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법"?

2008/10/04 13:28

최진실이라는 연예인은 우리 시대에 일종의 아이콘이었던 듯 싶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깜찍한 멘트 하나로 선명하게 각인되었던 CF의 여왕 최진실. 그녀가 갔다. 일단 고인의 명복을 빈다.

 

최진실이 왜 자살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인데 특히 일부 네티즌들의 악플때문이라는 견해가 대센가보다. 그렇잖아도 이혼 이후 우울증에 시달렸던 최진실이 최근 안재환의 사망과 관련해 여러 루머에 시달렸단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괴담이 번지고 각종 악플로 인해 마음고생을 한 결과 극단의 선택을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 고인의 주변과 경찰의 입장인가보다.

 

한나라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통망법에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법안을 소위 "최진실 법"이라고 하겠단다. 정치권의 발빠른 대응마련이 눈에 띈다. 그런데 좀 역겹다.

 

이 기사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들이 있다. 배달호, 박일수, 김주익, 곽재규... 이들이 죽었을 때, 지금 "최진실 법" 만들겠다고 생 난리를 치고 있는 정치인들 중 이들의 영정 앞에 달려가 무릎꿇고 눈물을 흘렸다는 인간은 본 적이 없다. 이들이 목숨을 내던져 인간다운 삶을 요구했을 때, 부당한 구조조정 피해자, 하청노동자, 비정규직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면서 죽어간 이들의 이름이 붙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저기 있었던가?

 

품위있는 얼굴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법안을 설명하는 나경원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거다. 바로 저런 사람들이 "판사출신"이라고 뻗대는 통에 이 나라 사법부가 불신을 받게 된다. 법원은 나경원의원을 사법부 "모욕죄"로 고발하지 않겠지? 원래 가재는 게편이니까.

 

사실 법안에 이름을 붙이려면, "최진실 법"이 아니라 "나경원 법"이라고 하던지 "홍준표 법"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왜 애꿎은 최진실의 이름을 거기다 붙여 두고 두고 최진실을 욕먹게 만드려고 하는가? 욕을 처먹으려면 지들이 먹으면 되지.

 

피해자의 이름을 붙여 만든 법안의 사례는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메건 법(Megan's Law)"이다. 1994년 미국의 뉴저지주에서는 겨우 7살에 불과했던 메건 캔커라는 어린이가 이웃에 살던 성폭행 전과범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성폭행범의 신원을 공개하는 법이 만들어졌는데 이 법에 피해자인 메건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한국에서도 어린이 성폭행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이렇게 피해아동의 이름을 붙인 법안발의가 논의되기도 했었다. 바로 "혜진, 예슬법"이다. 끔찍하게 살해당한 혜진이와 예슬이 같은 어린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법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법률이 있냐 없냐, 혹은 처벌의 강도가 세냐 약하냐가 아니다.

 

전자발찌를 찬 사람들이 이제 거리를 돌아다니게 되는데, 이들이 전자발찌를 차고 다닌다고 해서 성범죄가 줄어들 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그런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조차도 믿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성범죄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아직도 19세기 수준인데다가 사법부의 양형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울만큼 관대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피해를 공공연하게 알릴 수 없도록 수치심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정책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넘의 정치인들은 너무 쉽게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걍 알로 먹으면서 지 이름만 휘날리고자 하는 거다. 그러다보니 법안마련의 취지가 달성되기는 커녕 역효과가 발생한다. 메건법 덕분에 미국의 아동 성폭력이 줄어들었다는 보고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 법률에 근거하여 신원이 공개된 성폭력 전과자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에 의해 살해된 사건은 보고된 바가 있다.

 

"최진실 법"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이 이미 밝힌 것처럼 모욕죄라는 것은 형법에도 그 처벌의 근거가 있고,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법안은 아예 인터넷 상에서 손꾸락 하나도 깝작거리지 말라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럴 거 같으면 아예 포털업체들을 폐쇄하던지, 포털에서 언론기사를 띄우지 못하도록 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포털 전체에 댓글기능을 달지 못하게 하던지 하는 것이 낫다. 차라리 과속의 우려가 있으니 모든 차량은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말라고 법을 만들던가 아님 음주운전의 우려가 있으니 차량소지자는 술을 처먹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어떨까? 주먹쥐고 다니는 넘들은 죄다 폭행미수로 처벌하는 법률을 만들던가...

 

정히 누구의 이름을 붙여 법률안을 발의하고 싶으면 "나경원 법"이라고 하자. 그래서 이 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공포된 이후 발생하는 모든 문제점들을 면밀히 분석한 후, 누구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대한민국 모든 유권자가 다 알 수 있도록 하자. 어영부영 그렇잖아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이름을 덧씌워서 두고 두고 천추의 한이 맺히도록 할 생각은 아예 접어놓고 말이다. 나경원 의원, 그럴 자신 있나? 홍준표 의원, 그럴 자신 있어? 당신들 임기 3년 좀 넘게 남았는데, "나경원 법", "홍준표 법" 이렇게 할 자신 있어? 그럴 자신도 없으면서 거기다 왜 "최진실 법"이란 이름 붙이려는 건가? 이것들이 상도덕도 없고...

 

악플러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알바"고 다른 하나는 무개념 인생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약이 없다. 오히려 이렇게 개념은 탯줄과 함께 떼어버린 중생들의 글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런 류의 인간들이 올리는 덧글에 초연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줄을 굵게 만드는 트레이닝을 하는 편이 훨씬 지구온난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

 

한편 '알바'는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대응에 필요한 법률은 이미 다 마련되어 있다. 괜히 "나경원법" 같은 쓰레기법률을 더 만들 필요도 없다. 그런데 '알바'들에 대해 성전을 선포하게 되면 상당히 곤란해지는 부류들이 있다. 특히 한나라당. 각종 언론사 홈페이지에 기생하는 한나라당 알바들 얼마나 많은가? 아, 요샌 좀 들어갔나? 정권도 잡았으니. 차라리 법률안을 만들려면 '알바'를 사주한 인간들을 공모공동정범으로 처벌하는 법률이나 만들지. 그런데 나경원이나 홍준표는 절대 이런 법률 안 만들 거다. 지들 목에 칼 디미는 법률을 만들 생각이나 있겠나?

 

속이 훤히 보이는 잔대가리 굴리면서 죽은 사람 욕보이는 짓은 그만 하기 바란다. 그게 하루 아침에 이승을 떠나게 된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덧) 최진실이 수년간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던 이야긴갑다. 그런데 그렇게 장기간 우울증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면 진작에 병원치료를 받게 해주던지, 우울증이 치료되도록 같이 뭘 하던지 해야할 사람들이 최진실이 그렇게 자주 음주를 했다는데 거기 같이 맞장구쳐준 건 뭐람? 우울증 환자가 술까지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몰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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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상도덕, 최진실, 최진실법, 한나라당, 홍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