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인 (2009/01/28 20:05)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민노씨/ 아휴... 죄송합니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때였는데, 그만 통화중에 나가버리네요...

    기본적으로 "허위의 통신"은 통신주체가 자신의 신원(신분)을 가장 또는 위장하는 거라고 해석해야할 것으로 봅니다. 군용전기통신법에서 잘 나타나는 것인데, 예컨대 사병이 통신기기를 이용하여 통신을 하면서 "나 사단장인데..."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 통신내용의 진위여하를 문제로 하기 전에 허위의 통신이 된다는 겁니다. 더 명확한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선 좀 더 학술적인 논의가 되어야겠죠.

    미네르바 건에 대해서, 제 견해로는 그가 '공문'이라는 형태로 글을 올렸더라도 그걸 '허위의 통신'으로 보긴 어렵다는 건데요.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무수한 패러디 중에는 마치 관공서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기사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죠. 예를 들어서 지난 번 어떤 신문에서 경제부처 수장이 미네르바를 등용하기 위해 은밀하게 만났다던가 어쨌다던가 하는 기사를 냈는데, 그건 현재 경제부처의 좌충우돌을 비꼬기 위한 패러디였죠. 미네르바의 소위 '공문'이라는 것도 이정도 수준에서 봐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법원을 믿을 수가 없다는 거죠. 제가 보기에, 그리고 민노씨께서 보기에도 미네르바의 소위 '공문'이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제1항의 '허위의 통신'죄를 구성할 수 있는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보지만, 검찰이 주장한 "허위사실의 유포"까지도 인정해주는 마당에 법원이 오히려 허위사실의 유포보다는 더 법해석에 적절하게 접근한 죄목인 '허위의 통신'죄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때문에 걱정인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헌재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허위사실유포죄로 기냥 왈가왈부하게 두는 편이 나을 듯 싶어서 조용히 있었던 것인데, 기왕에 이석현이 저런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한 터라 이런 의견이 있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 거구요.

    물론 어떤 법해석을 적용하든 간에 검찰과 법원의 짓거리가 웃음거리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검찰이 헛짓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 사건이었죠. 결국 자승자박인 꼴인데, 검찰과 법원이 어디까지 이 웃기는 짓거리를 끌고 갈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 민노씨 (2009/01/28 17:50)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드디어 글을 쓰셨군요. : )

    '허위의 통신'에 관한 해석론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다만 여전히 '허위의 통신'이란 무엇인가, 허위의 통신이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라는 점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본문을 읽으면 '허위통신'(이라고 하는 발화자가 이야기한 발설한 의사, 그 내용)이 문제된다기 보다는 허위통신 하는 범죄 주체가 그 신분(특히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가장한다는 점을 주목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이렇게 보더라도 비신분자가 신분자임을 위장하거나 사칭하는 행위를 필요로 하는 바, 그 사칭행위가 '공문서가 있었다'고 단지 (과장해서) '주장'했을 뿐인 미네르바 건에서 그 요건(신분사칭)을 충족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로선 말미에 말씀하신 법원에서 제정신으로(?) 위헌법률을 제청하는 수순을 밟기를 바랄 뿐이네요.

    추.
    통화중에 전화가 끊어졌더라구요.
    아마도 배터리 때문인 것 같은데 말이죠.. ^ ^;
  • 행인 (2009/01/28 13:34)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민노씨/ 게으른 불질에 책임감을 느끼게 되네요.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자폐/ 공부하시기도 지금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결국 명박이가 학업에까지 지장을 주는군요... 에궁...

    "법치"를 시민사회의 제어장치로 활용한 예는 제가 본글에 언급했던 나치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칼 슈미트가 위기상황에서의 카리스마적 통치를 옹호하면서, 전시동원체제를 만들어가는 법률체계가 나치독일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법치주의"가 악용되었죠. 본질은 그때 독일이나 지금 한국이나 똑같습니다. 법이 있으니 지켜라. 애초 법 실증주의의 한 축을 이루었던 켈젠같은 경우, 비록 법실증주의의 입장에 있었지만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권력자의 전권위임이 법치주의의 실질을 담보하는데 어렵다는 주장을 했지만, 기왕에 존재하는 성문의 법이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극복하지 못한 한계로 인해 칼 슈미트류의 주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죠. 훗날 칼 슈미트의 이론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한국형 민주주의"라는 탈을 쓰고 부활하는데, 이 때도 역시 법치질서확립이라는 구호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였구요.

    서울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산오리/ 또 장황포스팅의 악몽이 되살아나는군요... ㅠㅠ 짧게 글쓰기 연습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불질할 때는 그게 잘 안되는군요. 새해엔 좀 더 깔끔한 구라발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EM/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걍 막 꼬집어 내시는군요... 한국사회에서 유지되고 있는 법질서의 체계를 들여다보면, 시민사회의 형성과 구체제와 신체제 간의 대립과정이라는 것을 겪지 못한 채, 일방적인 외부의 힘에 의해 자본주의체제가 도입 성장하고 근대국가화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 내부의 관계형성이라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현대국가화된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 바로 그 과정에서 제도적인 틈이 너무 많고, 그 틈에 대해 사회적인 이성과 합리적 판단이 문제해결의 기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틈을 알고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이를 전횡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집니다. EM님의 지적처럼 권력자 개개인들의 사사로운 의지의 개입이 너무나 쉬운 것이고, 반대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법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바로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숙제인데,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지적을 받을 때는 뜨금할 정도로 상황이 변변칠 않네요.. ㅜㅜ

    봄날의 곰/ ㅠㅠ... 사실 제가 조금만 더 도시계획 등에 전문적 식견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잽을 날리기 보다는 한국의 재개발이 왜 이렇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있을 겁니다. 공부의 폭이 너무 좁다는 한계를 느끼는 요즘입니다.

    정진하셔서 한국이라는 이 요사스런 토건공화국에 서로 같이 잘 살 수 있는 개발과 재개발의 논리를 잘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홧병 잘 다스리시구요....

    마르레니/ 어휴... 제가 강연씩이나 할 깜냥이 될까요??? 안산이야 제 근거지기도 하니 좋기는 합니다만, 제가 나눠드릴 영양분이 기껏해야 구라밖에 되지 않아서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
  • 행인 (2009/01/28 13:16)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정말?/ ^^;;; 제가 중세 교황도 아니고 무슨 면죄부씩이나 발행하겠습니까? 게다가 하급직 경찰들에 대해 면죄부 발행할 정도로 통 큰 사람도 못됩니다. 님도 말씀하시다시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명예"의 관념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고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구요.

    그들의 깡패짓에 대한 분노는 님이나 저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고통의 질과 양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쓸데없는 부연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제가 님의 글을 읽는 과정에서 오바한 것임을 인정합니다.

    다만, 님 말씀처럼 면죄부 부여할 생각도 없고 본글이 그런 면죄부성 양식으로 작성된 것도 아닙니다. 제가 말하려던 것은 그의 죽음이 "순직"이 아니라 개죽음이었다는 것이고, 부하를 개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선 인식하지 못하는 수뇌부를 비판하려는 것이었죠.

    더불어 세상의 이치가 님의 말씀대로 순리처럼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 각오를 할 정도로 세상돌아가는 이치가 잘 되어가는 세상이라면 아마도 저런 짓에 부하를 집어넣는 상관도 없을 것이고, 애초부터 저런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재개발의 방식도 달라졌겠죠.

    아무튼 님이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생각과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 자체가 다르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급직 경찰이 명령체계를 거부하고 잘못된 명령에 항거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죽음 당한 한 젊은이에게 그게 네 업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제가 잘나지도 못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 마르레니 (2009/01/27 21:28)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항상, 시원하게 읽고 있습니다.
    경기안산에 행인님을 모시고 초청강연회를 한번 가져보고 싶은데,
    어떠실런지...?
    가지고 있는 영양분을 골고루 나누어주시면서~ ^^*
  • 봄날의곰 (2009/01/27 02:12)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울화통이 생기다가 홧병이 났어요.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이 와중에 도시계획 공부를 한다는 것이 치가 떨립니다. 욱, 욱..
  • EM (2009/01/25 00:13)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좋은글, 많이 배웠습니다. ^^
    사실은 저도 조금 다른 맥락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하는데... 우리나라는 특히 국가기구들의 경우에 시스템화(또는 구조화)가 지나치게 덜 되어 있다는 겁니다. 가장 단순하게 보면 국가조직이란 것도 거기 결부된 인간들의 집합이고 또 그들 사이의 "관계"들의 총체일 텐데, 문제는 그 "관계"가 구조화가 덜 되어 이를테면 권력자 개개인들의 사사로운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거죠. 어찌보면 그런 영역이 줄어드는 게 선진화(?)가 아닐까 하는데, (이명박 일당이 아닌) 행인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치주의가 확립된다는 것도 비슷한 의미일 것 같습니다..
  • 산오리 (2009/01/24 11:55)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넘 길어서 다 못읽겠어요..ㅎㅎ
    설 잘 보내시고... 새해에도 끊임없는 구라발 포스팅을...
  • 정말? (2009/01/24 02:34)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이상하군요. 그들은 잘못된 명령을 수행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해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발적으로, 잔인하게 그 명령을 수행하는 걸 "명예"로이 여기는 자들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서 행인님이나 제가 겪은 고통의 질과 양 이야기가 왜 튀어 나오나요?

    반항적인 한 놈들 자근자근 밟아주는 걸 명예로이 생각하는 놈이든(많죠), 양심에 좀 거리끼긴 해도 그놈의 밥줄 때문에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명령을 수행하는 놈이든(없진 않죠), 심지어 자기 양심에 반하는 일이라서 괴로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소수죠), 일단 그런 깡패짓을 계속 하는 이상 언젠가 자기도 피볼 것을 각오해야 하는게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요?

    저도 님의 생각을 굳이 돌릴 생각은 없지만 하급직이라고 그리도 쉽게 면죄부를 발행하는 님의 글에 화가 나서 댓글 남겼습니다.
  • 홍지 (2009/01/24 00:05)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행인님...요근래 본 글 중에 최고 감동...ㅠ.ㅠ 프린터 해서 두고 두고 읽어볼랍니당>.<
    이제껏 법치의 반대말은 넘들의 말처럼 '불법'인 줄 알았는데, '인치'라는 것 처음 들어봤어요>.< 아..도대체 십몇년간 받은 제도권 교육이 도대체가 쓸모가 없게 느껴지네염...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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