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오랜만, 팔레스타인

 

 

* 웹캠- 화면 너머 네 얼굴을 볼 수 있어

 

 

오년 만에 다시 찾은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단면들을 다시 보게 될지 궁금했다.

사실 두 번의 방문으로 변화를 읽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미 존재했던 것을 이제야 본 것일 수도 있고, 몇 가지 표피적 변화를 어설프게 읽어 내는 수위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태양은 뜨거웠다.

가장 일반적인 대중교통인 세르비스 버스는 통일된 외관으로 보다 번듯한 모습을 보여줬고, 여전한 체크 포인트들은 이 물질처럼 여기저기 존재했다. 핸드폰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보다 일반화 되었고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 많아지면서 사진기만 보면 자신 혹은 자신의 아이를 찍어 달라고 하던 모습들은 예전보다는 많이 수그러든 것 같았다. 수세식 변기와 플라스틱 통에 수돗물을 받아서 손으로 뒤처리를 하던 문화는 호스가 연결된 비데 형태로 많이 변했다. 때로 좌변기 화장실에 화장지가 놓여 있는 모습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지금 머물고 있는 툴칼렘 근처의 시골 마을인 델 룩손에서도 일상적으로 콜라를 물처럼 들이키며 더위에 녹은 초콜렛을 먹고 있는 아이들과 로레알이나 도브 샴푸가 집 욕실에 즐비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니 그것은 팔레스타인에서 거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초대 받아서 간 마흐무드의 집 옥상에 올라가서 보니 위성 티비 수신을 위한 안테나 접시가 수 많은 집 옥상에 설치된 것이 보였다. 이 마을의 작은 농장 오두막에 앉아서 올해 새로 생겼다는 한국 드라마 위성 채널을 볼 수 있는 정도가 된 것이다. 예루살렘 거리에서 만난 한 아이는 구준표를 아냐면서 한국에 가면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기도 하였다.

가장 놀라웠던 외관상 변화중 하나는 생각보다 적지 않은 집에서 인터넷 전용선을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 마다 대부분 달려있는 웹캠.

 

팔레스타인에 머물면서 길에서 만난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족 중 여동생이, 형이, 삼촌이 그리고 또 그 누가 요르단에, 시리아에, 레바논에, 이집트에 혹은 유럽에 혹은 미국 등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나는 그들이 지칭하는 친척이라 범위가 사돈에 팔촌까지 다 이야기하는 한국식으로 따지면 아주 먼 친척을 포함하는 이야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팔레스타인은 수십 명 혹은 수백 명 까지 자신의 가족, 혹은 가문이라면서 동질성을 가지기도 하니까 그럴 수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그것이 틀린 짐작은 아니었지만. 또 한편 그것은 팔레스타인 근대사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강제 이주 당한 직계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돈을 벌기 위해 요르단이나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아버지, 요르단이나 이집트에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떠난 누나, 팔레스타인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젊은이들이 드림랜드를 찾아 유럽으로 미국으로 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델 룩손은 1948년 전쟁 때 8,000명이 요르단과 시리아 등지로 강제 이주 당했다고 하였다. 현재 마을 인구는 11,000명 정도인데, 그들은 웹캠을 통해 친척과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행을 준비하면서 한국에 살고 있는 가자 출신인 마나르와 타미르를 났을 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을 가족을 위해 영상편지(비디오)를 만들어서 전해 주겠다고 제안했었다. 마나르와 타미르는 웹캠으로 가족들을 만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어머니가 영상편지를 보면 분명히 눈물을 흘릴 것이고 했던 게 기억났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카메라는 놀이의 도구이거나 기록의 도구이다.

이곳에서 카메라, 특히 웹카메라는 체크포인트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거부당할 위험 없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비자를 받기위해 몇 년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도 가족이나 그리운 이들과 눈빛을 나누며 익숙한 말투로 소식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도구였다.

게다가 이동이 제한적이고 높은 실업률과 할 수 있는 일도 마땅치 않아서 남는 게 시간인 수많은 젊은이들에겐 낯선 사람들과 화상 채팅을 하며 교류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물론 집에서 인터넷 전용선을 사용한다는 것은 전기세와 전용선 이용료를 감당할 수 있고,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엥겔지수가 소비의 전체를 차지하지 않는 경제조건 안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조건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시골 마을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피씨방을 이용한다.

웹캠으로라도 눈빛을 나누고 싶은 이와 날짜와 시간을 어렵사리 정해서 집이든 피씨방이든 컴퓨터 앞에 앉았다면 이제 운이 나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완전 무장을 한 채로 마을을 드나드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심술을 부려 인터넷을 끊거나, 이스라엘의 전력 발전소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을의 전기를 끊어버리는 일상이 그 순간은 작동하지 않는 시간대이기를.

 

물론 그 시간대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