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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들, '드러누워 보는 상영회'에 가다

 

월드컵 토고전이 열리던 6월 13일, 거리의 붉은악마들 사이를 비집고, 대학로에 위치한 나루감독 집에 블로거들이 모였다. 이유는 영화 '쇼킹패밀리'를 보기 위해서다. 어찌어찌해서 나루감독이 블로그에 '쇼킹패밀리'를 보자고 제안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쇼킹패밀리'는 여성영화제와 인권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는데, 여성영화제 때는 표가 매진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인권영화제 때는 시간이 나질 않아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게다가 감독까지 온다하니 만사를 제쳐두고 가야지!

 

드러누워 영화를 봤다구!


맥주를 몇 병 사들고, 영화가 상영되는 나루감독의 집으로 가니 아는 얼굴도 있고, 블로그에서만 만난 이들도 있고, 전혀 모르는 이들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모인 9명이 나루감독의 마루에 앉아 인사를 나누고, 나루 감독이 차려준 밥을 먹은 뒤 상영료도 걷었다. 이제 영화볼 준비는 끝났다. 모두들 TV 앞으로 모였다. 영화는 상영되기 시작했다. '쇼킹패밀리'가 전하는 이야기에 푹빠져 있는 동안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잠시 뒤로 빠져 담배를 피기도 하고… 영화제 같은 곳에서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며 영화를 보다가, 심지어는 드러눕기까지…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드러누워 보는 상영회'가 되었다.

 

경순, 세영, 경은에게 박수를…


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 중 감독, 카메라를 담당하는 세영, 사진을 담당하는 경은의 이야기를 담았다. 혼자 딸 수림이를 키우며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혈연 중심의 가족'이 아니고서도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을 알아가고 있는 수림이와 경순 감독의 이야기. 대기업을 다니며 소위 잘나가는 가장이었으나 IMF 때 명예퇴직 되어 무능한 가장이 되어버린 세영 가족의 이야기. 결혼하기 전에는 죽을 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했으나 결혼 뒤에는 자해를 할 만큼 고통스러운 삶을 보내야 했던 경은의 이야기. 영화는 이 세 명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족'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또한 이 세 명의 이야기말고도 호주제, 입양 문제, 과다교육열 등에 대해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특히 이 세 명의 이야기 중 세영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만났다. 언니도, 아버지도 대기업을 다녔던 집안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취직할 생각이 없는 세영 처럼, 취직도 안 하면서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는지, 무슨 노동자인지 뭔지 데모질 하는 잡지를 만드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부모님은 나를 눈에 가시처럼 여긴다. 나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부모님은 늘 "그래도 어떡해? 가족인데 쫓아 낼 수도 없고, 보기 싫어도 데리고 살아야지…"라고 하신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대체 가족이 뭔데?'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한 나는 '가족'과 관련된 책을 마구잡이로 읽어대고, 가족을 해체해야 한다고 난리 부르스를 쳤던 적이 있다. 집을 나간다고 큰소리 텅텅 치다가도 돈이 없어 결국 독립하지는 못해, 그것이 분에 겨워 술 먹고 집에 들어가 술주정을 부렸었다. 그러나 독립했던 세영이 다시 집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나는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이지만 관계형성을 다시 했다. 이제는 집에서 나가라고 해도 '절대로 안나간다'고 한다. 부모님 역시 이제는 내 삶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가족이라면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인생극장' 같은 데서 눈물 질질 짜는 그러한 가족관계를 벗어나 서로의 삶을 살아가는 그러한 관계로 재구성 된 것이다.
경순, 세영, 경은 역시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경순은 딸과의 관계에서, 세영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경은은 남편과 시집식구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한 삶을 선택한 그녀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맥주를 마시며 영화 뒷이야기를 나누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조촐하게 마련된 술자리. 맥주 한 잔씩 따르고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본 이들 중 누구는 수림이에게서 자신을 보고, 누구는 세영에게서 자신을 봤다. 그러다 궁금해진 영화 뒷이야기. 별거 중이었던 경은은 남편과 이혼을 하고, 한창 자신만을 위한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고등학교 가면 독립하겠다던 수림은 나처럼 돈 문제가 걸리자 독립을 안 한다고 선언했단다. 영화에 출연했으니 출연료로 옷 두벌을 달라던 수림의 제안에 경순 감독은 동의했는데 그 옷이란 것이 10만원 상당의 메이커 있는 옷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할 줄 어찌 알았던가? 어쨌든 수림은 그 기준이 되는 옷 한 벌 값을 가져가 여러 벌을 사와서는 한 벌만 남았다고 다시 돈 받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세영의 엄마는 영화를 보고 나서, 속옷차림으로 나온 것이 신경쓰여 무척이나 쑥스러워 하셨단다. 가장역할을 하고 있는 세영의 언니는 영화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떤 내용을 나왔을지 예상하고 뒤풀이 자리에서 부모님을 옹호하느라 바빴단다. 그 모습이 상상돼 웃음이 나오다가도 '가장'의 성질이 묻어 나오는 그녀의 행동이 안타깝기도 하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편하게 나눌 수 있다는 것, 함께 한 이들이 자신들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누워 보는 상영회'의 큰 장점이 아닐까?

드러누워 보는 상영회는 계속된다
'모여서 좋은 영화 한편 보자'고 했던 이번 자리가 즉석에서 '드러누워 보는 상영회'로 이름 붙여지면서 다음에도 이런 자리를 갖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나루감독의 '돌 속에 갇힌 말'을 보기로 했다. 서로 모르던 이들이 이렇게 관계를 트고, 좋은 영화도 보고, 서로의 이야기도 나누고… 사람 사는 세상이 그래서 좋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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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쓰레기장에서 나와서 세상좀 보니까, 더 큰 쓰레기장이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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