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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 등록일
    2006/01/15 02:39
  • 수정일
    2006/01/15 02:39

조금 전에 본 MBC베스트극장의 제목.

 

우연히 TV채널 휘휘 돌리다가 보게 되었다. 채널을 고정시키게 된 까닭은 다름 아닌 스토리 때문. 성폭력 피해 여성이 맞닥뜨리는 현실과 피해심리를 생생하게 그리면서도 그녀가 극복하고 생존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는 철저하게 피해자의 관점에 서 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른 것이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 역시 폭로해 낸다. 그리고 결말도 좋다. 성폭력이라는 극악한 현실에 어떤 올바른 출구도 내주지 않는 세상이 보라는 듯 주인공은 비타협적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보면서 몇 가지 고민한 것이 있었다. 여주인공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2년 전의 가해자와 조우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시 아노미 상태로 빠져든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녀의 친구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고민하다가 그녀를 떠난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과거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보수적이고 이중적인 잣대를 폭로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 남자친구가 다른 태도를 취하도록 이야기를 그렸으면 어떨까도 싶다. '남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피해자를 조력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하나의 대안 혹은 다른 모습을 제시해 보는 것은 어땠을까. 사실 이것은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 연인이든, 동지든, 지인이든 나는 그동안 어떤 태도를 취해 왔으며,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몇 번 피해 경험을 직접 들을 때 내가 해 왔던 것은 일단 잘 들어주는 것과 한편으로 성폭력을 양산하는 현실에 대해 제대로 투쟁하고 실천하자고, 나도 앞장서겠다고 다짐하는 것 밖에 없었는데...

 

한 가지 더. 극중에서 가해자는 미혼의 잘 나가는 은행원이다. 그런데 가해자는 주인공 뿐만 아니라 동료 여직원에게도 성폭력을 저질렀던 것이다. 회사 계단 한 켠에서 가해자는 여직원을 불러내어 협박을 한다.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라고, 신고할테면 해 보라고, 네가 나 좋아해서 쫓아다닌다는 것 온 은행 사람들이 다 아는데 어디 한 번 해보라고.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은 일단 이렇게부터 생각한다. 치정 문제는 아닌지, 피해자의 책임 비율은 얼마나 되는 것인지 등등. 이 속에서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내가 보았던 노조나 운동단체 내 성폭력 사건을 다룬 자료들에서도 꾸준히 반복되어 나타났던 일들이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피해경험으로부터 벗어나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가해자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는 가해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쫓는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가해자가 동료 여직원을 협박하는 장면 역시 목격하게 된다. 그것을 보면서 그녀는 조용히 되뇌인다.

 

"(겁에 질린) 그녀의 얼굴에서..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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