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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윈도우 라이센스 정책 변화와 리눅스에 대하여

  • 등록일
    2005/03/10 14:46
  • 수정일
    2005/03/10 14:46
** 동네주민 게시판에 들어가 몰래 훔쳐왔습니다. 글이 좋아서... [글] 윈도우 라이센스 정책 변화와 리눅스에 대하여 kldp에서 논의가 있어 올렸던 글입니다. http://bbs.kldp.org/viewtopic.php?p=234501#234501 --------------------------------------- 주제: 윈도우 구매 고객도 늘어나도 리눅스 쓰는 사람도 늘어나겠지요 윈도우 구매 고객도 늘어나도 리눅스 쓰는 사람도 늘어나겠지요. 윈도우 구매 고객은 주로 기업시장에서 더 많이 늘어날 것이고 윈도우에 익숙한 개인도 등록을 하는게 늘어나겠지요. 이와 더불어 기업시장과 개인적으로 리눅스를 쓰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고 윈도우 고객 성장률보다 더 높을 것 같습니다.


MS를 그냥 심적적으로 미워하는게 아니고 MS가 지금까지 성장을 해온 역사는 남의 소프트웨어 빼앗고 자본주의적인 도덕성(?)에도 걸맞지 않고 OS의 독점력을 이용한 횡포를 통하여 발전해왔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미법무부등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MS와 싸우는 사례에서도 드러납니다. 독점으로 인하여 오히려 자본주의가 계속 발전을 하는데 저해가 된다면 이것을 막자는 것이지요. 한편으로 윈도우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패러다임이라고 할까요? 이러한 것들이 변화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과 정보의 대중화, 리눅스와 공개소스의 발전등으로 인하여 이제 개별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서비스가 중요한 비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IBM등 굴지의 IT기업들이 리눅스를 지원하는것도 리눅스가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구매, 사용, 지원등이 변화되고 있기에 거기에 조응을 하는 것이지요. 벤더입장에서는 리눅스 등 공개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소프트웨어개발에 대한 부담을 덜고 이것을 이용한 서비스에 더 주력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OS에 대한 생각을 해볼때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필수요소라고 했을때 하나의 공공재 성격을 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바뀔수는 없겠지만 OS가 가진 공공재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지금처럼 기업에서의 OS지원이 아닌 국가나 정부, 지자체등에서 정책을 가지고 지원을 하는 형태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 MS등 자본측에서의 엄청난 공격을 해오리라는 예상은 들지요. "반자본주의적"이라는 이유로. 그러나 중국이나 유럽등에서 MS소스공개를 요구하여 일정부분 비밀로 한 상태에서 들어주고 있고 제3세계국가에서 공개소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OS가 가진 성격때문에 특정한 기업에 종속되는 경우 더 큰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게 되겠냐고 의문을 가질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반드시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고 또 꿈이 있으면 그 꿈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꿈이 실현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실현할 가치가 있다면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을 하구요. 음. 제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만 했나요. 쩌업~ _________________ 문태준 http://tunelinux.pe.kr http://database.sarang.net ============================================== dsn의 다른 분 답글에 제가 다시 올린 글입니다. 저도 리차드 스톨만의 글은 읽었습니다. 내용은 동의를 하지만 그러한 근거를 가지고 "공산주의자"라고 역으로 비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빌게이츠가 비판한 것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기 위하여 썼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이미 공산주의자는 나쁜 것이다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우익(극우보수수구꼴동세력)이 판쳤던, 판치고 있는 사회에서 좌파다라고 빨갱이라고 하면서 모든 토론과 대화는 멈추고 마녀사냥을 하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았지요. 리차드 스톨만은 체제자체에 대해서는 저항을 하지 않지만 비자본주의적인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그게 잘못되었다 그런 말은 아니고요. 사람마다 자기 이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이지요.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이윤의 논리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하는것들을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라고 공격을 하는게 많고 리차드 스톨만의 이념적 지향이 공산주의자는 아니기에 위와 같은 식으로 글을 썼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사회적인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이것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리누스 토발즈의 부모님이 공산주의자였을 것입니다. (본인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자료를 최근 본 것이 있는데 아직 인터넷에는 올라오지 않아서 여기 링크를 걸지 못하네요. 리누스 토발즈가 커널 을 개발하고 그것을 인터넷에 올려서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개인만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고 있던 사회적인 분위기와 가정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리누스 토발즈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어쩌면 리눅스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고 아예 안 나왔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해서 리눅스가 나왔을 수도 있겠지요. 리누스 토발즈의 이념이 어찌하든 정보를 공유하고 그것을 함께 개발해나가면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문화적, 사회적인 풍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기가 판단하고 생각하여 진행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무의식적인 뒤에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지요. 우리가 모든것을 상품으로서 구매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또다른 사회체제에서는 이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지요.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병원과 학교에 돈을 내고 가야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영국이 자본주의국가이지만 의료는 무상으로 제공을 하는데 이러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오면 당황스럽겠지요. ===================================== 그 대안중의 하나가 사회주의, 공산주의였지만 현실의 사회주의국가들은 몰락한 곳들이 많았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6.25 전쟁으로 인하여 남한에서 좌익은 몰살을 당했기에 좌파의 이념과 논리가 다시 등장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87년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통하여 좌파가 다시 역사적으로 복원되었지만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90년대는 이념의 동요시대였습니다. 거꾸로 80년대 사회주의운동을 받아들였던 쪽에서는 하나의 종교처럼, 성경처럼 맑스레닌이즘을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요즘 책들을 보면서 다시금 현실사회주의운동에 대하여 비판적인 고찰을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보고있는 것이 "유예된 유토피아, 공산주의"라는 책인데 기존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와함께 소련 등 현실사회주의국가가 무너졌지만 그 이념적 지향, 자본과 이윤의 논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 연대로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던 그 부분들은 결코 잊혀지면 안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사회주의라고 하면 무조건 중앙집권적인 당독재, 계획경제만 알고 있는데 꼭 이런것만은 아닙니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90년대 자본주의가 펄펄 날아갈것 같았지만 2000년대 자본의 세계화에 대항하여 새로운 운동의 흐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면 맑스와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의 논리는 계속 살아서 생명력을 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음. 기술관련된 사이트에서 이런 이야기도 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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