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붙박이 별 (2010/10/13 21:13)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일본의 시대구분

    선사시대
    구석기 시대
    조몬 시대
    야요이 시대

    고대
    야마토 시대
    – 고훈 시대
    –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

    중세
    가마쿠라 시대 - 막부
    무로마치 시대 - 막부
    센고쿠 시대

    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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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 시대 - 막부

    근대
    일본 제국

    메이지 시대
    다이쇼 시대
    쇼와 시대

    현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냉전 하의 일본
    헤이세이 시대

    modern history

    Pre-Modern
    Main articles: Ancient philosophy and Medieval philosophy
    In a historical context, Pre-Modern is the period in Western civilization that came after Ancient history 4000 to 600 BC, and Classical antiquity 600 BC to 500 AD, and before Modernity.[contradiction] It is usually recognized[weasel words] to have begun in the mid-15th century, marked by the invention of the printing press and the introduction of movable type in Europe. Pre-Modern ideas are thought[weasel words] to have begun in the Dark Ages around 500 AD.
    In the Pre-Modern era, a person's sense of self and purpose was often expressed via a faith in some form of deity, be that in a single god or in many gods.[citation needed] Religious officials, who often held positions of power, were the spiritual intermediaries to the common person. It was only through these intermediaries that the general masses had access to the divine. Tradition was seen as sacred and unchanging & the social order was strictly enforced.[citation needed]
    See also: Ancient history and Medieval history

    Modern
    In contrast to the pre-modern era, Western civilization made a gradual transition from premodernity to modernity when scientific methods were developed which led many to believe that the use of science would lead to all knowledge, thus throwing back the shroud of myth under which pre-modern peoples lived. New information about the world was discovered via empirical observation.[citation needed]
    The term "modern" was coined shortly before 1585 to describe the beginning of a new era.[2] The European Renaissance (about 1420–1630) is an important transition period beginning between the Late Middle Ages and Early Modern Times, which started in Italy.
    The term "Early Modern" was introduced in the English language in the 1930s.[5] to distinguish the time between what we call Middle Ages and time of the late Enlightenment (1800) (when the meaning of the term Modern Ages was developing its contemporary form).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se terms stem from European History. In usage in other parts of the world, such as in Asia, and in Muslim countries, the terms are applied in a very different way, but often in the context with their contact with European culture in the Age of Discoveries.[6]

    Postmodern and contemporary
    "Postmodernism", coined 1949, on the other hand, would describe rather a movement in art than a period of history, and is usually applied to arts, but not to any events of the very recent history.[7] This changed, when postmodernity was coined to describe the major changes in the 1950s and 1960s in economy, society, culture, and philosophy. Sometimes distinct from the modern periods themselves, the terms "modernity" and "modernism" refer to a new way of thinking, distinct from medieval thinking. "Contemporary" is applied to more recent events because it means "belonging to the same period" and "current".
  • NeoPool (2010/10/13 11:03)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요 몇달 간 틈틈히 일본근대사상사 보면서 타케우치 요시미가 1960-70년대 맞닥뜨렸던 사상적 과제를 음미하면서 정말이지 좀 이상한 형태로 한국에서만 유행타기 시작한 것 같은 이른바 '동(북)아시아' 담론을 겹쳐 생각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소위 '동북아시아'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한국 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참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죠. 어쨋든 타케우치 요시미가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의 근대초극론 따위를 다루며 구출하려 했던 '아시아주의'라는 것의 소생이 21세기에 만약에 가능하다면, 위에서 들사람님께서 언급하신 경제적/문화적 차별과 모멸을 견뎌야 했던 동아시아의 민중을, 기업 진출이나 시장 개척을 위한, 자본 팽창의 필요성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사전 정지작업으로의 '동아시아'가 아닌, 그 방향이 180도 돌려진 인간 해방을 위한 협력과 연대의 터전으로의 '동아시아' 라는 지평을 어떻게 구상해야 할 것인지! 그야말로 가슴설레는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  Re : 들사람 (2010/10/14 01:36) DEL
  • 한국에서 동북아허브국가니 물류국가니 하는 식의 "동북아 담론"이 좀 유별난 건, 1945년 이전까지 일본령 조선 치하에서 근대화의 단맛을 노렸던 민족 부르주아지 주류의 합동피난처였다가, 60년대 이후부턴 미국주도형 근대화의 쇼윈도우로 화려하게 변모한 대한민국 국가의 황망한 내력과 맞물려 있지 싶어요. 근대자본주의적 식민주의의 실험장이었던 일본령 조선치하 주민 대다수의 치욕스런 경험이 대한민국이란 주권국가의 탄생 과정과 겉돈 데다 분단-내전 와중에 "정치적 세탁"까지 겪다 보니, 대체로 (아)제국주의적 심성이 번성하고 사회화되기 좋은 숭악한 곳이 돼버렸달까요.ㅎ;

    반면 일본의 경우엔 다케우치 같은 소수파가 있긴 했지만, 동아시아/대동아라는 화두는 "억압-거세된 과거"로서 냉전기 동안 금기 혹은 우파적 반동으로밖엔 제출되기 힘든 맥락이 있었던 것 같고요. 중국도 얘길 듣자니 그리 간단친 않던데, 과거 등소평이 강조했던 바 "나대지 않고서도 짱 먹는" 노선이 선호된 것도 있고, 다케우치 같은 발상이 탄력을 받기에는 기본적으로 미국-대만-한국-일본과 적대하고 다른 한편으론 소련과 불화하면서 "중국식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내력 탓에 "동아시아"라는 문제설정 자체가 낯설 수밖에 없는 모양이더라구요. 근까, 동아시아를 함께 이야기할 만한 대상이 죄다 친미 위성형 주권국가였다는 거죠. 중국 쪽 사람들로선 동(북)아시아라는 표상 자체에 반공주의적 냉전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셈이랄까요.ㅎ 베트남하고 국경분쟁을 치렀던 경험도 어찌 봐야 할지, "아직으로선" 분명치 않은 것도 있죠.

    이런 난맥을 풀거나 걷어내는 지적 작업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정치적으로 어떤 설레임을 불러일으킬 만한 구석이 분명 있는 거 같어요.ㅎ 저 또한 그런 설레임이 여러 형태의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졌음 좋겠는데, 집단적으로 진행하지 않고선 결실을 맺기가 무척 어려운 일일 터라..ㅎ; 얼마 전에 백원담 선생이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과정인가를, 일본과 대만의 좌파 지식들과 함께 성공회대에 설치한다고 그러긴 하더라구요. 얼마나 진척이 됐는진 모르겠지만서도.
  • NeoPool (2010/10/13 10:44)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들사람 / 그렇지는 않습니다 ;) 아 근데 정말 들사람님이 다음의 말로 정리하신 '문제' 설정에 감탄했어요. 동북아 근대성 세미나니 일본근대사상사 세미나니 뭐니 하면서 어줍잖게 먼 훗날 제가 대면하고 싶어 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꿰뚫어버리셔서. 저 역시 행인님이 느끼셨던 섬찟함을 똑같이 느꼈네요ㅎ

    "자유민주주의(적 제국주의) 요새 미국의 경제-군사적 제재로 임계치에 육박한 "조국보위" 압력 탓에 "인민민주주의"의 수혜는커녕 이미 퉁겨져 나왔거나 한껏 짓눌려 있는 대다수 북조선 (이/탈)주민들, 억지춘향으로 "충군애국"하다 몰살당한 걸로도 모자라 1945년 이후론 주일미군의 패악에 또다시 시달려야 했던 오키나와 주민들, "내성인"이란 이유로, 1945년 이전까진 "조센진", 이후엔 "자이니치"네 "전라도"네 "빨갱이"네 같은 이유로 경제적, 문화적 차별과 모멸을 견뎌야 했던 대만과 일본, 한국산 주민들, 1960년대 중반 미국의 개입과 지원으로 벌어진 자생적인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경험했고 지금은 일본, 한국 등지에서 이주노동자로도 살곤 하는 인도네시아 주민들까지.. 뭐 근까, 1945년 이후 미국식 반공 자본주의 체제로의 재편 속에서 근대자본주의 특유의 식민주의적 주변화 압박 내지 폭력에 '여전히' 시달렸던 동아시아 주민들의 근대화 경험들을 하나로 꿰고 이어 봄으로써, 20세기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지정학의 역사적 궤적을 다시 써야 하겠달까요."

    도대체가 이 작업을 하려면 뭐부터 공부해야하고 어디가서 공부해야 하는건지... 정말 미치겠습니다ㅎㅎ 저는 이제 겨우 들사람님께서 제기하신 '문제'의 윤곽을 흐리멍덩하게 파악하고 앞으로 그런걸 더듬고 싶다 이런 의욕만 가지고 있을 뿐인데ㅠ
  • NeoPool (2010/10/12 11:08)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행인님과 들사람님의 인식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저런 진흙탕 싸움에 안 휩쓸리고 자기 입장 지켜가면서 새로운 전망에 대한 필요성을 감각하고 계신 먼젓분들이 없지 않다는 거ㅠ 조만간 비슷한 논지로 제 지인이 글 하나 올릴터인데 이에 대한 짤막한 논평 좀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대담한 만큼 구멍도 많아 보이지만 그래도 꽤 흥미로운 글이었는데 만약에 첨언 하신다면 행인님과 들사람님은 어떤 부분을 눈여겨 보실지가 궁금해서요.
  •  Re : 행인 (2010/10/13 09:20) DEL
  • 꼭 한 번 보고 싶군요. 논평까지는... ㅠㅠ
  •  Re : NeoPool (2010/10/13 10:58) DEL
  • 위의 사안에 대해 저와 제 주변의 친구들이 어느정도 공유하고 있는 인식 정도는 보여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왠지 사실관계 부분에 있어 잘 모르면서 막 치고나갔다 싶은 부분이 없지 않아서 저는 조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행인님처럼 실제 정당활동을 경험하셨던 분들이나 들사람님처럼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시는 분들께서 이런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가 정말 궁금하거든요. 뭐 논평이라고 쓰긴 했지만 거창한 것을 여쭙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냥 댓글로 어떤 것 같다 의견 정도만 말씀해주시면ㅠ

    http://blog.naver.com/paxwonik/40115903902
  •  Re : ou_topia (2010/10/14 01:48) DEL
  • 20대 갓 넘은 사상가가 사상의 힘으로 "진보의 종언"을 진단하는 "performative contradiction"에 흐뭇하네요... 밥하기도 싫고 맛있게 외식이나 해야겠다.
  •  Re : 들사람 (2010/10/14 02:35) DEL
  • 네오푸울// 그 지인이 박가분님이었군여. 트윗에서 겨울철쭉님이 추천하셨길래 읽으면서 이 글이구나 했더랬슴다.ㅎ

    겨울철쭉님은 소개하면서 "생각해볼만한 예리한" 분석이란 촌평을 하셨지만, 제가 봐도 그 촌평은 맞겠다 싶고요. 생각해볼 만하다기보단 생각을 자극하는 글이지 싶군요. 읽으면서 내심 놀랐어요. 무척 반가운 문제제기라 그런가, 읽는 동안 설레이는 맘까지 일었습니다. 엔엘은 물론이고 자타칭 피디라 불리는 이들의 실천적, 이론적 답보(내지 "퇴행")을 '한 쌍'으로 다루는 이런 문제제기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제가 보기에 2010년 현재, 좌파정치의 진전과 대중화를 보다 더 앞당기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은 크게 두 가지 같어요. 1) 향후 상황/정세에 개입하는 데 정치적으로 적합한 계급주체 형성의 "장(내지 역사적 시공간)"을 어떻게 다시 설정해야 하며, 2) 이러한 좌파적 주체화에 불가결한 실천의 기본 각과 짜임새는 어떻게 새로워져야 할까.

    박가분님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주체사상의 바깥에서 규범적으로(다른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만, 가학적으로ㅋ) 까고 마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부"로부터 이끌어냈죠. 제게는 이런 내재적 비판이 일종의 반전처럼 아주 참신하고 돋보였던 것 같아요. 마치, 도무지 가망이라곤 없어 뵈던 번데기의 껍데기를 가르고서 무척 쌈박한 자태를 드러내는 배추흰나비의 "붉은 날갯짓"을 보는 것 같았달까요.ㅋㅋ 물론 바로 그렇기 때메, "조만간 새로이 도래할 민중"의 태양이 뜨는 대로 금새 걷힐 안개가 될지 몰라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을 엔엘계통 운동들한테는 더없이 유효하고 강력한 한 방 아닐까 싶고. 사실 엔엘계의 패악만 걷히면, 바꿔 말해 정세적 맥락관 사실상 무관한 정전화된 "실천매뉴얼"만 널리 퍼지면 좌파정치가 자동적으로 활성화될 것 같은 착각을 부르는 소위 급진좌파 계통의 안이한 자기규정과 실천관에 대해서도 값진 한 방이겠다 싶었어요. 맞는 쪽에서 얼마나 값져할진 모르겠지만.ㅎ;

    관련해서 덧붙이면, 겨울철쭉님은 북조선의 수령론과 피디 계통의 전위론이 통념과 달리 조직화에 대한 발상법을 많은 부분 공유한다면서, 적어도 근래 엔엘파에선 자신들의 입장을 주체사상 본연의 힘이 아닌 수령론에 기대 정당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더군요. 철쭉님이야 뒷부분에 무게를 실었지만, 앞부분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 소위 좌파 진영에서 그 "분석적 올바름"을 발휘하는 것과 별개로 던져야 할 질문은 엔엘계나 자유주의 계통에서 번갈아 곧잘 활용하는 대중적 국민주의완 다르게 "대중적 생활감각"을 적극적으로 사고할 조직화의 각은 과연 어떤 것이겠냐일 테니까요. 이러자면 "좌파적 포퓰리즘" 같은 발상을 곧이곧대로 따르진 않아도 적극적으로 접붙여볼 필요가 있잖나도 싶고..

    사실관계 면에선, 저 또한 토달 주제가 못 됩니다만, 그렇다고 막 나갔다고 할 만한 구석이 도드라져 뵈는 것 같지도 않네요. 설사 있다손 쳐도 전체 논지를 허물 정도까진 아닐 것 같고요.

    다만 글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건, "진보"를 표방해온 여러 실천과 노선의 종언이 어째서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됐는지 거듭 밝히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 단어에 작은 따옴표를 쳐가며 무언가를 건져올리려 했던 것 같던데, 그 무언가가 뭐며 종언 테제와 어떻게 긴장하길래 그러나 하는 거였어요.ㅎ

    뭐 이거, 박가분님 글에다가 달았어야 할 얘기를 여기다 남긴 셈이 됐네요(회원가입을 해야 덧글 달기가 된다던데, 귀차니즘 때문에 그냥;.. 뒀다가 옮길까 햇더니, 해당 블로그에서 덧글 제한 창이 계속 뜨는군여). 여하튼 맑스 아저씨가 했다는 말 마냥, 제 갈 길을 함 계속 가보셨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뭐라든요.ㅎ


    뱀발:
    개인적으로 전, 농업/먹거리 의제를 실마리 삼아 북조선산 주민들과 한국산 주민들이 "자주적"으로 교류하면서 그것이 가져올 정치적, 문화적 연쇄반응 효과를 노려볼 만한 관련 구석들이 마치 광맥처럼 그간의 "분단현실" 도처에 잠재해 있다고 판단하는 쪽인데요.. 이런 상황을 소위 "대북지원" 같이 (엔엘계의 통일운동 진영이 선호하는) 국가통치술의 일환으로나 (김대중계에서 선호하는) 식민주의적 개방화의 맥락에서만 취급되도록 방치할 게 아니라, 광의의 "노동자" 운동 계열에서 소위 적-녹-흑의 문제설정을 융합한 대안적 의제들로 변환해 내면서 관련 상황에 개입하는 실천의 각이 충분히 가능하고 또 무척 필요해질 거라고 보거든요. 그러다 보면 국민국가적인 포섭과 배제의 변증법에 시달리는 이런저런 "경계인/디아스포라"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자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지면서, 새로운 계급주체 형성이 이뤄지는 정치의 장 자체가 국지적 실천 속에서 이미 동아시아적인 규모로 만들어지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구요.

    이런 주체 형성의 정치에 탄력이 붙고 그 저변이 두터워지면서 시나브로 "사회의 좌경화"가 이뤄지다 보면, 뭐 누가 알겠어요? "머지 않은" 시기,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라틴 아메리카처럼 "좌파 도미노" 현상과 유사하거나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동아시아" 규모의 거대한 변환이 몸으로 느낄 만한 행복한 현실로 다가올지.

    물론, 의도적으로, 지나치게 아름답게 윤색 좀 하자면 이렇단 얘기지만ㅎ 세계경제를 주관하는 사도들부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의 회춘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지 오래라는 분석도 나오는 마당에, 충분히 패를 걸어볼 만한 대안적 전망이 아닐까 싶네요. 폴라니가 말했던 거대한 변환이야, 자본주의 시장 본연의 폭정에 대한 사회의 자기방어 움직임이 파시즘의 득세(=국가간 전쟁으)로 귀착됐단 점에서 비극였을지 몰라도, 앞으로 이뤄질 변환은 아무래도 그와 확연히 달라야 할 테고요. 안 그러면, 저 같은 사람들 대다수는 주저앉는 세계경제의 회춘용 숙주 꼴을 못 벗어난 채 동반파멸할 공산이 농후하다고도 하니 뭐..; 실속 없는 전쟁 따위로 총알받이 하다 인생 쫑 내긴 정말 죽기보다 싫으니까요. 가늘고 길게 살고프달까.ㅎ
  •  Re : NeoPool (2010/10/14 16:10) DEL
  • 들사람/ 그대로 긁어가고 싶은 댓글이네요ㅎㅎ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지만 일단 시험기간이라 자숙하고 나중에 들사람님 블로그 가서 마저 이야기하거나 하겠습니다. ;) 한가지 사실관계에 있어 제가 자신이 없어하면서 너무 막 나간거 아닌가 불안해 했던 것은 행여 엔엘파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주체사상 본연의 힘을 강조하는 조직과 집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항김 '주체사상'파 유격대가 비밀리에 조직되어 개마고원 등지에서 작전이라도 수행하고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ㅋㅋ
  •  Re : 들사람 (2010/10/14 19:54) DEL
  • 네오푸울// 뭐 그리 되면 외려, 박가분님의 주장에 힘이 더 실리게 되는 거 아닐까요.ㅋㅋ 박가분님 주장도 결국 실재하든 잠재하든 거기에 어떻게 ("좌파적"으로) 개입하고 연대해 동아시아 냉전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화된 모순을 극복(내지 지양)할 거냔 얘길 테니. 실은 저도 자숙해야 하는데, 일단 여기까지ㅠ;;

    뭐 익히 아시겠지만, 엔엘계 중에서 그래도 엔엘계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한 이로 민경우씨 같은 분이 있다자나요. 딱히 끌리고 그런 건 아니지만서도, 걔중에선 제일 말이 되는 얘길 하시더라구요.
  • hongsili (2010/10/12 00:02)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금주의 계를 깨신 모양입니다....
    지난 번 수제비 얻어 먹은 은혜도 갚을 겸, 조만간 제가 따뜻한 대포 한잔 대접할까요? ㅋㅋ
  •  Re : 행인 (2010/10/12 00:58) DEL
  • 성인께서 이르시길 魔는 사방에서 낀다고 하셨더니 그 말씀이 백번 옳은 말씀이시구만요... ㅠㅠ

    한때의 충동으로 10년의 계를 어겼으나 tag에 "재정진"이라고 올렸듯이 다시금 용맹정진하기를 벌써 3일, 즉 작심삼일의 한도를 넘겼으니 앞으로 또 10년 기약을 하고 달려볼까 합니다. 불끈~!

    뭐... 그렇긴 하나... 논문 쓰면 한 잔 할라구요. 흐...
  • 들사람 (2010/10/09 00:12)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늘 그렇듯, 쓰기의 진지함과 읽기의 즐거움 어느 하나 놓치질 않으시네요.ㅋㅋ

    트윗에서도 날린 얘기지만, 범민족해방파 중에서도 반동적인 무한일성교파에 대해선 계속 제발등 찍게 해 실천적 맹목과 밑바닥을 알아서 드러내게 하는 한편, 통일의제의 알맹이(=20세기 근대 한반도/동아시아 정치경제의 지정학적 모순 타파)를 아쉬운 대로 붙잡고 있는 비주류 정파들에 대해선 좌파적 시각의 동아시아 대안 평화체제 구상과 연계해 내적인 갱신을 유도하는 중장기적 분열책동이 본격화해야잖겠나 해요.ㅎ

    '통일에서 탈분단으로'란 테제가 제창된 지야 사실 꽤 됐습니다만, 통일의제의 합리적 핵심(내지 맥락적 유효성)에 대한 좌파적 재전유 작업이랄까, 이런 것 역시 그저 통일관련 의제는 한국산 노동자 계급운동의 정치적 "장애물"쯤으로만 여기고 마는 데 그쳤던 것 같아서요. 일테면 한국에 자리잡은 탈북 이주민(특히 여성)들의 경제, 문화적 궁핍화가 만만찮다던데, 좌파적인 노동자운동 계통이라면 이같은 정황을 동아시아 냉전 자본주의하에서 구조화, 만성화된 국가폭력의 일환으로 파악하면서, 이와 단절하는 동아시아 규모의 대안적 사회체제 구상을 모색, 의제화할 수 있겠다 싶거든요. 뭐, 그간 쪼개져 있던 계급분석과 지정학적 분석을 새로이 접붙여얀단 얘길 수도 있겠고.. 이리 되면 사실 고 김대중씨 계통의 자유시장주의적인 통일 내지 체제 내화 구상과 정치적으로 얼마든지 다른 실천의 각이 세워질 수도 있는 걸 텐데 말이져.. 범엔엘파는 지금 이 대목에서 사실상 맛이 간 상태랄 수 있겠지만, 좌파 역시 이 대목에서 개입해 들어갈 무기와 레파토리가 (그 잠재력에 비해) 크게 부실한 게 사실 아닌가 해요.

    암튼 돌아가는 모양새로 짐작컨대, 범민족해방파가 이런 정치적 잠재력을 못살리거나 심지어 썩히고 있을 뿐 아니라 살릴 만한 의지조차 있는지 회의적인 상황이라면, 그나마 소위 좌파 진영에선 그 기본 각에 비추어 이런 잠재력을 살찌우고 구체화해갈 역량이 상대적으로 무척 크잖겠나,, 뭐 그렇게 믿어 보려는 쪽인데요 저는.ㅋ;; 위대하신 수령체제의 보위 논리 아래 끼니 걱정으로 퉁겨져나온 탈북 이주민들이나, 위대하신 삼성이씨 문중이 이끄는 고용 없는 성장 체제의 보위 논리 아래 자꾸 쫄아드는 밥상 걱정으로 속 터지는 남한 주민들이나 배제된 자들이긴 매일반으로 접근할 시각이 필요하겠다는 거죠. 경향신문 네컷만화 장도리를 연재하는 권순찬 선생 보면 이런 통찰을 아주 날카롭게 보여주고 계시던데요..ㅋ

    좌파정치의 기본에 비추어 봐도, 계급 형성의 논리와 방법을 이처럼 "배제된 자"들의 연대-조직화가 좀더 원활해지게끔 새롭게 정렬하지 않을 경우 전망다운 전망을 세우긴 어려워 보이구요.
  •  Re : 행인 (2010/10/11 14:17) DEL
  • 통일뿐만이 아니라 사회 제 문제에 대한 각종 의제들의 핵심에 대해 "좌파적 재전유"라는 것은 과거의 숙제이기도 하려니와 앞으로의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십분 동의합니다. 특히 "동아시아 규모의 대안적 사회체제 구상"이라는 부분은 장단기 의제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특히나 이 대목에서 문제되는 "배제된 자"들, 또는 다른 말로 프롤레타리아들의 미래에 대해 좌파적 의제설정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죠. 최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도 이런 주제구요.

    솔직히 북한의 3대 세습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에 대한 비판이 단지 주체교도들에 대한 메아리없는 성토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요원해보입니다. 동의하는 것처럼, 그 비판 끝에 적절한 대안적 의제의 설정, 예컨대 "통일에서 탈분단으로"라는 테제처럼 어딘가에서 발현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섣불리 입에 담기 어려운 이상한 그 언술에서와 같이, 심중에 뿌옇게나마 그 방향이라는 것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얽히고 설킨 현상들의 난맥을 뚫고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무엇을 대놓고 드러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응하는 세계화 혹은 세계주의라는 것은 그것이 더 큰 자유와 평등을 위한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국경 안쪽에서 자유와 평등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배척되고 경계되고 있죠. 이들이 오히려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지만, 이들에 대하여 좌파적 의제라는 것은 아직 제 자리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당분간은 개인적으로 관망의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제 능력이 저질(ㅠㅠ)이기때문이기도 하지만요. ㅋ
  •  Re : 들사람 (2010/10/12 19:18) DEL
  • 행인// 흠.. 그럴라나요.^^;; 소위 범엔엘계에서 내적 쇄신의 반향이 생기길 바랬던 거야 "기왕이면"이었던 거지, 요원하다면 별 수 없죠 뭐.ㅎ 지금 남한 통일운동 진영이 에두를 수 없는 질문은, '익숙한 처방'들론 아랫돌로 윗돌 괴는 식의 지리멸렬함밖엔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체제적 공포"가 더더욱 완연해질 거라는 작금의 세계경제 상황과 이와 맞물려 꽤나 피곤하게 펼쳐질 지정학적 알력의 이중주 속에서 "우리민족끼리"라는 기존 각으로 비빌 구석이 얼마나 되겠냔 거니까요. 제가 보기엔 아마, 설사 있다고 해봐야 북한에 대해 체제옹호적 정당화밖엔 못하는 '원격화된 시민사회'로서 자리잡는 게 고작 아니겠나..; 향후 새로이 생성될 반체제운동(들?)의 개별 주체한테 갈급하고 또 중요한 건 분명 그런 따위 비전이 아닐 테니까요. 행인님의 능력이 얼마나 저질인지 드러나는 계기인 건 더더욱 아니잖겠습니까..ㅋ 이게 뭐 혼자서 발버둥친다고 나아질 일이여야져. 그 발버둥조차 달랑 혼자선 어림 없는 일이거니와..

    여하간 (김정은의 부상이 아버지의 경우와 같다기보단, 김경희 등이 부각되는 걸로 보건대 일종의 집단지도체제 같아 보이기도 하단 점에서) "포스트-김정일 체제"를 둘러싼 가치판단이 감정적 드잡이에 그치지 않으려면, 북조선 체제에 '특히나 완연'하다는 저 "몰골"의 전후맥락을 친-반북을 막론한 자의적 접근으로 조각내지 않고서 오롯이 이해하게 해줄, 정세적으로 타당하면서도 시공간적으론 장기-동아시아사적인 시각을 가진 역사-사회과학적 이론화 작업이 어여 이뤄져야 할 텐데요. 행인님께서 말씀하신 바, "심중에 뿌옇게나마 그 방향이라는 것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얽히고 설킨 현상들의 난맥을 뚫고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무엇을 대놓고 드러내기가 어려운 부분"은 아마도 이런 작업들 속에서 토론, 논쟁을 거쳐야 웬만큼 또렷해지잖겠나 싶네요. "새로운 짜임새를 갖춘" 반체제운동 주체들의 생성, 조직화도 분명 이 과정 속에서 탄력을 받게 될 듯싶구여.

    당면한 투쟁 현안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에 필요한 "상호교육"의 틀과 판을 다시 짜는 일 또한 향후 본격화하고 전선을 확장해야 할 (계급)투쟁의 중요한 일부 같어요 그래서 저는.ㅎ 저처럼 목마른 쪽에서 어떤 식으로든 직접 우물을 파보든가, 아니면 이런 틀거리 구상과 관련해 싹수 좀 있어 뵈는 "학인 내지 연구자"들을 붙잡고서 요구를 하든가 말이죠. 기왕이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양자가 "환상의 짝궁"을 이루면서 성과를 내는 게 젤 좋긴 하겠지만서도..ㅎ

    그리 되면 적어도 북조선에 곧잘 들러붙는 몬도가네풍의 소위 "전근대적"이고 "왕조국가"적인 특이성들이란, 20세기 동아시아 반공 자본주의의 식민주의적 지정학 속에서 줄곧 지속-변주돼온 "근대적 야만과 폭력"에 대한 화학적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잖을나라요. 물론, 북조선 국가의 "주권적 이성"에 따르자면야, 핵(무기)개발을 포함해 이같은 화학반응은 어디까지나 근대자본주의 지정학의 식민주의적 폭력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의 산물일 테지만요. 20세기 근대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지정학에 대한 이런 "비판적 이해"가 일단 전제돼야, 동아시아 지역 주민 대다수에게 극도로 폭력적이었거나 방어적인 "주권보위" 논리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통치합리성에 맞서, 그와는 삶의 방식이나 사회조직 원리상 정치적으로 판이한 합리성의 논리와 실천의 각은 어떤 것이며, 이에 기초한 대안적인 동아시아 사회체제 구상은 어떤 집단적 주체들(혹은 인터내셔널한 문화감각ㅎ)의 형성-도래를 통해 현실화될 수 있을지에 관해 일단 그 실마리라도 잡히지 않겠냔 얘깁니다만.

    자유민주주의(적 제국주의) 요새 미국의 경제-군사적 제재로 임계치에 육박한 "조국보위" 압력 탓에 "인민민주주의"의 수혜는커녕 이미 퉁겨져 나왔거나 한껏 짓눌려 있는 대다수 북조선 (이/탈)주민들, 억지춘향으로 "충군애국"하다 몰살당한 걸로도 모자라 1945년 이후론 주일미군의 패악에 또다시 시달려야 했던 오키나와 주민들, "내성인"이란 이유로, 1945년 이전까진 "조센진", 이후엔 "자이니치"네 "전라도"네 "빨갱이"네 같은 이유로 경제적, 문화적 차별과 모멸을 견뎌야 했던 대만과 일본, 한국산 주민들, 1960년대 중반 미국의 개입과 지원으로 벌어진 자생적인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경험했고 지금은 일본, 한국 등지에서 이주노동자로도 살곤 하는 인도네시아 주민들까지.. 뭐 근까, 1945년 이후 미국식 반공 자본주의 체제로의 재편 속에서 근대자본주의 특유의 식민주의적 주변화 압박 내지 폭력에 '여전히' 시달렸던 동아시아 주민들의 근대화 경험들을 하나로 꿰고 이어 봄으로써, 20세기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지정학의 역사적 궤적을 다시 써야 하겠달까요.


    네오풀// 혹시, "동북아시아 근대성 세미나"의 뒷심으로 나온 글인가요?ㅎ 어쨌거나 네오풀님 지인께서 쓰셨다는 글이, 뭐 읽어보구 나서 할 소린지 몰겠습니다만, 앞서 끄적여 놓은 "다시 쓰기" 작업을 고무하는 튼튼한 지렛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을 따름입니다그려.
  •  Re : ou_topia (2010/10/12 19:31) DEL
  • 들사람/"1945년 이후 미국식 반공 자본주의 체제로의 재편 속에서 근대자본주의 특유의 식민주의적 주변화 압박 내지 폭력에 '여전히' 시달렸던 동아시아 주민들의 근대화 경험들을 하나로 꿰고 이어 봄으로써, 20세기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지정학의 역사적 궤적을 다시 써야" 얼른 써 주세요! 목마르네요.
  •  Re : 행인 (2010/10/13 09:19) DEL
  • 어라라... 이건 뭐... 마치 제 머릿속을 한 번 휘젓고 다니신 후 제 생각을 정리해놓으신 것 같아서... 섬찟하구만요... 후덜덜덜...

    이의없이 동의합니다. 조금 더 나가자면, 궁둥이가 무척 가벼운 행인으로서는 이러한 떡밥을 누군가 던져준다면 바로 덥썩 물고 파다닥 해보고 싶다는 거죠. ㅎㅎ

    내내 고민의 깊이를 더하도록 하겠습니다. 역량이 저질이라는 것은 제 현재 상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고백하는 것이기에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겠고, 다만 그것이 자랑거리가 아니기에 분발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느낍니다만 게으름이 천지 웬수라...
  •  Re : 들사람 (2010/10/13 21:08) DEL
  • ou_topia// 어이구. 기왕이면 저도, 누가 좀 쌈박하게 써줘서 타는 목마름을 한껏 풀었음 좋겠습니다마는..ㅎ;;

    행인// 헐, 그리 말씀하시니 정말 무섭네요.; 하지만 제가 무슨 인간스캐너도 아니고..ㅎ 아마 제 생각은 어디까지나, 비슷한 고민을 해온 이들이라면 '이심전심'으로 이미 형성돼 있는 어떤 "공통된 것"에 훨씬 더 가깝지 않을까 해요. 행인님하고 저하고 온라인 말곤 일면식 없지만, 이렇듯 겹치는 구석이 있다는 게 명백한 방증 아닐지(이리 봄 주체화 과정이란 존재론적으로 늘 관개체적이라고 할까요ㅎ). 소위 자유주의적 주체(혹은 "개인의 자율성") 관념으로야 이런 공통됨의 형성은 놀라운 일이겠지만, 아마도 그건 관념의 감옥 효과 탓일 테져.ㅎ

    아닌 게 아니라, 언제부턴가(아마도 김대중 정부의 등장을 전후한 시기 이후 특히) 정치적 좌우파를 막론하고 접하는, 반체제적 각을 잃었거나 소진해버린 진부한 진영논리로부터 정말로 탈피하고 싶다면, 20세기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정치경제를 다시 쓰는 일은 어느 정도든 이에 관한 문제의식이 생긴 이들끼리 머릴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일지 모르겠어요. 행여 저도 그럴람 어여 끝내기로 한 일감을 끝내버려얄 텐데,, 제 게으름의 저력에 저 스스로 놀라워하는 중이라ㅠ;;;;;;;
  • pang (2010/10/07 13:46)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호나우딩요 검색하다가 찾은 내용
    http://blog.jinbo.net/hi/?pid=424

    축구를 즐기라구욧!!!!
  • rabidman (2010/10/05 17:05)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그래도 나의 유전자가 동성애를 거부하기 때문에 동성애는 반델세~
    성다수자의 볼권리를 보호해주시요~
  •  Re : mizumachi (2010/11/02 18:45) DEL
  • rabidman님은 아예 히틀러가 유대인 거부 유전자가 있었다고 말씀하시려나요? 만약 그런 유전자의 존재가 정말 있다고 해도 그것이 당당하게 외치고 다닐정도로 자랑스러운 것이라 여기시는건지...??
    또 무엇을 볼권리를 말하시는건지??? 혹시 야시시한걸 말하시는 건가요?? 그거라면 당신이 동영상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한 길거리에서 볼일은 없을겁니다~ 그런일이 있다고 해도 그건 다른류의 죄질로 경찰서 끌려갈텐데 걱정이 참 야한쪽으로만 지나치시군요.ㅋㅋ
  • EM (2010/10/05 16:19)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혹시 원하시면 트랙백 거실 수 있어요. 주소는 http://socialandmaterial.net/wp-trackback.php?p=492
    (안 될수도 있습니다만..;;)

    하여간에 행인님 덕에 생각의 폭이 넓어진 느낌입니다. 야식배달 얘기가 나와서 말씀인데요, 런던엔 그런 것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편인데... 최근에 한국사람들이 야식배달을 시작했답니다. 야식배달의 주메뉴는 역시 통닭... 영삼옹의 후예들은 머나먼 타국땅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는게죠. 애국자가 따로 없습니다...
  • 4강중단 (2010/10/01 14:32)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김치가 뭐-꼬 싶다.
  •  Re : 행인 (2010/10/01 18:53) DEL
  • 오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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