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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날 받은 편지

   어떤 노동조합 산안국장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수년간 세척제로 인해 후각상실이 된 두 분에 대해 업무상 산재로 인정이 되었다는 연락이 지난주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용접과 절삭유 등에 노출되 폐암 판정을 받은 분과 하지정맥으로 수술받으신 분은 아직까지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분들도 교수님의 덕분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믿습니다."



  여기는 '내 사업장'이 아니다. 나는 회사로부터 보건관리를 위탁을 받아 사업주가 법적 기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현장에 필요한 전문 기술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고 , 이것은 내가 월급을 받고 하는 병원의 업무이다.  산업의학의사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든 조직적으로든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꽤 있지만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데, 이 노동조합이 속한 지역에는 이 문제를 상의할 수 있는 산업의학 의사가 없다고 해서 엉겁결에 떠맡은 일이었다. 

 

  워낙 큰 작업장이라 순회점검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노조위원장이 된 당시 산안국장은 방통대에서 산업위생과정을 다시 공부할정도로 열성적인 사람이어서 인상깊었다. 노조 사무실에서 건강상담을 했는데 사내 운동회에서 있었던 손상에 대한 산재보상신청이 기각되었던 사람에 대해서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해 난처했었던 기억이 난다.

 

  맨 마지막에 무후각증 환자가 왔는데 곧 정년을 앞둔 연세 지긋하신 아주머니였다.  일상적인 문진이 시작되었다. "증상은? 증상발생은 언제부터? ......그 외에 다른 증상은 없나요?"

 그 때 갑자기 아주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그 분은 내가 그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느낀 것 같았다. 사실 내 태도는 건조한 것이었고 그 분이 냄새를 못 맡아서 겪는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이 없었다. 무후각증은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사례였고 의대에서 배운 기억도 없어서 가기전에 다시 교과서를 찾아본 질병이었다. 냄새를 못 맡게 되면서 그 분의 세계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정찬의 냄새에 관한 소설을 읽으면서 그 때야 내가 얼마나 메마른 자인지를 깨달았다)

 

 그 뒤로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먼저 임상적 진단의 확정이 필요한데 내가 소개한 우리 병원 이비인후과 의사는 이 분들을 검사한뒤 꾀병이라도 생각하여 진단서 발급을 거부했다.  무후각증에 대한 객관적인 검사는 우리나라에서는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극을 주고 환자가 반응하는 것을 체크하는 검사방법을 쓰고 있어 환자가 꾀병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어려울 때도 있다.

 

  환자들은 상처를 받았다.  산안국장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기다리라고 한 다음 여기 저기 전화를 해서 외국에서 이러한 검사를 세팅해본적이 있다는 비과전문의를 소개받았다.  그러던 중 원진녹생병원의 임상혁선생님한테 전화를 받았다. 직업병에 대한 문의가 들어왔는데 내 이름이 나와서 어떻게 된 거냐 물어보는 전화였다. 상황설명을 했더니 알았다며 그렇게 설명해서 돌려보내겠다고 하는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환자입장에서 답답하여 여기 저기 알아보는 것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쓴 시간과 노력을 몰라주는 게 서운하기도 했다. 

 

  하여간 객관적인 검사는 장비의 문제로 좌절되었고 비교적 권위있는 비과전문의로부터 주관적인 검사로 한달 간격으로 두 번 검사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면 무후각증이라고 진단서를 써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행히 그 선생님은 이전에 공단근처에서 진료를 한 경험이 있어서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고 계셨다.

 

  작업자들의 무후각증의 원인은 오랫동안 사용한 세척제에 포함된 염소인 것 같다. 염소가 무후각증을 유발한다는 것은 예방의학 교과서에 한 줄 정도 언급이 되어 있고 문헌검색을 해보니 증례보고가 한 건 있을 뿐이었다. 이십여년을 세척작업을 하는 동안 사용했던 세척제의 종류가 워낙 많아서 정확한 원인을 입증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작업자들의 진술내용과 작업환경측정자료를 근거로 그렇게 추정했다. 

 

 산안국장의 편지는 이 사례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아주머니의 눈물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나를 보았었다.

여기저기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는 산안국장의 모습에서 내가 말했다고 해서 그가 이해한 것은 아니고, 그가 이해했다고 해서 그가 신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었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날,

내가 한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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