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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츠_맑스와 엥겔스의 가족에의 재방문

맑스와 엥겔스의 가족에의 재방문
By Stephanie Coontz


토대를 이루는 것은 현대 가족인가 부르주아 가족인가? 자본주의, 사적 소유에서 … 부르주아 가족은 그것의 보완물이 사라질 때 그 과정으로써 사라질 것이며, 자본주의의 소멸과 함께 둘 다 사라질 것이다.


만약 맑스와 엥겔스가 유익한 의문들 대신, 이론가들과 활동가들을 위한 평범한 해답을 내렸다면, 가족에 관한 그들의 저작들은 오늘날 관심 받지 못했을 것이다. 충분치 못한 인류학적 데이터를 갖고 글을 썼으며, 그 당시의 전제들에 기반한 분석이었지만, 맑스와 엥겔스는 어떤 특정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가족의 범위를 포함한 가족 역사의 복잡성을 그룹 결혼, 한 쌍으로서의 결혼, 그리고 일부일처제, 세 단계로, 즉 혁명적 개요로 요약했다.


 그들이 19세기 부르주아 가족의 계급 기원과 역사적 특이성을 기록하는 것에 있어서, 그들은 그들의 시대를 넘어선 시각을 가졌던 반면, 개인의 부에 집중하기 위해, 메커니즘으로서의 가족에 관한 토론은 여성 운동의 영향을 포함해서, 부르주아 가족 내에서의 변화하는 경향들을 고려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또한 그들은 노동계급 가족의 동력과 다른 기원들을 탐구하지도 않았다. 


 엥겔스는 아내의 종속과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의 변화가 가난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고 올바르게 인식했지만, “여성의 성에 대한 세계 역사의 승리”- 남성의 재산을 생물학적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남성의 욕구-의 이유에 대해서는 관념적으로 판단했다. 플레하노프 이후 [역사에 있어서 개인의 역할]에서 지적했듯이, 역사의 경제적 이해는 역사의 유물론적 이해와 같지 않다. 왜냐하면 분석은 사람들의 동기와 생각의 수준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저 유토피아적인 것을 위한 목적의 냉소적 과제를 대신할 뿐이다.


 맑스의 초기 저작은 또한, 사적 재산의 근원을 “더러운 이기주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관념론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후, 맑스는 “더러운 이기주의”의 지배는-물론, 그것의 진짜 정의가-설명 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 지점에서부터, 그는 사람들의 욕망과 동기가 아닌, 애타주의나 이기심에서, 그러나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생산방식으로 들어가 있는 협업, 억압, 그리고 대립의 의도 되지 않은 결과뿐만 아니라, 생산과 교환의 사회적 관계에서, 현상과 사건들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계급 관계와 소외를 설명하데 있어서, 초기 헤겔주의적 관념론을 넘어 섰음에도 불구하고, 젠더 관계와 남성 지배 분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혀 적용하지 않았다. 


 나아가, 맑스와 엥겔스는 대부분의 성과 젠더의 상호작용은 일종의 본성이며, 그 본성은 문화보다 더 낮은 지위라는 구시대적 전제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첫 노동의 사회적 구분은 남녀간에 발생했다고 올바르게 언급했지만, 이를 섹스와 잘못 동일시 했으며, 가족에서의 노동 분업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잘못 제안했다. 따라서, 그들은 노동 분업은 “사실상” 오직 남녀간의 불화가 발생 할 때 만 주요한 문제가 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젠더 관계와 성의 체계를 생산력과 사회적 충돌에 관한 그들의 이론으로 구체화하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엥겔스와 맑스의 방법론에 있어서 두 가지 요소는 항상 가족 생활과 가족의 변화에 대한 풍부한 이해 방법을 지적해왔다. 하나는 재생산은 역사적 강요의 산물이며 그 자체의 역사적 강요라는 그들의 유물론적 시각이다. 이것에 결합된 것이 생산노동의 본질과 가치의 원천은 역사적으로 명확하다는 그들의 인식이다. 맑스의 노동가치론은, 그가 독특한 자본주의 현상으로서의 “가치”를 정의했다는면에서 뿐 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를 비판함으로써 가치를 분석했기 때문에 당시의 그것과는 다르다.


자본주의 하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과 교환되는 노동력만이 생산적인 노동이며 가치를 생산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만약, 그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그 가치는 인식 될 수 없으며, 심지어는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진다. 상품을 만드는 것과 대립하는 사회적 노동은 팔리지 않는 상품이라는 덫에 걸리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의 협업적 노력은 사물의 교환에 의해 통제되고 숨겨진다.


 한편, 인간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예를 들면, 양육이나 가족 형태의 많은 다양한 활동-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소외되고 가치가 없는 것이 되었다. 가족 분석에 있어서, 이 이론적 비약은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가족 연구에 있어서 맑스와 엥겔스의 두 번째 기여는, 단지 기술적 지배가 아닌 계급 분석의 핵심에 놓은 사회관계에 관한 변증법적 주장이다.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맑스는 “특정한 생산 양식, 혹은 산업 단계는 언제나 특정한 협업양식 또는 사회발전단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 협업 양식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생산력이다’”라고 말했다.


 협업 방식-혹은 억압-은 계급을 정의하고 사회 변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비판적이다. 그리고 인종과 젠더와 같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다른 관계들과 함께 가족은 협업과 억압을 구성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그것들은 또한 특정한 공정과 사회적 시스템을 지속시키는데 필요한, 그러나 또한 그 공정 혹은 사회적 시스템을 위태롭게 하며, 선천적으로 대립이 발생하는 맑시스트적 개념에 부정되는 부분들이다. 


 이러한 시각은 가족에 대한 더욱 깊고 풍부한 이해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알려주며, 오늘날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 가족 내에서의 남성 특권은 존재하지만, 남성은 이 사회에서 노동자의 삶이 그들 자신을 재생산 할 수 있다는 것(이혼 이후 가난에 대한 통계가 보여주듯이)을 넘어선 수준에서, 동시에 노동을 전유하고 여성과 아이들로부터 복종을 얻어냄으로써 그들을 부양한다. 가족에 관한 적당한 이론적 설명은 내외부적으로 가족 구성원을 위한 물질적 재원의 사용을 극대화 하고, 권력과 보답의 불평등한 분배를 정당화 하는 것에 있어서 가족의 역할간 긴장을 구체화해야만 한다.


그러한 이론은 재산, 권력, 자주성에 우선해서 가족 내에서의 투쟁과 가족 구성원의 이권을 촉진시키거나 다른 그룹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연구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다른 계급과 인종간의 가족 형태와 기능에 있어서의 다양함을 망라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족 생활의 이중성을 설명해야만 한다. 오직 그러한 접근만이 현재의 미국의 “가족 위기”를 포함하는 복잡하고 모순적 과정을 이해하도록 한다.
과거 30여년 간, 젠더롤과 나이에 따른 역할에서의 오랜 변화, 문화적 규범, 그리고 테크놀로지는 아이들이 자라고 세대간 재구분이 발생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결혼의 중심적 역할을 파괴하기 위해 전후 임금과 가족 거래의 붕괴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러한 변화는 억압적 유독적 가족의 상황으로부터 많은 개인들을 해방시켜왔다.


 그러나 동시에, 그 변화들은 어떻게 독립성을 걱정하고 사람과 사람간의 약속을 소중히 할 것인가를 넘어선, 현대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의 일부분이다. 사람들은 가족과 그들 개인의 삶에서 처음 위기를 느끼는 경향이 있다. 종종 그들은 잘못, 그러나 당연히, 이들 변화와 관련된 고통을 “전통”가족 연대의 붕괴 탓으로 돌린다.


 우리는 “잘못된 의식”인 그들의 의식을 그대로 둘 수 없다.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기후에서, 부르주아 가족, 특히 여성 운동에 의해 민주화된 부르주아 가족은 많은 노동자가 동경해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질의 삶인 것처럼 생각된다. 동시에 대부분의 노동자는 노동과 가족의 삶에서 긴장을 갖고 산다. 그 긴장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 시킬 수 없는 가족을 떠나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만들어낸 뒤얽힌 감정적 정치적 양면성은 슬로건으로 해결될 수 없다. 가족에 대한 논쟁과 투쟁은 맑스가 [루이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18일]에서 비슷하게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분석했던, 약간의 차이만이 있는 모순과 우연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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