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궁상떨었다간 여러 사람에게 걱정만 끼친다는 사실을 요 전번 포스팅을 통해 깨달은 행인. 걍 뭔 생각이 있으면 조용히 행할 일이다. 어차피 그러려고 행인 아니던가...)
한나라당 일각에서 그동안 미뤘던 사형을 조속히 집행하라고 떠들썩 하단다.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에게 마땅히 사형이 선고되겠고, 국민의 법감정이 분노로 덮혀 있는 이즈음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도덕적 강고함을 만방에 과시할 껀수를 얻었다.
행인이라고 해서 제 재미를 위해 힘없는 사람들만 골라서 살인을 자행한 강모 같은 인간에게 아까운 세금 들여 밥먹이고 싶겠나? 감정이 때로는 이성을 압도하는 것은 단지 신문 활자가 뇌를 자극해서만은 아니다. 국가에 의한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고픈 충동이 가끔씩 일어나는 것은 한편으로는 내 이성을 반하는 부끄러움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혈류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리라.
하지만, 그 피의 뜨거움만으로 세상을 재단할 수는 없는 터. 더구나 쉰 몇 명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이 판국에는 잠시만이라도 폭주하고 있는 분노게이지를 다스릴 필요가 있다. 왜 지금 사형집행에 대한 강력한 요청이 대두되고 있을까?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으로 인해 들끓는 민심에 부응하기 위해서?
요 근래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을 돌이켜본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용산에서 6명이 참화를 당했다. 김석기는 울며 퇴장했고, 취재나온 기자들을 향해 부하 경찰들의 욕설과 발길질도 있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김석기의 얼굴에서는 쿠데타에 대한 죄과를 받으려 가는 길에 주제에 맞지 않게 지가 다 안고 가겠다고 설레발이 쳤던 노태우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그런 김석기 앞에 엎드려 큰 절을 올리던 어떤 경찰의 등짝에서는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치며 홍석현의 검찰출두길에 조폭들처럼 도열했던 어느 일간지 기자들의 면상들이 오버랩 되고.
마침 이 때, 음모론처럼 터졌던 김유정의원의 폭로는 용산 참사를 덮기 위해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을 대대적으로 알리라는 청와대의 지령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는다. 군사정권도 아닌, 국민성공시대를 외치는 정권에서 이토록 저열한 여론조작을 설마 했을까 하는 알량한 회의는 곧장 사람잡을 일이 정말로 벌어졌다는 사실확인을 통해 우스운 꼴이 되어 버렸다. 믿을 놈을 믿어야지...
조중동이 알아서 떠들어 주고, 신난 경찰이 제 흥에 겨워 벼라별 소스를 다 공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는 뭐가 아쉬워 홍보지침까지 하달했을까? 비서관 한 명의 개인적 돌출행동이라고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경찰은 청와대 비서관 한 마디에 부복하며 절절 기는 밸도 없는 조직이라는 얘기가 된다. 견찰이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맥락이다. 요컨대 정권은 죽은 자들을 가지고 장사를 한 것이다. 즉 용산에서 벌어진 참사로 인해 밑지게 된 형국을 연쇄살인범 검거라는 호재를 가지고 본전치기하려 한 것. 문제는 그 장사 밑천이라는 것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목숨이라는 거다. 용역깡패를 동원한 억지 재개발에 항의하던 5명의 목숨, 상관 하나 잘못 만나 개죽음을 당한 경찰 1명의 목숨, 날벼락처럼 모진놈 만나 어이없이 죽어갔던 7명의 생목숨. 이들의 죽음이 정권의 장사질에 밑천으로 이용된 거다.
죽은 것도 서러운데, 그 죽음이 애도되기도 전에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장사밑천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죽은 자들의 혼이나마 맘이 편치 않을 거다. 맘이 편치 않은 것은 죽은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살아서 이 꼴을 보고 있는 사람들 역시 밸이 틀어지는 심사가 오죽하겠는가?
말초적 자극을 통해 민심을 만회하려는 행동에는 대책이라는 것이 빠져 있다. 즉 "어떻게"라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은 채, 오직 대중의 감정이 폭발하고 있는 방향의 끝머리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릴수 있을까만을 고민하는 것이다. 겨우 대책이라고 나오는 것이 CCTV의 설치다. 물론 CCTV의 효능이 이처럼 드러난 판에 프라이버시니 인권이니 하는 배부른 소리는 뒀다 하는 것이 상책인 시기다.
하지만 그 대책이란 거 역시 눈에 빤히 보이는 속내를 감추고 있다. 초동수사라는 것에 실패한 경찰이 앉아서 놀고 먹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CCTV라는 거, 이거 인민들이 앞으로도 계속 모르고 지나갈 것인가? 빵가게 주인 납치된 상황에서 그나마 CCTV라도 없었다면 범인검거 못했을 거라고 능청을 떨어봐야 그게 경찰 자신들의 무능력만 보여줄 뿐이다. 아닌 말로 그렇게 허술하게 수사하다가 납치된 사람이 죽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나? 이번엔 걍 하늘이 도왔다고 자숙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 이외에 대책 나온 거 있나? 용산참사고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이고 간에 그 근저에는 대책없는 개발과 재개발이라는 자본의 이윤추구가 사건의 동기로 작동한다. 하기사 이 토건왕국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공모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인운하 사업. 어째 민주당은 이놈의 경인운하 사업에 대해선 입 싹 씻고 말이 없을까? 지역구 의원이 껴 있어서?
물론 대책이라는 것이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측면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대책, 예를 들어 CCTV도 그 한 예가 되겠지만, 그런 대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들여다보면 단기고 장기고 대책이라는 것이 부재하다. 소프트웨어 사업에 필요한 근간은 다 잡아먹고 닌텐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뻘소리 하는 거나, 영화진흥을 위한 정책적 지원은 다 말아먹고 기껏 독립영화와 에니메이션 상영을 늘려보면 어떻겠느냐고 헛소리를 하는 수준의 대책이라는 것만 난무할 뿐.
대책을 세우기에는 뇌용량이 극히 부족한 이 정권과 그 하수인들은 그래서 제 아이큐 수준에서 가능한 가장 최선의 방안으로서 죽은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장사를 벌였다. 이게 어느 정도 약발이 먹혔다고 생각했던 걸까? 바로 이 장사질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사건이 바로 사형집행 요청이다. 죽여야 산다. 누군가의 생명이 사라져야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다잡을 수 있다. 오랜동안 정치질을 하려면 격앙된 국민의 감정을 앞장서서 달래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이제 그동안 질기게 감방에서 목숨을 연명하던 수십명을 조속히 저승으로 보내야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결론은 이거다. 사람 목숨가지고 장사질 하면 안 된다. 장사에도 도의라는 것이 있는 법. 그걸 상도덕이라고 한다. 매점매석조차도 인민의 삶을 곤궁히 함에 지탄의 대상이 되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의 생명을 끊음으로서 자신들의 안위를 도모하는 거, 이건 지탄의 대상 정도가 아니라 돌을 쳐 맞아도 할 말이 없는 짓이다.
마땅히 죽어야 할 놈들을 죽이는데 뭔 말이 많냐고 궁시렁대기 전에 지들이 한 짓부터 돌이켜 보아야 한다. 거룩하게 누구처럼 너희 중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이야기할 것도 없다. 분명한 것은 사람 생명을 담보로 장사질 하는 부류가 악질 사채업자들이나 조폭들 뿐이라고 하는 것은 착각이었다는 거다. 기왕에 자본은 그렇게 제 배를 불려왔고, 이제는 정권을 잡은 자들조차 노골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실증을 보게 된 것이다. 결국 이들이 살인범죄의 주모자들이었고, 세대를 이어 자행되는 연쇄살인의 주범들이었다.
이들이 요청하는 사형집행에 동조하는 순간, 그 동조자들 역시 사람 목숨 가지고 장사질 하는데 바람잡이 노릇을 하는 것임을 새삼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