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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여자들, 젊으나 늙으나 노동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상처위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나와 나와 같은 여자들,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는 이야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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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13
    젊지만 미래를 알 수 없는...해고된 여자
    짜루

젊지만 미래를 알 수 없는...해고된 여자

1.

그녀들이 모였다.

한 집에 사는 그녀들...

왜 그렇게 모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모르게 되었지만

그녀들은 그 집을 만족스러워하면서 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미래, 더 엄밀히 이야기해서 불안한 미래를 위한 한뼘 희망이랄까...

보금자리라고 할까...

하여간 그 집에 4명의 여자가 살 때의 이야기다.

31살에서 39살까지의 여자들이,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상태로...

 

어느날 아침, 하루 일과중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새벽 내 참았던 쉬~야를 하는 거다.

아랫배가 묵직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쯤 이불을 들치고 화장실로 향한다.

느긋하게 앉아서 잠을 완전히 보내고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는 의미(?)있는 시간이다.

아, 그런데...이게 왠일인가...

야! 이거 누구야! 누가 똥누고 물안내린거야?'

집에 아무도 없다.

 

그날 저녁, 세명의 여자가 저마다의 일과를 보내고 모였다.

아침에 있었던 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누가 범인인지를 찾던 중,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 여자가 범인이란 걸...눈짓으로 알아낸다.

'똥누고 손 씻으란 말을 달고 살면서, 물을 안내려 야~...'

단단히 별르고 있었다.

시답쟎은 방송을 보면서...저마다의 꼴값으로 논평을 하면서...낄낄대고 있었다.

 

그 여자가 나타났다.

다자고짜 '야~ 니 똥누고 물안내렸제? 몇번째고? 뭉디...깨끗한 척은 혼자 다 함서?'

아니 이게 왠 일인가?

그 여자가 묵묵부답이다.

목소리 데시빌이 그녀들중에 가장 높은 여자가, 그것도 입만열면 시비버젼으로 말하는 그 여자가

아무 말이 없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도, 옷을 갈아입고 씻으러 가면서도...도대체 아무 말이 없다.

화장실 사건을 빌미로 그녀를 놀리려던 셋은 머쓱해지다가, 침울해 진다.

목에 침 넘어가는 소리마저 크게 들린다.

그 여자가 자기 방문을 닫고 꼼작하지 않는다.

셋은 눈을 마주치다가 움칠하며, 똥얘기를 쏙 집어넣고 만다.

그리고는 닫힌 방문을 살짝 열어보며,

 

 

'맥주 한 잔 할래?'

'..... '

 

'먼 일 있나?'

' ..... '

 

'아프나?'

'......'

 

'그냥 잘래?'

' 어.....'

'그래, 그럼 푹 쉬어~'

 

'이거~ 아무래도 심상챦은데...'

 

다음날이 되었다.

그 여자가 아직도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출근투쟁을 가야 할 시간인데, 준비를 하지 않는다.

 

'똑! 똑!'

문을 열고는,

'출투 안가나?'

'어...'

'밥 먹자'

'안 먹을란다'

'더 잘래?'

'어...'

'그래, 그럼 더 자~'

 

아무래도 이상하여, 그 여자와 함께 하루를 있었을 것 같은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어제 혹시, 먼 일이 있었나? 가가 아무래도 이상해서...아무말도 안하고 드러누워서

꼼짝을 안하네..'

'사실은, 어제 회의를 했거든...출투 문제로 이야기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출투 문제를 현실적으로 정리하자고 하고,

갸는 그냥 계속하자고...하다가...그걸로 아직 그러더나?'

'으~음...그랬구나. 알겠다. 잘 있어라'

 

전화를 끊고 그 여자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여자는 해고자다.

파업으로 해고가 되어 벌써 몇년째다.

10년 넘게 공장생활을 하면서 아둥바둥 모아두었던 서푼의 미래를 생활비로 다 쓰고 있는 중이다.

아르바이트를 가끔 하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 만빵에다 자신에 대한 회의가 또 만빵인 그 여자의 불안증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그 여자는 출근 투쟁이라는 걸 한다.

회사와 조합원들에게 해고의 의지를 알리고, 복직을 요구하며 자신의 의지도 세워내기 위해

동료해고자들과 함께 날마다 정문에 간다.

피켓을 들고...

 남보다 앞장서서 뭔가를 책임지기를 또 죽으라고 싫어라 하는 그 여자가

그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그 놈의 출근투쟁이다.

그 여자에게는 그것이 존재근거와도 같았다.

지지리 융통성도 없는 그 여자는 같은 동료들이 현실적으로 출근투쟁을 정리해서

월 1회 정도만 하자는 의견에 극렬 반대를 했을 것이고,

그러다, 현실론을 택하기로 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원칙론이 핀잔을 들었거나, 무시당했을 수도 있다.

 

다시 저녁이 되었다.

맥주를 좀 사왔다.

그 여자가 진즉에 일어나서 꼼지락 대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서 어제의 '똥 사건'을 이야기한다.

웃음을 터트린다.

맥주 한잔을 따라주며,

' 어제 회의에서 뭐 안좋을 일 있었나?'

그 여자가 좀 회생했다. 데시빌이 슬쩍 높아진다.

'그래, 그게 너야~'

키득키득...

어제 회의는 이런 내용이었다.

 

 

2.

 

"자~ 다들 모였으니...출투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앞으로 어떻게 출근투쟁을 했으면 하는지, 돌아가면서 이야기 해봅시다"

 

"몇년째 해고돼 있다보니 집구석 꼴이 말이 아니다. 빚도 많고...마누라하고 사이가 자꾸 나빠지고"

 

"나도, 노친도 아프고...해서 노가다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맨날 출근투쟁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어쩌다가 한번이라도 결합할라하면 시간이 안맞고...맨날 미안하기만 한데..."

 

"여기 모두 그런 형편이다. 그라면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안되겄나. 할라하면 다 같이 해야

회사보기도 글코, 몇명만 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몰아서 한달에 한번 하는 기, 안 낫겄나?"

 

"무슨 말인교?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닌교? 좀 만 더 참고 할 때 확실하게 해야되는 거 아닌교?

그라고, 지금은 임투시기고 한데, 이 참에 느슨해진 출투도 강화해서 확실하게 좀 붙어줘야 힘이 생길 거 아입니까?"

 

"니는 책임질 가족이 없으니까 몰라서 그러는 기다. 남자들은 다르다. 아~새끼들은 자꾸 크고,

마누라는 찡찡대고 , 사는 기 지옥이다. 좀 안정시키고 하면 될 거 아이가?"

 

"뭐라고요? 나도 내 생계는 내 밖에 책임 질 사람 없심더! 나도 모아논 돈 다 쓰고 하루하루가

풀칠이라고요. 나도 미래가 불안함더. 생계 중요한 거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래도 지금은 집중할 때

아닌교?"

 

"아니, 그렇게 원칙적으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러면, 몇명이 출투를 하고

돈버는 사람들이 돈거둬서 그 사람들 활동비 좀 주면 안되나? 그렇게 나눠서 하면 되지?"

 

"복직을 누가 대신하능긴교? 그래되면, 돈 만 내는 사람은 맨날 그렇게만 할거고,

그래서야 힘이 생기는교? 돈받고 투쟁하는 사람은 책임만 더 무거워지지...그냥 할 사람은

계속 하고, 안되는 사람은 나중에 결합하던가요, "

 

"그래, 니는 원래 투사아니가? 우리는 사쿠라 니가 부담스럽다. "

 

"원칙만 내세우지 말고 현실적으로 생각합시다. 서로 부담주면서 할 필요가 있겠능교?

그라면, 거수로 합시다. 서로 입장은 얘기 되었으니까 손들어서 결정합시다"

 

그리고는 맥없이 손들기를 했단다.

그런데, 현재의 출투를 접고 월 1회 다같이 집중하자는 의견에 손드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결과가 나오기전에 이미 감정이 상할 때로 상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자의 말문을 닫게 한 건, 단지 그 결과가 아니었다.

손을 드는 이 중에 평소에 말이 통하는 같은 여자였던 언지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날도 낮에 출근투쟁을 하면서 오늘 회의에서 앞으로 투쟁을 강화하기 위한 준비를

이야기하자고 서로 말을 맞추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고, 근데 실제로는

그 여자만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고, 그 언니는 "그래, 뭐 이래저래 이야기해봐야 겠다"

였다고 한다.

 

배신감이 들면서 눈물이 나려했다고 한다.

"언니야!"

"뭐~ 나도 돈 벌어야 된다. 남들은 남편이 번다고 속편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벌써 몇년째고. 나도 해고되기 전까지 내가 벌어 내가 사는 사람이었는데, 남의 돈은 남의 돈이다.

거기다 맨날 농성이다 회의다. 늦게 들어가지. 남편앞에 떳떳하지 못하다."

 

그러고,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여자는 자기자신과 언니와 그 남자동지들의 말들이 섞여

화가 나고 억울하고 그러면서도 답답한 현실에서 무엇이 옳은지 ,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암담해진 모양이다.

 

그 성격에 스스로 혼자서라도 하겠다고는 하겠지만, 자기 자신도 흔들리고 힘들어

숨고 싶은데, 혼자 하겠다고 선언하고서도 그 뒤로 올 자신의 강박이

미리부터 두렵고 답답했던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하다가, 그냥 아무말들이 없다.

어렵게 몇마디씩을 거들뿐이다.

대충 이런이런 말들이 흩뿌려진다.

 

"그래, 현실은 현실인데 우짜노. 누구나 똑같은 조건과 똑같은 결의수준일 수는 없는 거 아니가.

집안 사정이 그러면 그걸 또 어떻게든 책임져야지. 그 집 부인들 생각하면 당연히...

그냥, 할 수 있는 사람, 결의가 좀 더 나아간 사람이 하는 거다. 그걸 보는게 불편해서

모두다 하지말자고 하는게 문제이긴 한데,

그냥, 니도 맘편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고...될 수 있을 때 결합하자고...

편케 맘 묵으라....

남자 만이 아니라, 여자도 남편돈으로 사는 거 불편해지고 주눅드는 거,

이해해주고....자기 삶이 필요한 가보다.

투쟁만이 삶이 아니니까....

몇년 째 해오는 일, 앞도 안보이고..."

 

그리곤, 맥주를 따른다. 거품이 넘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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