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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맹신, 마리화나 FTA

이미지의 맹신, 마리화나 FTA


지난 여름, 심난했던 더위가 제 풀에 꺾여 수그러들 때 쯤, 신촌 먹자골목 어딘가에서 노릇노릇 고기를 구우며 우연찮게 마리화나, 곧 ‘대마초’에 관해 지인들과 논할 기회가 있었다. 주제는 대충 두 갈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는데, ‘대마초는 합법화 되어야하는가?’ 와 그에 부차적으로 ‘대마초는 몸에 해로운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들이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실물적인 증거들이 많았기 때문에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담배보다 몸에 해롭지 않고, 중독성도 강하지 않다, 라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합법화’라는 질문에서는 접합점을 찾기 쉽지 않았다. 아니, 담배보다 몸에도 덜 해롭고, 중독성도 약한데, 도대체 왜?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유리한 증거를 내밀어 설득하려 했지만, ‘그런데 난 대마초 마음에 안들어’라는 거칠고 옹색해보이는 논리 하나조차도 깰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논쟁을 모두 부정하는 듯한 그 말은 전혀 타당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힘이 있었는지, 그 날 술자리에서의 실질적 승리는 반대측이 가져갈 수 있었다. 물론 찬성측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이 상황 속에서 그저 씁쓸해했을 뿐이다.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 해결된다면 무엇이 불평등하겠냐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어떠한 믿음, 달리 말하면 ‘전형(=streotype)’들로 뒤덮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만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나름의 ‘전형’을 형성해간다. 국민 대다수에게 ‘대마초=마약’이라는 공식과 ‘마약은 나쁘다’라는 명제가  박혀있는 상태라면 대마초가 얼마나 해로운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된다. 대마초라는 말을 듣으면 자동적으로 마약이 연상되고, 온갖 좋지 않은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전형은 많은 경우 아무도 못 느끼는 새 우리를 쉽게 가치판단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무장 세력이 가장 저급한 권력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전형을 통제하는, 즉 헤게모니를 쥔 세력이 가장 고급스러운 권력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경청할만하다.

 

이러한 헤게모니 작용은 비단 사회적 문제만이 아닌, 정치, 경제, 문화, 심지어 기업체의 PR 등 다방면에서 볼 수 있다. 국내 굴지의 자동차 기업인 현대 자동차가 이미 90년대 이전부터 주 소비층이 아닌 어린이들을 타겟으로 한 PR을 시도한 점은 이러한 작용의 연쇄지점이라 볼 수 있다. 최근으로 넘어와 국정홍보처에서 시행하고 있는 최근의 FTA에 관련된 일련의 광고 영상들을 보면 이미지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기회다. 영상을 보면, 카메라는 망망대해를 마치 활공하듯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물론 그 끝에는 ‘아름다운’ 미국이 있다. ‘이제 세계 앞에 더 큰 대한민국이 달려갑니다.’라는 나레이션으로 끝나는 이 짧은 CF에서 누가 감히 FTA 반대를 역설할 수 있을까, 우리도 ‘아름다운’ 미국같이 될 수 있다 말하는데. 물론 심지어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이미지들 속에서 우리의 합리적 판단과 근거는 실종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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