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여성은 불안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에게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다고 했다던가.

 

그녀를 뒤에서 안는 것은 금지되었다. 이수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에.

진이 그녀에게 다그쳐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불안증과 비명과도 같았던 그 외침이 자꾸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넋을 놓고 잠들지 못 하는 그 수면장애와 함께.

 

" 왜 그러니? "

그녀의 어깨에 한 팔을 두르면서 초딩 때부터의 동무인 양 물었다. 그녀의 친구, 기억하는 한 집에서 학교 가는 길 중간 어디쯤에 집이 있었다는 5학년 때의 친구는 두 명이었다.

한 명은 골목과 골목을 누벼 한 가운데, 다른 한 명은 큰 길 가까운 아담한 단독주택에. 골목 속의 집도 단독주택이었으나 가내공장을 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엄마, 언니들, 그외에 한둘 더 있는 여공들 사이에서 그녀는 동무와 함께 부엌 위 다락방에서 놀았다고 했다. 열 두어살 먹은 계집아이들이니 소꿉놀이를 한 건 아니고 주로 만화책을 함께 봤었다던가. 그 친구와 무얼 더 했는 지는 기억에 없다고, 저에게는 좋아하는 만화책을 함께 읽고 얘기 나눌 수 있는 것이 좋았었다고, 같은 반에 또 다른 아이가 한 명 같은 만화를 즐겨 보며 다음 편이 언제 나오는지 출판사로 전화를 하기도 하던 여자애가 있었지만 그 애와는 친할 수가 없었다고. 부티나는 차림새와 사람을 깔보는 듯한 말투로 얘기하는 그애와 저는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나 하는 걸로 비교되긴 했으나 친하지는 못 했다면서. 만화 좋아하는 애들이 공부도 잘 해. 하는 말을 하던 그애보다 마당까지 평상과 지붕을 이어놓고 요꼬기계를 늘어놓은 사이로 만화방에서 빌려온 꾸러미를 가슴에 안고 통과하여 다락방으로 기어올라가 함께 배깔고 만화를 봤던 그 친구는 공부를 못 했는데, 친하기는 쉬웠다고.

아담한 쪽의 단독주택에 살던 친구의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지만 진은 자신과 중학시절 같은 반이었던 그 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그녀를 이해했다. 초등학교의 친구가 중학시절까지, 그래서 사춘기적 감성으로 계속 벗이 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그녀는 편하게 추억하지 못 했다.

 

" 중학교 때 별로 친하지 않은 동급생이 우리 동네에 살았는데. "

그녀는 너도 보아서 알지 않느냐며 자신의 집은 시장통에 있는 상가건물이라고. 시장통을 조금 벗어나면 조용한 주택가가 있는데. 하면서.

거기 줄 지어있는 낮은 단독들 중의 한 집이 그애네 집이라고. 자신이 알게 된 건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이 그 집딸이랑 같은 학교라며? 하시더니 같은 반이라며? 하시더라고.  서로의 부모님들이 동네 이웃이지만 주택가의 회사원 혹은 전업주부와 시장통의 장삿꾼 내외와는 별로 왕래가 없었다고. 그 가게에 뭘 사러 혹은 왜 우리 가게에 안 오나. 하는 둥의 혼잣말을 하는 경우 외에는.

진은 이 애가 왜 그 친하지 않았던 중학시절의 동급생 이야기를 하나 싶었지만, 그냥 참고 들었다. 왜 그녀가 뒤에서 불쑥 나타나는 사람 그림자에 그렇게나 놀라는 지, 놀라고 나서 안전을 확인한 후에 그렇게나 슬퍼하는지.

" 그 집 앞에서 어떤 남자가 뒤에서 확 껴안는거야...."

" 그런 일이 있었어? "

진은 가슴을 꾹 누르며 짐짓 태연하게 말을 받아주었다.

" 대문이, 왜 지붕이 있어 화분이나 뭐 채소같은 걸 심기도 하쟎아. 장독대랑 이어서. "

" 응, 그래. "

" 그래서 대문 앞에 구석진 곳으로 서 있으면 잘 안 보여. 거기 사람이 있는 줄 몰랐는데...어두워서...새벽이었거든. "

" 새벽에 왜? "

왜 새벽에 골목길을 돌아다니냐구...진은 머리가 아프다. 이 애가...다 자란 처녀 아이가.

" 새벽에 왜 그 집 앞을 지나갔는데? "

그녀는 아니 뭐. 하면서 주저주저하더니 생긋 웃어보인다. 밤산책이 이어져서. 라는 말이라도 할까 싶었으나.

" 신문배달 하느라. "

" 신문배달? 네가? "

그녀는 이젠 내어놓고 웃으며 어색함을 얼버무리려 한다. 왜? 내가 키가 작으니까? 하고 따질 것 같은 눈으로.

" 여자애들도 많이 해. 고등학생들이나, 뭐 남자애들은 중학생들도 하쟎아. "

" 그래, 그래서? "

진은 그녀가 왜 신문배달을 해야 했는지도 의아했으나 그 새벽에 더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침이 말랐다.

" 아냐, 별 일 없었어. "

" 그래? "

" 응, 내가 놀라서 소리를 빽 질렀더니 그...남학생도 놀랐는지 금방 도망가더라구. "

" 남학생이었어? "

" 응. 고수머리의, 고등학생이나 아님 재수생? 뭐 그런 것 같던데. 그냥..."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어 말했다.

" 신문배달은 되게 일찍 시작해. 거의 한밤중에 보급소에 가서 신문을 받아다 난 몇 부 안 되어서 다 돌릴 때 쯤에 겨우 새벽빛이 조금 대문들의 색깔을 알아보게 해 주거든. 그 남자애는..."

진은 말대답해 주는 걸 잊었다.

" 내가 모자도 쓰고 점퍼에 바지입고 긴 머리도 잘 안 보였는데, 키가 작아서 여자애라는 걸 눈치챘나 봐. 아마...미리 거기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는지..그냥, 여자애를 한 번 안아보고 싶었던 가 봐. 근데 소리를 지르니까 너무 놀랐나 보더라구."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가 비명지르면 좀 찢어지는 목소리지. 하면서.

진은 웃음이 안 나온다. 뭐라고 대답 치기도.

" 큰일날 뻔 했네. "

" 응. "

그녀는 바로 그 신문배달을 그만 두었다며. 여자애들은 너무 불안해. 하고 중얼거린다.

 

" 신문배달해서... 돈 벌어서 뭐 할라구? 학생이? "

" 글쎄... 유흥비 마련? 학생이니까? "

하면서 막 웃는 그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