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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아

부산에 교육이 있어 다녀왔다. 그놈의 ktx덕분(난 고속열차가가 싫어, 이놈 때문에 더 바빠졌어)에 오후 4시에 출발해서 1시간 30분 교육하고, 서울오니 00:20 사무실에서 차빼서 집에 오니 01:00,내일 06:00에 일어나야하니까 자야되는데 잠이 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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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불

장작불

 

백무산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 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른 놈은 단단한 놈을 도와야 해
단단한 놈일수록 늦게 붙으나
옮겨 붙기만 하면 불의 중심이 되어
탈 거야 그때는 젖은 놈도 타기 시작하지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몇 개 장작만으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장작은 장작끼리 여러 몸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여러 놈이 엉겨 붙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을음만 날 뿐이야
죽어서도 잿더미만 클 뿐이야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장작불 막 나의 의식이 해방을 꿈꾸기 시작할 때 만났던  나를 열광시키던 시 , 백무산 언제나 박노해가 겹쳐졌던 노동자 시인

 

그는 이미 오래전 시를 쓰지 않았고

나는 아직도 해방을 꿈꾸는 걸까? 실천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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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마우스 쓰기

오늘 부터 마우스를 왼쪽으로 달았다.  왼손잡이라서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오른쪽 손목이 아파오고 저리고 무겁고 즉 "근골격계 직업병"에 걸린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로 작업하고 컴퓨터로 놀고 컴퓨터로 뉴스보고 등등을 하다보니 VDT증후군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나참

 

근골격계 직업병을 치료하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작업자세, 방법 등을 개선하는 것 즉 인간공학적 개선방법과 단위 시간 당 또는 총 량적인 차원에서 일의 량과 처리시간 등을 줄이는 방법 즉 노동강도 완화 방법이다.  마우스를 왼쪽으로 바꾼 것은 인간공학적 개선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공학적 말은 엄청난것 같은데 별거 아닌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부족하다.  높낮이 조절 가능 의자, 또는 책상도 필요하고, 책상도 공간이 파인것으로 하고, 발바닥을 놓는 곳도 적당해야하고...) 문제는 노동강도를 완화해야하는데  이것에 자신이 없다. 일도 줄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알고보면 순수하게 일만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만 컴퓨터로 하고 나머지는 야외활동 또는 이에 준하는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한편 치료 역시 병행해야 하는데  이것은 분명 노동재해인데 즉 산재보험처리를 할 수 있는데 그럴려면 내가 법상 "근로자"여야 하는데 이런 !  내가 법 상 "근로자"가 아니네. 쩝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 근데 이짓도 컴으로 노는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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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여 슬퍼마오

 

5개월 만이다.  서로 반갑다고 악수하고 웃음을 주고받는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물어 볼라고 했던 것 다 물어보겠다고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참 성실하고 착하게 생긴 이 양반은 모 유통사업장의 위원장이다. 나이는 내 연배쯤이고, 부인이 있고, 새로 태어날 아기가 있다.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는 내내 우울한 이야기 뿐이다. 자본은 여전히 철벽같고, 반대로 조합원들은 의기소침 하다. 조직 대상은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사업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보니 비정상적으로 이직율이 높아 이도 쉽지 않다.  최근에는 하나 뿐인 채용상근자는 여러 사정으로 그만두었단다.  같이 하겠다는 사람을 찾는데 여의치가 않단다.


위원장이 되기 전에 한참 투쟁을 할 때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는데, 요즈음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야 겠단다. 그러면서 점점 ‘관료’가 되가는 것 같다고 자신을 책망한다. 또 그러면서 세원테크가  생각난다고.... 


격렬히 투쟁할 때 같이 했던 이들이 있었단다. 그때는 세상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관계가 힘든 적도 있어 지만 여러모로 많은 힘이 되었단다. 지금은 그들이 없다. 이러저러 한 이유로 다른 사업장에서 그때 그런 일하거나 모색한다고 . 가끔은 전화 통화를 하는데 여전히 힘들게 싸우고 있단다. 그러면 그이들에게 “왜, 빗겨가지 않고 정면으로 사냐” 고 “힘들게 사는 게 꼭 올바른 것이냐”고 질타 반  원망 반 그런단다. 그러고 나면 참 아프고 자신이 밉고 그렇단다. 자신의 삶은 자꾸 우회하려는 것 같아 답답하단다. 급기야 이 양반 눈가가 붉어진다. 참 속상하고 외로운가 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투쟁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이야기 내내 내가 이 양반을 위로할 수 없어 안타깝고, 자본이 증오스러웠고, 그래도 ‘참 성실하고 착하게 생긴’ 이 양반이 있어 기뻤다.


애가 끊어지고, 간이 녹고, 심장이 오그라들 때는 패배했을 때가 아니었다. ‘참 성실하고 착하게 생긴’ 이들이 자신을 탓하면 떠나갈 때였다. 실상 그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본의 포악함과 더불어 남아있는 자들의 부족함이기도 했다. 난 이양반의 손을 잡고 싶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메며, “아유 아무튼 열심히 해야죠” 한다. 우리는 또 그렇게 열심히 할 것을 다짐이랄 것 없는 다짐을 하고 헤어졌다. 


 

벗이여 슬퍼마오

젖은 소매 마를 날 있으니 온 누리 마른 풀 저마다 소리쳐 푸른 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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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운수좋은 날

 2005년 1월 12일, 수요일, 맑고 차갑다. 해고투쟁 648일째 >


모처럼 운수좋은 날이


김명배 조직부장이, 천막투쟁을 하면서 생계문제로 녹차와 커피 화장지를 판매해왔었다.
익산군산축협 앞에다 가판을 만들어서 오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하여 장사를 하였고 더러는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강매하기도(?) 했었다.
오늘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화장지가 퍽 많이 팔렸다. 화장지를 판매하기 시작한 이후로 일반인을 상대로는 가장 큰 수익을 올린 날이었다. 약 사만 오천 원의 수입이 발생했으니 해고투쟁을 하면서 올린 수입치고는 제법 짭짤치 아니한가. 오늘 같은 날이 흔치않아서 조직부장이 매우 좋아했고 다른 지부원들은 한턱내라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는 모처럼 환한 표정이 되어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자신 있게 받는다. 통화하는 걸 엿들어보니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녀석의 목소리인지 "아빠 나 잠들기 전에 통닭 사 가지고 와" 하며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화장지의 재고가 맞지 않는 모양이다. 두 꾸러미가 부족하단다. 오가던 사람 중에 누가 슬쩍 집어갔을까? 아님 팔면서 제대로 셈을 하지 못했을까? 모처럼 운수좋은 날이 그냥 그런 날이 되고 말았다.
내색은 안 했지만 조직부장은 씁쓸한 뒷모습을 남긴 체 집을 향해서 출발해야만했다. 아들이 부탁했던 통닭은 잊지 않고서 집에 사들고 들어갔을까?
찬바람이 감도는 천막에서 앉아있자니 쓸쓸함이 더하면서 오늘은 유난히 가족의 훈기와 사랑이 그리워진다.

 

 

 

*** 나하고 이래저래 관계가 있는 동지들이다. 김동지와 아이가 이날 맛있는 통닭을 먹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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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는 법

담배를 끊은지 2년하고 18일째 되는구만. 내가 이렇게 날수를 명확히 아는 것은 2002년 12월 30일에 결심하고, 31일부터 끊었기 때문이지.  엊그제 뒷풀이를 하다가 블러그를 만들었다고 하니까 금연방법이나 올려보라고 해서 "음. 괘안쿤"하는 생각에 일은하기 싫고, 그냥 멍하니 있자니 그렇고 해서 나의 금연기를 올려볼란다.

 

우선 담배를 끊을려면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 담배를 배울때 명확한 목적의식이 없었기에 더욱 더 그렇다. 보통 "남이 피니까", "멋있어보일수 있을 라나", "스트레스를 풀수 있을려나",  "공짜로 주니까" , "왕따를 면하기위해", "호기심에" 담배를 배우게 된다. 보통 이러한 공동체가입 열망과 무모한 별 생각없는 동기에 의한 흡연에 대해 단순히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라는 금연 동기는 무력해지기 십상이다. 때문에 원초적 열망을 일소할 수 있는 명확한 목적의식 예컨대 "이성친구 발목잡기(금연하면 결혼해준다는 둥)"라든가, 기도 및 폐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든지(병명을 알수 없는 경우가 더욱 더 좋다. 증상은 있으나 병명을 모르니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키우는 아기가 언제가 나를 멀리하기 시작해서 그것을  참을 수 없다던가. 자식한테는 금연하라 그러고 자기가 피는 것이 부모의 도리가 아님을 깨우친다든가 아니면 정말 돈이 없다든가, 마지막으로 금연 빌딩 63빌딩 중 63층이 일터 라든가, 아무튼 누가 들어도 수긍이가고 자신도 수긍이가는 그런 정황과 목표가 필요하다. (반대로 흡연의 시작이 목적의식적인 자, 예컨대 성차별의 저항, 담배로 인한 폐암 사망 인체증언, 담배연기로 도넛및 다양한 것 만들기 등등,  반대로 별다른 이유없이 그냥 끊는 것이 방법이다)

 

둘째로, 끊는다고 결심했을때  바로 끊는 것이다. 라이타, 남아있는 담배는 주위 사람에게 미련없이 줘라. 하루 하루 흡연량을 줄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금연초에 의지하는 것은 차선일 수 있는데 이 역시 바랍직하지 못하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금연의 적은 니코틴 중독이 아니라 습관이기 때문이다.  습관을 없애야만 차후에 흡연 욕구가 있어도 이겨낼 수 있다. 나같은 경우 금연할 시점이 끽연 근 20년차 였다. 그러니까 니코틴과 타르 그외 규명되지 않은 유해물질이 나의 몸 곳곳에 찌들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담배가 피고 싶다. 그래서 담배를 핀다. 어디서?  꿈에서! (정말 꿈에서 피는 담배는 맛있다)신체가 아직도 열렬히 니코틴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도 담배를 어렵지 않게 멀리할 수 있는 것은 습관을 바꿨기 때문이다.  흡연의 욕구가 있을때 주로 물을 먹으면서  버텨내고, 일하기전, 휴식 중, 일끝나고, 스트레스 받을 때, 무료할 때, 외로울때, 슬플때, 기쁠때, 서러울때, 잠자기전 등등 담배와 대체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데 습관이 금연의 주적이다.

 

셋째로  주위에 널리널리 알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효과적이려면 본인이 약속과 신망 그리고 명예 등등을 소중히 여기는 자일때 가능하다. 이런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자는 주위에 알리고 나서 금연이 좌절되면 "개무시"를 당하게 되고, 이것을 충분히 감내하기 때문이다.  한편 주위 환경에 있어 시기와 질투 또는 남의 의지 무력화하기 생활화로 점철된 사람들로 가득차 있으면 실패하기 쉽다. 이럴때는 오히려 숨겨라!

 

넷째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 금연을 우습게 보지말라. 보통 금연에 성공못하는 자들은 죽을 정도로 피고싶은 경지에 가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경지에 가보기전에 금연을 포기하고 한대 피우니까. 금연은 대단히 어렵다. 난 정말 어려웠다. 정말 피고 싶어 미칠것 같았다. (그래서 명확한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꿈에서 피우겠는가. 술마실때, 정말 너무 속상할때, 애가 끊어질것 같을 때, 그러나 이과정을 못 넘기면 금연할 수없다. 왜냐면 이럴때 담배는 정말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해서 가급적 술자리를 피하고, 슬픔과 가슴아픔을 덜 느끼고, 외로움을 덜 느끼고 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

 

가능하지 않다면 시기가 중요하다. 다섯째, 가장 행복할 때 금연을 결심하라. 가장 좋은 조건에서 금연하라. 인생은 영 그지 같은데 담배까지 끊으면서 힘들필요가 있는가? 가뜩이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그나마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를 버릴 필요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금연은 진행형이지 완료형이 아니다. 언제나 흡연의 욕구가 있다. 그런데 난 지금 적어도 금연이 흡연보다 좋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무엇이든지 관리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말짱 황이다. 물론 금연 기간이 길어질 수록 처음보다 훨씬 흡연의 욕구가 줄어들긴 한다.   한대 정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버리자(사실 가끔 한대정도는 괜찮다.그런데 뒷감당이 힘들다)

 

2005년 담배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분들 모두모두 성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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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부담가중 핑계 현실거부증후군 또는 과민성플레이 증후군

아! 미치겠다. 이번주 내내 "난 무진장 할일이 많아"라고 혼자 되뇌이며 일주일을 쫄이며 보냈건만  정작 한일이 영...   아 근데 할일이 많을 수록 정말 일하기가 싫고 더욱 더 놀고싶은 것이다. 분명 정신병적인 질환이다. 예컨대  "업무부담 가중 핑계 현실거부증후군" 이거나 "과민성플레이증후군"이런 것은 아닐까.  겨울방학 숙제를 온몸으로 끌어앉고 방학내내 우울하게 보내는 초등학생 같은 "튀어나오고큰입".  아 근데 이런 상황에서 덜커덕 또 일을 하나 맡았네, 이건 "거부불능 과친절 증후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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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그? 블러그!

진보넷하고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마 진보넷이 창립하던 시절일 것이다. 그때  모단체의 사무처장을 할 때인데 우리 cug를 진보넷에 만들고 회원에게 아이디를 만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만원인가 이용료를 냈던 것으로 기억난다. 물론 지금도 회원은 1만원 정도를 내고 있지만 그때는 모두 냈었다. 암튼 나우누리 다음에 가진 아니디가 진보넷이고, 그때는 진보넷 일꾼 들하고 친한척도 하고.... 그런데 어느날 진보넷이 인터넷버전(이 표현이 적절한 건가?)으로 바뀌고 난 오히려 다른 포탈사이트를 더 이용하게 되었다. 진보넷이 상업적이지 않은 관계로 여러가지 불편함이 있고, 급기야 요즈음 진보넷 메일을 버렸다. 내 잘못이겠지만 스펨이 감당이 되지않아서 이제 수신 멜을 바꾸고, 공동체나 진보넷 방송국만 이용한다. 이러다 보니 진보넷에 미안한 거다. 뭐 순전히 나혼자 미안한 거지만. 또 암튼 해서 블러그라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난 블러거나 미니홈피등을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한다기보다 누가 내 속내를  보는 것 같아 찜찜한 거다. 그만큼 꿍꿍이가 많은가 보다. 05년에는 좀 바꿔보기로 했다. 내 꿍꿍이를 밖으로 내어보려 노력할 거다.  꿍꿍이가 많다보니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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