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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여자들, 젊으나 늙으나 노동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상처위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나와 나와 같은 여자들,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는 이야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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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6
    6년 만에 만난 친구 ms-2(2)
    짜루

6년 만에 만난 친구 ms-2

2.

내 피곤한 청춘을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동기와 결혼을 한다고,

결혼식장을 가보고

또 한참을 지나서야

사는 집에 가보았을 때

벌써 아이를 낳아, 시댁에 당당하게 맡기고 있었지.

직장생활에 충실하고 싶었던 그녀에게

낳기만 하면 길러주겠다던

시어머니는 그 친구의 너무나 당당한 태도로 인해

그 후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꼼짝없이 아이를 키웠다.

주말에만 데리고 왔다가 다시 돌려보내는 과정...

'우리 시어머니가 애 더 잘 키우신다'

라고, 뻔뻔(?)하게 말하던 그녀였다.

'야! 그래도 미안하다 아이가? 늙어가면서 손주까지 봐야 겄냐?'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거 가꼬 주눅들면 머하노?'

라던, 그녀.

간혹, 시누이나 시어머니가 비트는 소리를 하더라도

그녀는 꿍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그에 대한 고마움은 고마움대로 표현하더라도

절대로 관계에서 주눅들지 않는 모습.

 

3.

그녀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6년 만에 만나, 그동안 변화한 서로의 삶의 풍경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야! 결혼하고 처음 명절을 보내는데, 남편이라는 놈이 텔레비 앞에 딱 드러눕는기라.

완전, 와상 폼으로...열불이 터지지만, 뭐 하루만 참는다 싶어

어머니,,,이건 어떻게 하면 되요? 라며 상냥하게 말을 하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야야..쟈(남편)심심한데 과일이나 좀 깍아주라'하는기라...

딱 돌겠는기라. 바로 장갑벗고 기냥 집에 가뿟다 아이가.

나중에 남편이 부랴부랴 와서는

도대체 왜 그러냐면서, 어디서 배웠냐는기라..

그러니까, 내가 왜 그렇게 뛰쳐나왔는지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기라..

떠그랄꺼! 뭐? 어디서 배워?왜 내가 느그 제사상 때메 새빠지게 일해야 되는데?

니는 떡 드러누웠고? 나는 그래는 몬산다'

 

그래서, 당시 그들 사이에 이혼말이 오고 갔다고 한다.

시댁에서는 무슨 날벼락을 만난 것 처럼, 흥분했고

남편은 어쩔 줄 몰라 하고, 그녀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결국, 시댁에서 타협안을 내놓았단다.

다음부터는 같이 하자고..

그제서야 그녀는 너그러이

 '예..제가 바라는 게 그겁니다. 같이 하는 거 좋아합니다.

저, 공주아니거든요.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지요.'

라 했단다.

이제는  집안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는데

친척들이 오는 날이면, 어쩔 수가 없단다.

또 너그러이 ' 아~ 뭐 좋다. 평소에 남편이 많이 하니까, 요날만 봐준다'란다.

그것마저도, 친척들이 들이닥칠 시간되면

남편 델꼬 영화보러 가버리기도 한다고...

 

그래도, 시어머니가 고맙단다.

아이 다 키워주시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한 집에서 살면서, 직장생활하는 며느리를 딸처럼 돌봐준다고..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마다 쥬스 갈아주시고, 살림 다 살펴주신다고...

그래서, 용돈이나마 넉넉히 드리고, 때때로 여행도 함께 가잔다고...

 

직장에서도 그랬단다.

처음 직장들어갔는데, '이양! 미쓰 리' 이리 부르더란다.

'이양이 뭡니까? 직장에서 쓰는 호칭이 그게 뭡니까? 이름 불러주세요'

라고 했단다. 신입사원이...

그러다가, 그 다음에도 또 그러면 '아니, 치매가? 이름 부르라니까요'

라면, 그들은 입을 다물더란다.

확실한 기운으로 덤비니까 그들도 어쩌지 못한 모양이다.

지금은 제법 자리 잡은 중견 사원인데도

전직을 가니, 그곳 상사들이 남자사원은 이름을 부르더니

자신더러 또 '이양'이라고 부르길래

'이 무슨 호칭이 그따위냐'고 호통치고

'그럼 뭐라 불러야 겠냐'고 고깝은 소리를 하길래

'남자사원 부를 때 뭐라고 부르냐. 명함도 여기 있고 명찰도 여기 있다.

돈들여서 이런 거 왜 만드냐? ' 고 윽박질렀더니

더러워도 그들은 호칭을 변경하더란다.

여차저차 하여

남자 간부들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아 전출시킬 때도

'당신들 두고 보라. 내 가만 있지 않을 거다. 뭐 이런 쪼잔한 짓거리들이  있느냐'

고, 또 윽박지르고 나왔단다.

그래서, 그녀는 요즘 어떻게 복수할 지를 두고 고민중이다.

 

씩씩한 내친구...

그런데, 나는 그녀가 조금 걱정이다.

20년 가까이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중견간부에 오른 친구.

그녀의 목표가 임원이란다.

여태도 일에 묻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래서, 여성에게 봉쇄되어 있는 자리에 오르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우회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고

나머지는 옵션이라고...가정도, 남편도...

 

굳이 많은 돈을 쟁여놓고 아끼며 살지도 않는 그녀.

때되면 해외여행하면서, 에너지를 받고 사는 그녀.

가난한 친구를 만나, 평소 먹어보지 못한 비싼 음식을

팁까지 줘가며 사주는 친구, 그녀.

남편이 직장에서 명퇴하고 그 돈으로 온 가족 캐나다행을 감행한 그녀.

 

나와 너무 다른 삶을 사는 청춘을 함께 보낸 친구.그녀.

그래도 스무한두살무렵 만났던 그녀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묵직한 믿음도 있다.

그런데도, 이 사회의 중년 남성들의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으며

그 목표를 이루는 방식또한 그들을 닮아가는 듯하여,

삶의 목표가 승급이고 나머지는 옵션이라하니

슬그머니, 우려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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