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후배녀석 하나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질문한 건 이렇다.
"형은 도대체 왜 정당활동을 해요?"
부연하자면, 이녀석의 질문은 정확히 이런 거였다. 한국사회에 행인의 정치적 지향에 썩 부합하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데, 즉 민노당이나 지금의 진보신당이나 행인의 정체성과 그닥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왜 당에 그리 신경쓰느냐는 이야기.
딴에는 블라블라 벼라별 말로 입장을 설명했던 거 같은데, 글쎄다... 어찌 설명이 될 수 있으랴. 설혹 그럴싸한 구라로 설명을 했다손 치더라도 내내 그넘의 눈빛은 그닥 수긍하는 눈치도 아니었고.
어찌되었든 간에 지난 10년 간 개인적인 차원의 정당활동 가운데 이래 저래 쇼킹한 사건들도 꽤 있었다. 민노당의 원내 입성이 그랬고, 원내정당 원년에 벌어졌던 수다한 사건 사고들과, 노선갈등과, 분당과, 신당창당, 그리고 페이퍼 당원으로 전락한 지금의 상황까지. 그러고보니 훗날 일대기를 정리할 때 상당한 분량을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풋... 일대기는 무신 얼어죽을...
암튼 그렇다 치고, 작금 몸담고 있는 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이 껄쩍지근 하기도 하거니와, 혹시나 발전적인 구도로 전개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김규항-진중권의 '자유주의' 논쟁도 김빠져 버렸고, 게다가 분당초기부터 잠복했던 대통합이니 뭐니 하는 논란이 지방선거 이래 후유증처럼 계속 남아있는 상황은 당 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다시 하게 한다.
애초 정당활동에 대해 고민이 시작되었던 건 97년 대선 전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시큰둥 했었더랬다. 사정여하는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겠지만, 하여튼 97년 이후 맘이 많이 바뀌었는데, 정당활동 참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시발점은 바로 운동의 지속성이었다. 즉 장래 어느 순간 진실로 내 하고자 하는 어떤 일을 벌임에 있어서,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자면 과연 그 일을 하기 위해 비빌 언덕이 뭐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나름 복잡한 과정을 거쳐 얻은 결론은 정당이었다.
그 고민의 과정을 다시 밟는다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인데, 이 괴로운 노가다를 상당기간 계속 해오고 있다. 하긴 뭐 잡념이 많다보니 그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내린 결론은 여전히 정당운동이라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 그 필요성의 자각에 대한 변명은 논외로 하겠지만, 어쨌든 앞으로도 정당활동은 계속 할 수밖에 없다는 잠정적 결론이 나온다.
문제는 과연 현재 존재하고 있는 어떤 정당에 고민끝에 나온 나의 이런 결론을 합당하게 투사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예컨대 현재 진보신당의 모습은 과연 나의 고민에 걸맞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보수정당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진보정당의 모습 중 하나는 새로운 사회세력의 발아와 성장을 위한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 최소한 초기의 모습에서 진보신당은 그런 기대의 일단을 어렴풋이나마 갖도록 했었다. 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자들이 모여있었다는 거. 이게 잘 되면 약이 되고 못되면 독이 되는데, 지금까지 진행된 바로는 약도 아니고 독도 아닌 것이 그러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사실마저도 잊혀져버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상에 사로잡힌 환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되, 최소한 진보신당 안에 있는 각양의 조합들이 나름의 발전을 통해 진보신당이라는 껍데기를 박차고 나가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었다. 녹색생태조직은 녹색당을 만들고, 성소수자조직이나 성정치를 고민하는 세력은 또 그렇게 커나가 무지개당을 만들고, 아나키들은 아나키당을 만들고, 사민주의자들은 사민당을 만들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뜻을 세운 사람들이 노동당을 만들고...
항간의 속설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던데, 그 통념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바로 진보의 분열이 언제나 임계치 이상의 팽창 이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찌그러질 여지가 없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거. 언제나 하는 이야기지만 진보가 제대로 분열할 수 있을 때 말 그대로 진보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남한사회에서 진보가 진정한 "분열"이라는 걸 해본 바가 없다고 판단하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니 태클은 사양하고.
바로 이 부분에서 진보신당은 물론이려니와 여타 '진보정당' 그룹에서 계속 통합이니 연대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건 결국 자기 실력없음을 계속 광고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내 안타깝다. 우째 이런 일이... 결국 언급한 각 그룹들이 그래도 진보신당 안에서 진보신당이라는 타이틀을 걸기라도 해야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거, 이거 어지간히 극복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할까를 생각하면 암울하기 그지 없다.
이 마당에, 항간에 '해적당' 이야기가 나오고 있던데, 귀가 솔깃하다. 물론 당장에 어떤 식으로 논의가 전개될지는 직접 참여하지 않은 관계로 제대로 알 수가 없다만, 또 해적당이 과연 장래의 내 운동에 직접적인 연관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는 있을 듯. 그동안 해온 짓과도 에지간히 관련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온라인 덕후들이 모여앉아 오덕거리는 곳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고, 통으로 싸잡아 "자유주의자"들의 집단이라고 욕을 후덕하게 드실 수도 있겠지만, 뭔가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듯도 싶다.
해적당 대변인 하는 것도 괜찮을듯. ㅋ
구라로 점철된 브리핑과 성명을 쏟아놓을테다. ㅎㅎ
떡 줄 넘은 생각도 안 하는데... 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