤을 새우고 토론해도 히틀러가 저지른 범죄가 인종혐오 범죄임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강남역 사건이 ‘묻지마’ 폭행임을 주장하는 분들이 여성혐오 범죄임을 배제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면 이를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번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만을 보면 여성 중에서 무작위로 상대를 선택한 묻지마 범죄임도 명백하다. 헌법의 평등원칙 내용은 자의적인 차별의 금지이다. 그렇다면 의도적인 혐오·차별과 자의적인 혐오·차별은 서로 반대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 사람을 혐오하는 것을 ‘자의적인 혐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데도 어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의도적인 차별’이라고 생각하고 금기시해왔다. 이번 사건도 ‘묻지마’이기 때문에, 즉 피해여성을 공격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혐오범죄임이 명백한 것이다. 살인의 동기를 파보면 아무런 이유 없는 여성에 대한 혐오만 똘똘 뭉쳐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 사건을 정신질환 범죄로 구분하면서 구태여 여성혐오 범죄가 아님을 강조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하지만 면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강간 또는 아동학대는 틀림없이 신체적 약자를 향한 혐오범죄이고 이 사건도 마찬가지이고 경찰로부터 더 인정받을 것도 없다. 2012년 10월 여성 12명을 연거푸 성폭행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성남 발바리 사건’의 범인 B씨(47)도 2005년 특수강간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었으나, 당시 정신병(심신미약)을 인정받아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났었다. 경찰 발표 때문에 싸우지 말고 그냥 대범하게 해석해주자. 강남역 사건에서도 ‘정신질환이니 무죄’라는 항변이 나올 수 있으니 수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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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4 20:44 2016/06/04 20:44

멋진 글이다. 경향신문을 읽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대근과 김철웅 칼럼은 언제나 읽을만 하다. 민주당의 무기력과 무능력은 태생적으로 기회주의적 속성 탓이다. 기회주의자가 되기는 싶다. 그러나 한번 기회주의자는 영원한 기회주의자로 살아남는다. 그 근성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이대근이 민주당을 질타하는 그 애정은 어떤 점에서 애처롭게 보인다. 민주당이 산산이 부서져 한알의 밀알이 될지 썩어 문드러질지는 알아서 판단하겠지만 나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한국 민주주의를 갉아 먹는 벌레처럼 기생할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대근칼럼]민주당, 박근혜 말고 안철수와 싸워라
이대근 논설위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012047095&code=990399&s_code=ao168


민주당은 박근혜 정권이라는 폭주 기관차를 멈춰 세울 능력이 없다. 박근혜는 이명박이 아니다. 불리하다고 속도를 늦추지도 방향을 바꾸지도 않는다. 여론의 힘에 위축되지도 않는다. 박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다짐한 신년사에서도 그걸 읽을 수 있다. 새누리당은 이념·노선이 아닌 기득권의 결집체다. 기득권을 분배할 능력이 남아 있는 한 정권에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똘똘 뭉칠 수 있다. 고뇌를 모르는 단단한 돌멩이라고 할까. 야당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민주당이 박근혜 정권과의 싸움을 소홀히 했다는 말이 아니다. 민주당, 열심히 했다. 바로 이게 문제다. 아무리 강도 높은 투쟁을 해도 국정원·검찰을 제대로 개혁하거나, 복지 후퇴·공안통치·노조 탄압을 바로잡을 수 없다. 최대의 요구는 항상 최소의 결과로 끝난다. 힘의 불균형이 낮은 수준의 타협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걸 두고 민주당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했다고 평가한다면 쑥스러운 일이다. ‘폭주를 막지 않고 뭐하고 있느냐’는 시민들의 호통소리가 날 때마다 민주당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쁜 한 해를 보냈지만 한 번도 박수를 받지 못했다. 서운해할 것 없다. 구조대원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구조대원과 결혼하지는 않는다. 아직 민주당은 아쉬울 때 잠시 빌려 쓰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의 폭주가 아니더라도 민주당이 박근혜 정권을 버거워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다. 국정원 개혁의 예를 들어보자. 국정원 개혁은 새누리당과 갈등을 빚는 현안이기 전에 민주당 자신의 문제였다. 노무현 정권 때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으로 국정원 개혁 요구가 높아지자 열린우리당은 해외정보처를 신설하고 국내 정보는 분리해 총리실로 이전하고 수사권은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개혁을 중단하고 오히려 국내 정보 수집 강화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개혁했다면 대선개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나는 못했지만 너는 해야 한다’며 근본개혁을 요구하는 게 말로는 할 수 있겠지만 실행될 수는 없는 일이다.

철도 분리, 제주 해군기지,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새누리당과 맞선 주요 쟁점들도 본래 민주당 정책이었다. 반대니 재검토니 하며 새누리당을 공격해봤자 민주당 자신의 상처에 소금 뿌리고 과거 실패만 부각시킬 뿐이다. 이렇게 민주당의 과거는 새누리당의 오늘과 겹쳐진다. 그 때문에 새누리당은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민주당의 얼굴로 민주당과 상대할 수 있다. 새누리당 상대가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안철수 신당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안철수가 신당 추진기구를 띄우자마자 민주당은 휘청했다. 신당 추진기구가 무슨 비전을 제시하거나 제대로 세력을 갖추고 등장해서가 아니다. 뿌리 뽑힌 민주당이 바람도 없는데 저 혼자 흔들린 것이다. 갈대도 이렇게 흔들리지 않는다. 지레 놀란 민주당, 안철수를 공격해보지만 안철수를 때릴수록 낡은 것과 새것의 대결 구도만 부각된다.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의 잃어버린 반쪽, 민주당의 그림자다. 밟는다고 밟히지 않는다.

앞에서는 박근혜 정권이 산악처럼 버티고 아래에서는 민주당의 과거가 발목을 잡고 뒤에서는 안철수 신당이 찌르고 있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 소리가 들린다. 당장 이 3중의 포위망을 벗어나야 한다. 첫째, ‘과거’ 탈출이다. 집권 때와 야당 때 말을 바꾸고서는 다시 잘해보겠다는 건 아무 소용없다. 그 말 아무도 안 믿는다. 문재인처럼 변명하기보다 고백과 반성으로 털어내야 한다. 둘째, ‘반대하는 정당’ 탈피다. 무엇을 반대한다는 의사 표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하겠다는 실천의지로 지지를 동원해야 한다. 그 방향이 맞든 그르든 실체가 있든 없든 박근혜 정권은 경제부흥을 한다고, 안철수는 새 정치 하겠다고 한다. 민주당도 이젠 뭔가 하겠다는 게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때 민영화·대운하·세종시 수정을 막는, 뛰어난 ‘반MB 업적’이 있었는데 왜 집권에 실패했겠는가. 박근혜 정권 쫓다가 또 날이 샌다.

셋째, 안철수 신당과의 정면승부다. ‘과거’와 신당 모두 민주당의 부산물이자 민주당의 일부다. 말하자면 그것들과의 싸움은 민주당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건 자기를 바꾸는 문제다. 그래서 더 어렵다. 박근혜 정권과 싸우는 건 쉽다. 현재의 민주당으로도 상대할 수 있고 박근혜 정권에 밀려도 제1야당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신당과의 대결은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든가, 사라지든가 양자택일의 생사를 건 승부다. 여기에서 이겨야 한다. 그게 박근혜 정권과의 대결보다 더 중요하고 더 우선한다. 힘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박근혜 정권이 강해 보이는 건 민주당이 약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안철수와의 싸움에서 강해지면 박근혜 정권과 다시 마주 설 기회도 올 것이다.

구조대원이 자기 도움을 받은 이와 결혼할 수 있을지는 구조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결혼할 만큼 매력적인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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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2 22:12 2014/01/02 22:12

올해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도로명 주소에 대해 "‘기억의 주름’, 3차원적 사고와 상상, 고향과 공동체의 경험 또한 잃는다"는 이도흠 선생님의 견해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아마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에 대한 인식의 시선을 가진 이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곳뿐만 아니라 이미 익숙한 곳, 이미 어떤 이름을 가진 것에조차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길 즐긴다. 그렇게 낯설고 이질적인 것을 익숙한 것으로 자기화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분명 우리가 생존을 위해 자연을 인간화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주소지를 옮기면서 생판 처음듣는 낯선 주소를 주민등록증에 옮겼다. 낯선 지역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소명이 낯설기 그지 없었다. 무슨구 무슨동 몇 번지가 아니라 무슨동을 무슨'로'로 변경한 것일뿐인데 마치 다른 하늘 아래 다른 땅처럼 느꼈던 것이다. 주소를 변경하면 공식 문서와 공식 무슨무슨 등 온갖 것들을 다 바꿔야 할텐데 이거 돈이 엄청 들겠네, 이런 생각을 하며 멀쩡한 보도에 블록 공사 새로 하는 행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피같은 세금 낭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장일단이 있는 법. 이런 것도 일종의 부의 재분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근로제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부를 재분배할 수 있고 노동자들에게 소득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지만 한국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는 존재들이니 그런 것까지 기대할 수야 없지 않은가.

나는 지리산 골짜기 시골에서 태어나 10살까지 그곳에서 자랐는데 마을 이름이 "새터"부락이다. 새터라는 이름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우리 마을 뒤에는 "구사"부락이 있었고, 바로 앞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최근 지리산 둘레길로 유명해진 "수철"부락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 혹시 해서 다음 지도를 찾아보니 도로명이 "친환경로"라고 되어있다. 이런 걸 깬다고 하는 걸까?

마을 이름이 "새터"가 된 사연을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알았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지리산은 빨치산들의 무대였고 당연히 지리산 골짜기 마을은 빨치산의 수중에 있었고 마을 사람들 중에도 빨치산과 그 가족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부에서 지리산 골짜기 마을 소개령이 내려졌고 마을 사람들은 원래 살던 곳에서 좀 더 아래로 내려왔단다. 그래서 이름이 "새터"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 정부가 마련해준 새로운 터가 아마도 빨치산과 토벌대의 경계지점이었던 모양이다. 이래저래 한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20대 청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 긴 사연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필적하련만.


 

[기고]도로명 주소로 잃어버리는 것들
이도흠 | 한양대 교수·국문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311948255&code=990304
새해 첫 아침의 동살은 희붐한데, 이제 5000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마을이름을 잃게 되었다. 우리의 마을과 이름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한반도 지형은 대부분이 노년기의 암반이다. 30억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물과 바람이 빚고 다듬으며 더 침식된 곳은 분지를 이루고, 내와 강이 흐르면서 퇴적토를 쌓아 숲과 들을 만들었다. 우리의 조상들이 신석기나 청동기부터 분지의 구릉 지역에 삼삼오오 모여 터를 짓고 밭을 갈고 논을 일구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들과 논밭 사이로 냇물이 감돌아 흐르는 언덕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품새가 한국의 전형적인 마을 풍경이다. 이들은 함께 모여 보이는 것과 경험한 것을 종합하여 최상의 이름을 마을에 부여하였고, 그곳에서 산과 물로 막힌 채 오랫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며 유전자와 피와 마음을 섞었다. 언덕에 온갖 꽃들이 흐드러져 피기에 꽃매, 솔숲 아래에 자리하여 솔아랫말, 냇물이 둥글게 돌아 흘러 물돌이마을, 논이 많은 골짜기여서 논실, 큰 비석이 있어서 선돌마을, 왕실에 필요한 도자기를 만들어 사기마을 등으로 지었다. 마을이름은 공동의 역사적, 사회적 유산인 것이다.

신라의 신문왕은 685년에 이 마을을 450개의 군현(郡縣)으로 묶고 그 위에 9주5소경을 두었으며, 고려의 현종은 1018년에 5도(道)와 양계(兩界)로, 조선의 태종은 1413년에 8도(道)로 체계화하였다. 일제는 1918년에 토지를 수탈하고 조세를 징수하기 위하여 지번 주소를 도입하였다.

2014년, 이제 오늘부터 도로명주소를 써야 한다. 신자유주의적이고 사대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근대화와 도시화로 체계적인 순차성이 많이 훼손된 지번주소를 없앤 것은 잘한 일이다. 지금은 혼란스럽지만 과도기를 지나면 더 편리하리란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4만여개에 이르는 마을이름이 사라지면, 그에 어린 ‘기억의 주름’, 3차원적 사고와 상상, 고향과 공동체의 경험 또한 잃는다. 숱한 도로명과 숫자는 텅 빈 기표다. 오늘 이후 새로 태어나는 아기는 마을이 아닌 ‘길에서 난 아이’가 되어 거리의 기억과 상상을 할 것이다.

신라 때부터 일제에 이르기까지 마을이름은 크게 변동이 없었다. 일제도 도와 군과 이(里)로 이어지는 마을이름 끝에 지번만 붙인 것이다. 신라 경덕왕 때부터 한자화하여, 꽃매를 화매(花梅), 솔아랫말을 송하리(松下里), 물돌이마을을 하회리(河回里), 선돌마을을 입석리(立石里), 논실을 답곡(畓谷)으로 바꾸기도 했지만, 상당수가 아름다운 우리말을 유지했으며, 한자로 바뀌었어도 이름에 어린 기억은 남아 있었다.

마을이름은 그 자체로 ‘기억의 주름’이다. 그 주름을 펼치면 무진장의 기억이 샘솟는다. 필자가 작년까지 스무 해 남짓 살던 곳은 수촌(秀村)마을, 곧 뺌말이다. 산수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뺑쑥’이란 것이 자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 뺌말에 두레공동체가 있었으며,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산신당에 올라 산신제를 지내고 명절에는 윷놀이 대회를 연다.

도로는 선이자 2차원이다. 거기에 3차원적 상상과 삶은 자리하기 어렵다. 중국, 페르시아와 로마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로는 소통과 교역, 자연과 타자에 대한 침략과 개발과 폭력의 산물이다. 미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일제는 신작로(新作路)를 통해 쌀, 광물, 소녀와 청년을 수탈하였다. 산업화 이후 마을을 잇는 도로로 인하여 잘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공동체의 유대와 가치를 시나브로 상실하였다.

대안은 간단하다. 2차원(도로명)과 3차원(마을이름)을 종합하고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해 텅 빈 기표에 맥락을 부여하면 된다. 각 지자체는 잘 지은 것은 남기되 졸속으로 지은 도로명은 폐기하고, 지역주민이 향토학자와 마을 어른들의 정보를 종합하여 역사성, 사회성, 지역성을 이름에 담을 수 있도록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다시 정하자. 정부는 도로명 뒤에 마을이름을 표기하여 도로명의 무의미하고 사대적이며 2차원적인 속성을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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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1 17:32 2014/01/01 17:32

정의구현사제단

좋은글 2013/11/23 15:49

불교를 믿음으로 접하고 난 후 나는 기독교와 카톨릭을 종교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여적]정의구현사제단 
양권모 논설위원
 
유신독재의 사슬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던 1974년 9월26일 명동성당.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로 시작하는 ‘제1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민주제도는 정치 질서에 있어서 국가 공동체가 그 본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정치 제도임을 우리는 믿는다. 교회는 이와 같은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 그의 생존권리, 기본권을 선포하고 일깨우고 수호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 기본권이 짓밟히고 침해당할 때면, 언제 어디서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누구이든 그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하면서 유린당한 그의 권리를 회복해 주기 위하여, 그를 거슬러 항변하고 저항하고 투쟁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을 내건 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화를 향한 그 지난하고도 혹독한 도정에서 함께했다. 늘 약하고 억눌린 자의 편에 서서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인혁당 사법살인, 김지하 양심선언, 3·1명동선언, 오원춘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광주 5·18민주항쟁,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 등. 사제단은 민주가 짓밟히고 정의가 유린될 때마다 온몸으로 독재에 맞섰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는 고단한 이들의 등불이 되었다.

군사독재의 마지막 발악이 피바람을 일으키던 1987년 5월17일 명동성당.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목숨을 걸고 사제의 양심으로 폭로한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은 군부독재의 심장을 쏘는 탄환이 되었고, 불붙은 6월항쟁으로 이 땅에 ‘민주화’가 이뤄졌다.

그리고 2013년, 사제단이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천주교 시국선언이 나왔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외면과 회피로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민주주의” 때문이다. 급기야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이 어제 시국미사를 통해 국가기관 대선개입을 규탄하고 박 대통령 사퇴를 촉구했다. 대통령 사퇴 요구의 ‘적절성’을 두고는 시비와 논란이 많을 터이다. 다만 ‘박정희 독재’의 총칼에 맞서 민주화의 새벽을 연 사제단이 다시 민주주의를 갈구하며 기도하고 시국선언을 해야 하는 현실. ‘박근혜 시대’의 질곡을 이만큼 함축해서 보여주는 것도 없으리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222055195&code=9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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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3 15:49 2013/11/23 15:49

밤샘노동, 야근, 철야. 겨울이었을 것이다. 아마 오늘같은 1월 1일은 아니었지만 신년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작업실 문을 열고 나오니 공장 마당이 온통 하얗게 서리가 피어있었다. 공장 담벼락 너머 길거리에는 옆 공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거리는 아직 푸른 빛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풍경과 그 순간의 느낌을 잊지 않고 있다. 스무살. 공장에 취직하고 처음으로 철야를 했다. 그 전에는 수도 없이 야근을 많이 했지만 철야는 처음이었다. 피곤하기는 했지만 첫 철야여서 그런지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새벽 찬기운을 맞으니 뿌듯하기도 했다.

 

아침에 잠시 집에가서 씻고 밥을 먹고 다시 공장으로 출근했다. 그러나 이 후 일주일에 한 번은 밤샘을 했고 나는 그 고통스러운 밤들의 공포를 잊을 수 없다. 납땜을 하다 졸면 손가락과 손등에 화상을 입는다. 장갑을 껴도 뜨거운 납이 목장갑을 뚫고 손등으로 흘러 들어온다.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쏟아지는 잠을 참는 것이다. 쏟아지는 잠. 귀청을 두드리는 디스코 음악. 결코 되돌리고 싶지 않은 그런 시절이 있었다.
 

 

[경향시평]밤샘노동, 새해엔 추억이 되길

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경향신문, 2013. 1. 1. 

 

“섣달그믐에 밤을 새지 않으면 눈썹이 하얗게 세어버린단다.” 어릴 적 어르신들 속임수에 뜬눈으로 지새다 잠든 탓에 새해 아침은 늦잠 자기 일쑤였다. 1년에 하루뿐인데 눈꺼풀은 왜 그리 무거운지…. 그래도 새해 소망을 새기며 보내던 ‘밤샘’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중·고교 시절 시험 벼락치기 하느라 밤을 새워보기도 했지만, 사회에 나와 잠시 공장 생활을 할 때만큼 밤이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1주일 주기로 낮과 밤이 바뀌니 몸의 리듬이 깨지고, 밤샘노동을 할 때마다 집중도는 더 떨어졌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 제조업 노동자들 대부분이 인생의 절반을 밤샘노동으로 보낸다. 2007년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야간근무를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기도 했다. 밤샘노동과 같은 2급 발암물질에는 납, 자외선, 니트로벤젠, 최루액, 다이옥신, 디클로로메탄 등이 있다.

 

야간 교대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수명이 주간근무만 하는 이들에 비해 13년 짧다는 독일 수면학회의 연구결과도 잘 알려져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평균수명은 84.0세로 세계 8위인 반면 한국 남성은 26위인 77.3세다. 그렇다면 밤샘노동을 하는 제조업 남성 노동자들의 수명은 77세보다 13년 짧은 64세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가 운이 좋아 정규직으로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퇴직 후 4~5년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셈법이 된다. 죽어라 일해서 부어놓은 국민연금조차 몇 달 타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료끼리 퇴직 후 5년밖에 못 산다는 말을 장난처럼 해요. 웃으면서 말해도 속으론 얼마나 무섭겠어요.”

 

2013년은 우리 사회에서 밤샘노동을 없애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해이다. 1월7일부터 2주간 시범실시를 거쳐, 3월4일부터 현대차와 기아차에서 주간연속 2교대가 본격 실시된다. 1조는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3시40분에 2조와 교대하고, 2조는 잔업 1시간을 더해 새벽 1시30분에 일을 마친다. 일찍 퇴근해 늘어나는 여가시간만 생각해도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노동시간이 단축될 경우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신규 인력충원이 필수적이다. 제조업에서 잔업·특근과 심야노동만 없애도 수십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고용노동부도 하는 얘기다. 노동강도가 강화되면 심야노동 폐지의 효과도, 일자리 창출도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노동강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엄청난 노동강도와 잔업·특근에 시달리는 쌍용차는 근무형태만 변경해도, 무급휴직자는 물론이고 정리해고자의 복직까지 꿈꿔볼 수 있는 상황 아닌가.

 

아울러 잔업·특근과 심야노동의 원인이었던 ‘생활임금 보장’ 문제도 중요하다. 휴일과 야간노동으로 부족한 임금을 벌충해야 했기 때문인데, 세계적으로도 형편없는 저임금인 ‘기본급’이 대폭 인상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이 곧바로 ‘최저임금’ 생활로의 직행을 의미하는 사내하청과 비정규직의 임금 인상이 수반되어야만 전체 노동자의 생활수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GM 노사 역시 2014년 1월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는데, 이는 최근 GM이 차세대 크루즈 생산을 이전하는 등 본격적인 물량 경쟁을 시작한 상황에서, 주간연속 2교대 실시는 한국GM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방어막이 되어줄 것이다. 완성차가 선두에 서게 되면, 지난해 금속노조 중앙교섭 합의에 따라 2014년 3월 말까지 1차 협력사부터 순차적으로 교대제 변경이 이뤄지게 된다.

 

대선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실의에 빠져 있다. 목숨을 끊는 노동자들도 생겼다. 정권과 자본의 책임 못지않게 민주노조운동이 희망과 전망을 주지 못한 탓도 크다. 정권교체나 대통령 당선인에게 뭘 기대하기보다, 심야노동 폐지를 향한 거대한 물줄기를 만드는 데에서 스스로 희망을 만들 때이다. 올해가 절호의 기회 아닌가. 섣달그믐 밤샘처럼, 심야노동을 과거의 추억처럼 만들어버릴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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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 21:48 2013/01/01 21:48

[녹색세상]우리가 더 오래 살아야 한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경향신문 2012. 12. 13.

 

선거벽보를 보고 새삼 놀랐다. 4 대 3. 여성이 더 많았다. 내게는 이번 대통령 선거가 여섯 번째인데, 여성후보가 이렇게 많은 경우는 처음이다. 하지만 여성의 약진은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 논의되다 말았다. 여전히 박정희, 노무현, 이명박 등 남성의 그늘이 더 컸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과 여성성, 즉 성차-생물학과 성역할-사회학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나온 강금실 변호사(전 법무부 장관)의 <생명의 정치>(로도스 펴냄)를 읽고 나서 아쉬움이 더 했다. 강 변호사는 여성의 관점에서 생명, 권력, 생태의 현주소를 해부하면서 여성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갈 주체라고 강조한다. 강 변호사의 시계(視界)는 의외로 넓다. 인간을 바라보는 스케일부터 남다르다. 토머스 베리의 우주 존재 모델을 빌려 인간을 다시 정의한다. 인간은 하나(빅뱅)로부터 분화된 다양성(차이), 각 개별체의 내적인 명료성(개체성), 교제의 친밀감(관계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같은 인간의 특성을 발휘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차이는 차별로, 개체성은 파편화된 개인주의로, 관계성은 공동체의 파탄으로 역전돼 있다. ‘생명의 정치’는 결국 ‘정치의 생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권력 쟁탈을 유일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현실정치는 국민을 온전한 생명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현실정치에서 국민은 몇 년에 한 번씩 애걸복걸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입을 싹 씻어버리는 ‘한 표’일 따름이다.

 

 

이번 대선정국에서 강 변호사의 문제 제기가 유의미한 까닭은 상상력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국민대통합, 새정치, 복지, 반값 등록금 다 좋다. 하지만 대선 후보의 공약에서 장기적이고 심층적인 관점은 찾아볼 수 없다. 문명사적 전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없다. 지구적 차원의 위기에 대한 감수성이 전무하다.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 문제 등 거대담론을 거론하면 표가 떨어져 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민, 아니 ‘한 표’들은 당장 입에 넣을 수 있는 당근을 선호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인식론적 자물쇠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인식 틀에 갇히면 그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사고를 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가두고 있는 인식론적 자물쇠는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집단적 공포의식이다. 하지만 개발과 성장은 이제 불가능하다. 산업 문명은 지구 자원이 무한하다는 그릇된 전제에서 출발했다. 산업 문명이 석유문명이고, 석유문명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하지만 대선주자들은 석유문명의 붕괴로 대표되는 지구적 위기를 외면한다. 생태계의 위기가 우리 몸의 위기로 드러나는 이 엄연한 현실을 모른 척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상호의존적 존재라는 우주적 진리를 무시한다.

 

 

일찍이 아인슈타인도 어떤 문제를 일으킨 사고방식으로는 그 문제를 풀 수 없다고 간파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자물쇠를 어떻게 열 것인가. 남성 중심주의라는 완강한 자물쇠를 여는 열쇠는 여성성이다. 성장 논리라는 철옹성의 문을 여는 열쇠는 탈성장 논리다. <생명의 정치>가 말한 대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대표되는 여성성, 즉 공감, 관용, 배려, 친밀성 등 산업 문명의 바깥에 있던 가치와 태도가 남성 중심주의와 결합한 강고한 성장 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옹호는 정치에 대한 재정의와 다르지 않다. 정치가 타인은 물론 뭇 생명과 더불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창의적 노력이라면, 바깥에 있는 정치를 내 몸속으로 초대해야 한다. 생명의 바깥이 없듯이 정치의 바깥도 없다는 자각이 이번 대선정국을 통해 사회화했으면 한다. 정권의 임기는 5년이지만 인간과 생명에게는 임기가 없다. 정치인보다 우리가 더 오래, 더 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12월20일부터는 경제민주화보다 정치 민주화,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먼저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됐으면 한다. 거기서부터가 새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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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 19:30 2012/12/13 19:30

나는 한 달에 한 권 정도 책을 읽는다. 일년에 겨우 12권을 읽는 편이니 그렇게 많이 읽지 않는다. 물론 연구를 위한 서적들, 소위 전공도서를 빼면 그렇다는 말이다. 한 달에 겨우 한 권 읽는 책도 거의 소설책이다. 독서에 관한한 나는 게으름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책을 다양하게 읽고 싶어도 당장 눈 앞에 놓인 논문을 생각하면 이런 저런 책들을 읽기가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강바닥 파는데 들어간 돈 22조를 지역 도서관 건립에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만약 그 돈으로 지역에 공공도서관을 1000개 정도 세웠다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우선 도서관에 사서를 포함하여 최소 5명 정도의 일자리가 발생할 테고 각 도서관이 동일 서적을 2권씩만 구매해도 2천권의 책이 필요하고 그 여파가 적지 않을 것이다. 우선 출판 시장이 살아날 것이고 출판 관련 학과 학생들의 전문성이 강화되고 책과 관련된 다양한 기획들이 형성될 것이다.

나는 젊은 대학생들이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오로지 취직만을 생각하고 사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을텐데 그저 취직만 생각하니 생각의 폭과 활동 반경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글을 쓰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런 문화가 조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마 소설가뿐만 아니라 작가 지망생들이 많은 사회에서 삶은 좀 더 부드럽고 여유있고 차분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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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 기준 전국의 공공도서관은 759곳이다. 세상에! 더 놀라운 것은 장서(인쇄, 비도서)가 70,539,000권이다. 비도서가 포함되어 있으니 실제 책이 몇 권인지 알 수가 없다. 대학 도서관의 장서와 비교하면 공공도서관의 장서가 얼마나 빈약한지 알 수 있다. 이러니 출판시장뿐만 아니라 서점이 제대로 버틸 수 있을리 만무하다. 안타깝다.

[목수정의 파리통신]불황일수록 불붙는 프랑스의 책 사랑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 경향신문, 2012. 11. 28.

프랑스에서 가장 큰 명절은 단연 크리스마스다. 문화가 종교를 대신하기 시작한 지 오래인 이곳에서 예수의 탄생에 큰 의미가 담기진 않지만, 여전히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추석처럼 흩어진 가족들을 모이게 해주는 중요한 날이다. 아이들에게만이 아니라, 함께 모인 모든 사람들 사이에 선물이 오고 가기 때문에 어른들에게도 마음 설레는 날이기도 하다. 11월부터 사람들은 선물 마련을 위해 엄청난 시간과 정성, 예산을 바친다. 프랑스인들이 밝힌 올해 1인당 크리스마스 선물 평균 예산은 378유로(약 52만원). 금년에 프랑스인들이 첫손에 꼽은 선물 품목은 단연 책이다. 그 뒤를 초콜릿, 향수, CD가 잇는다.

5년째 이어지는 경제위기. 여기에 이은 정부의 긴축예산은 일상의 삶을 바짝 조여오지만, 그와 무관하게 프랑스의 도서시장은 날로 성장해 왔다. 프랑스 문화부에 따르면 2010년 프랑스 도서판매는 2억6800만부다. 금액으로 치면 28억3800만유로(약 4조원)로 10년 전에 비해 약 23% 성장한 규모다. 이 중 인터넷을 통한 구입은 9%에 그친다. 여전히 프랑스의 크고 작은 도시 한구석에는 주인의 개성을 담은 서점들이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있다. 성탄절뿐 아니라 생일에도 열이면 다섯은 책을 선물로 들고 온다. 서점들도 수동적으로 가만히 손님을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동네 콩알만한 서점들도 끊임없이 작가 초청 행사를 마련, 손님들의 볼이 장밋빛으로 물드는 기쁨을 선사한다.

올해 초, 트리플A 그룹에서 탈락되는 국가적 충격을 겪은 프랑스. 지난주, AA1으로 다시 한 계단 강등되었으나 이번에는 차분하게 신용평가기관들이 내린 평가를 귓등으로 넘겨듣는 분위기다. 묵묵히 책장을 넘기며.

경제위기와 도서 구입의 증가. 이 어딘가 맞지 않는 조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책을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꼽은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보자면 그 원인을 조금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꼽은 책선물의 첫 번째 장점은 실용성이다. 책은 다른 선물들에 비해 저렴하면서, 교육적인 의미가 있고, 주는 사람의 신실한 마음이 잘 담긴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책이 실용적이다? 이 점에선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도서시장의 왕자는 문학(26%), 그중에서도 소설이다. 기껏해야 여행서적(6%)이 그나마 실용서 가운데 순위에 있을 뿐. 이들이 말하는 실용의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매일 3가지의 숙제를 받아오는데, 그중 늘 빠지지 않는 게 ‘오늘 빌린 책 읽기’다. 학교에 큰 도서관이 있어서, 아이들은 매일 책을 한 권 빌리고, 전날 읽은 책을 반납한다. 교장이 이 도서관이야말로 우리 학교의 심장부라고 소개할 만큼, 독서습관을 길러주는 건 이 학교의 첫 번째 교육목표다. 그 숙제를 하는 동안 아이의 어휘와 사고력, 세상에 대한 인식이 나날이 확장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여기서 내 실용의 알맹이를 발견한다. “좋은 책을 읽는 순간들이 인생에 축적되면, 뜻하지 않은 시련과 고통에 빠졌을 때 그 순간들을 견딜 힘과 앞으로 나아갈 힘을 동시에 준다”고 말한 작가 신경숙처럼, 프랑스인들은 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낼 힘과 지혜를 책 속에서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이들이 말한 실용은 바로 이런, 길게 계획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찾아지는 실용이 아니었을까?

독서의 해를 지정해 놓고 인구당 10원의 예산을 책정하는 허탈한 문화부, OECD 최저 수준의 공공도서관 수, 독서를 방해하는 입시정책. 이 모든 조건 속에 빈사상태에 이른 한국출판계는 도서정가제를 핵심적인 회생책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시급한 건, 책을 통해 우리 속에 녹아드는 자산이야말로, 곤궁한 시절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가장 실용적인 투자임을 아는 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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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8 21:29 2012/11/28 21:29

왜소한 정치, 상상력의 빈곤[김종철의 수하한화]

/경향신문

 

대선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포부와 이상, 그리고 그 실현 방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발언을 아직 들을 수 없다. 참으로 답답하다. 물론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신기하게도 여야 가릴 것 없이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복지국가를 들먹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이러한 원론 수준의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누구든 듣기 좋아할 만한 언설일 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공허한 이야기이다.

하기는 찰나적인 대중적 인기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극장정치’의 시대에 시대상황을 정확히 읽고 그것을 설득력 있는 정치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식견과 능력을 갖춘 정치지도자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은 매스미디어의 주의를 끌기 위한 갖가지 수준 낮은 쇼와 이벤트, 저열한 정치적 책략일 뿐이다. 엄청난 비용과 사회적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왜 선거를 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나라 안팎은 전대미문의 심각한 복합적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이 위기는 결국 정치의 열화(劣化) 현상에 연결돼 있음이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폐부를 찌르는 뛰어난 정치연설을 들어본 지도 까마득하다. 물론 정치가 늘 진지하고 엄숙한 것일 필요는 없다. 엄숙주의는 권위주의의 소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가 대중에게 보다 친근한 것이 된다는 것과 정치의 천박화가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대중과의 친밀한 ‘소통’을 위한답시고 실제로 행해지는 정치적 행태는 대부분 대중을 즉자적인 욕망 충족에만 매달린 근시안적인 존재, 즉 유아나 백치처럼 취급하기 일쑤이다. 이런 식으로는 나라의 장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대중의 정치적 교양이 질적으로 고양되는 것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간단히 답할 수 없는 문제지만, 나는 지금과 같은 정치의 열화 현상이 초래된 원인은 일차적으로 이 나라 ‘엘리트들’--좌우를 불문하고--의 상상력의 빈곤, 혹은 정신적 왜소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 한창 얘기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경제민주화란 시대상황으로 볼 때 결코 더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명제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지금 그 어떤 진영으로부터도 경제민주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명쾌한 설명과 실현 방안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간단히 말하면, 경제민주화란 극단적인 부의 양극화 현상 때문에 생긴 개념이다. 지금과 같은 극심한 부의 편중이 더 계속된다면 사회적 안정성이 파괴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결국은 특권 계층 자신의 존립기반도 허물어질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러므로 경제민주화란 무엇보다 경제적 평등화를 뜻하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경제적 평등화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부분적인 땜질이나 미온적인 대책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해방 공간에서 행해진 토지개혁과 유사한 수준의 과감한 개혁이 아니면 안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토지개혁보다도 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동안 우리의 삶을 지탱해온 온갖 시스템의 근본적 전제였던 ‘경제성장’이 더 이상--항구적으로--계속될 수 없는 시대가 바야흐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성장시대의 종언’이 뜻하는 궁극적인 의미를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한다면, 중앙집중적 거대 금융 및 산업시스템의 끊임없는 확대로써만 유지될 수 있는 생활방식, 그리고 그 방식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부추기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 교육 등 온갖 제도와 관행이 근본적으로 탈바꿈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극히 자연스럽게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사회가 문명의 존립방식 자체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중대한 과제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은 이 전환이라는 과제도 정치적 합의와 결정을 거쳐야 할 것인데, 지금처럼 질 낮은 정치로써 어떻게 이 사활적인 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사회에 지금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말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이 적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들 가운데 ‘성장 없는 시대’를 고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 진보적이라는 이들도 결국은 성장 논리에 고착되어, 새로운 성장정책으로 가령 우주항공, 신소재, 첨단 제약의료 분야 등 혁신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할 필요성을 논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혁신기술 개발에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라도 재벌을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오고 있다. 

이 시대착오적인 성장 논리로부터의 탈각을 위해서도 지금 절실한 것은 과감한 상상력이다. 오늘날 우리의 상상력이나 정신력의 빈약함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제헌헌법의 ‘이익균점권’ 조항을 돌아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제헌헌법이 외국의 헌법을 졸속으로 베낀 것일지 모른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적어도 자본과 노동간의 공평한 관계를 규정한 ‘이익균점권’이라는 조항은 국회에서 장시간에 걸친 격론을 통해서 성립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헌헌법 제18조 제2항의 이 조항은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낸 전진한(錢鎭漢) 등에 의해 발의되었다. 전진한에 의하면, 노동자는 ‘노력’을 출자한 자본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돈’을 출자한 자본가와 이윤을 균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였다. 전진한은 “노동을 상품시하여 자본에 예속시키는 것은 고루한 사상”임을 역설했다. 그러니까 이익균점권의 논리는 오늘날 재벌과의 협력을 운위하면서 결국은 재벌의 눈치를 보는 왜소한 자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신적 강인함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익균점권’ 조항이 현실에서 실천되었는지 여부는 일단 별개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60년 전 선인들의 당당한 정신과 자세에 비해서 우리들이 지금 한없이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었음에도, ‘이익균점권’ 조항은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헌법에서 삭제되었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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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1 09:55 2012/11/01 09:55

물신주의는 동일성의 논리를 통해 작동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모든 유용한 것들이 시장을 통해 화폐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시장은 동일성이라는 용광로에 다름아니다. 물론 유용하지 않은 것, 심지어 인간의 삶에 해로운 것들조차 자본의 이윤을 위해 시장에서 화폐가치를 획득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동일성의 논리를 벗어나서 살아갈 수는 없다. 한 개인이 유용한 존재로 인정받는 과정은 동일성의 논리에 포섭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신주의를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한 개인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함으로써만 유용한 존재로 인정받는다. 즉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맑스는 이것을 '개인의 구체적 노동이 추상적 노동(화폐)으로 환원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물신주의의 첫 번째 테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 개인은 사적 존재에서 사회적 존재로 전환된다. 이것은 물신성의 두 번째 테제이다. '한 개인의 사적 노동은 사회적 분업체계의 일부로 편입될 때만 사회적 노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에서는 '개인의 사적 부가 사회적 권력으로 전화된다"는 것이다. "Money is power, power needs money"라는 말이다. 만일 정몽준이나 이건희가 단지 돈이 많은 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그저 순진한 사람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믿음은 일반적이다. 나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자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전두환이나 노무현, 이명박이라는 개인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물신주의에 사로잡혀있고 물신주의는 굿을 한다거나 우리의 강력한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저 환경을 잘 보살피고 채식을 하고 농사나 지으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일상에서 국가라는 기구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 경찰이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하고 눈을 부라릴 정도가 되어야 겨우 국가기구의 존재를 깨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점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국가권력이며 국가기구의 억압을 대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실제적으로 "국가란 경제적 지배집단의 정치적 지배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철수의 등장은 한국 사람들이 이제야 겨우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요청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
(김종철, 경향신문, 2012. 9. 6)


옛 중국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엄격했다. 수많은 백성 위에 관료가 있었고, 관료조직의 정점에 대신(大臣), 그리고 그 위에는 말할 것도 없이 황제가 존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황제 위에 또 누군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존재를 후세인들은 일민(逸民)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황제의 권력 바깥에 있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군주의 권력행사는 신하를 자처하는 자들의 협력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일민’이란 말하자면 그 신하됨을 거부한 인간이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것이 가능했으나 동시에 온갖 시련과 불이익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일민’은 아마 시인 도연명(陶淵明)일지도 모른다. 그는 동진(東晋) 사람으로 지방 여러 곳에서 관직생활을 하다가 41세에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가 평생 농사를 짓고 살기로 결심했다. 그때 그가 쓴 것이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폐해지고 있는 지금 내 어찌 아니 돌아갈 것인가”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묻는 사람에게 그는 “쌀 다섯 말 때문에 (상사에게) 허리 굽히기 싫어서”라고 답했다. 말하자면, 쌀 다섯 말이 봉급으로 주어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쌀을 직접 지어서 먹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향리라고는 하지만, 대대로 벼슬살이를 한 가문의 후손인 도연명에게 농사는 낯선 경험이었다. 따라서 그의 농사일은 서툴 수밖에 없었고, 항시 곤궁을 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농사를 짓고 살다가 62세에 시 130편을 남기고 죽었다. 다작(多作)이 아니었던 것은 그가 단지 자연을 즐긴 음유시인이 아니라 무엇보다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몸소 노동해야 하는 농사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연명이 택한 ‘일민’의 길은 한가로운 은둔자의 생활이 아니라 끝없는 고투의 삶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정작 임금 곁을 떠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입으로는 늘 ‘귀향’을 말했던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관념적인 ‘탈속’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도연명이 속세를 초월한 인간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에 예민했던 인간이었음을 명확히 지적한 것은 노신(魯迅)이었다. 노신은 완전히 초탈한 인간이라면 시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노신의 생각으로는, “사귐도 어울림도 이제 모두 끊으리라/ 세상과 나는 어긋나기만 하니 다시 수레에 오른들 얻을 게 무엇이냐”라는 ‘귀거래사’의 구절에 이미 세상에 대한 도연명 자신의 ‘분노’와 ‘저항’이 내포되어 있었다. 동시에 거기에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버린” 지금까지의 생활을 청산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겠다는 준엄한 윤리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다.

노신이 1500년 전의 시인 도연명에 각별히 주목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 그 자신 불의(不義)한 세상 속에서 한 자루의 붓에 의지해 분투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지식인으로서의 강한 자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식인이란, 따져 보면, 자신의 역할이나 재능을 인정해주는 권력자·후견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매우 불안한 존재이다. 현대사회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성공을 바란다면, 변덕스러운 대중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게 또한 모든 현대의 작가, 예술가, 철학자, 지식인들의 기본적 운명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아첨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권력자나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지식인의 생존상황이다. 노신이 도연명에 관해 언급한 것은 그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심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것은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의 작가·지식인으로서 좋은 삶, 혹은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노신 자신의 고뇌가 담긴 언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이상호 기자 X파일>이라는 책을 읽었다. 2005년 7월에 MBC 방송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삼성녹취록사건’이 보도되기까지의 전말이 세세히 기록된 일기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담당기자가 처음에 제보를 받고, 관련된 취재를 하고, 그것이 실제로 보도되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그리고 그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것을 해명하는 게 이 책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삼성녹취록사건’이란, 간단히 말해, 이 나라 최대의 자본권력이 국가권력을 좌우해왔거나 하려고 해온 내막이 명확한 증거와 함께 폭로된 사건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으로 금권정치라는 사실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삼성녹취록사건’이 보여준 것은 그 금권정치의 방식이 너무나 비열하고 음습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공공질서도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민주주의를 뿌리로부터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상호 기자 X파일>을 보며 새삼 전율하는 것은 이보다 조금 다른 문제 때문이다. 즉, 지금 자본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국가의 공권력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회 전체에도 걸쳐 있다는 가공할 사실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언론자유가 보장되고, 노조위원장이 방송사 사장이 되어 있던 시절임에도, 이 중대한 사건이 보도되기까지 10개월이나 걸린 이유는 외부압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요인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미리 자기검열을 하는 방송사 내부 분위기였다. 이 책에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고군분투하는 기자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괴로운 게 뭐냐면 본의 아니게 선후배, 동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상처를 준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생각해봤다.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떠했을까. 나 역시 내 일상의 평온을 깨뜨리는 이상호 기자를 십중팔구 미워했을 것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생애 말년에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서 강의했다. 그는 진리를 말하는 데는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 혹은 적어도 남들과의 우호적 관계를 손상시킬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뒤집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은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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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10:24 2012/09/06 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